한국의 궁궐,왕릉 이야기

왕릉 이야기,24대 경종- 헌릉

문성식 2010. 8. 26. 19:56

 

   제24대 헌종(憲宗)과 비(妃) 효현왕후(孝顯王后), 계비 효정왕후(孝定王后)
    - 경릉(景陵)

 

 

소재지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62 {東九陵 소재}
사 적 : 제 193 호

景陵의 특징
 : 憲宗(이환 : 1827 - 1849, 재위 15년)과 정비(正妃) 효현왕후 김씨(孝顯王后金氏: 1828 - 1843), 계비(繼妃) 효정왕후 홍씨(孝定王后洪氏 : 1831 - 1904)를 모신 경릉은 조선조의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세 개의 봉분(封墳)을 나란하게 배치한 쌍릉(雙陵) 형식의 변형인 삼연릉(三連陵)의 형식을 하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왕과 정비, 계비의 순으로 배치된 경릉은 각 봉분 앞에 상석(床石)만 별도로 설치되어 있고 여타(餘他)의 석물(石物)들은 단릉(單陵)의 상설제도를 따르고 있습니다.
 동구릉(東九陵) 소재 9개의 능으로 논할 때 조성 시기로는 추존(追尊)된 익종(翼宗:[문조])의
유릉(綏陵)이 마지막이지만 세가(世家) 계통(繼統)으로는 익종의 아들인 헌종의 경릉이 마지막이 됩니다.

憲宗代의 사료(史料)

연도

재위

사  료(史料)

 

연도

재위

사  료(史料)

1835

1년

8월, 전국에 호구(戶口)조사 실시

1840

6년

12월, 영국배 제주도에 들어와 소를 약탈

1836

2년

2월, 정약용(丁若鏞) 죽음{1762- }

1841

7년

1월, 왕 친정(親政)을 시작함

4월, 김정희 성균관대사성이 됨.

1843

9년

8월, 왕비 김씨 승하{1828 - }

1837

3년

2월, 김조근의 딸{효현왕후}왕비 책봉

1845

11년

6월, 영국 군함 제주,전라 해안 측량

1838

4년

윤4월, <순조실록(純祖實錄)> 이룩됨

1846

12년

윤5월, 유릉(綏陵)을 [동구릉]에 천장함

1839

5년

7월, 기해사옥(己亥邪獄) 일어남

7월, 김대건 새남터에서 순교{1822 - }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을 시행

1848

14년

12월, 이양선 전국 해안에 출몰

11월, {척사윤음} 전국에 반포

1849

15년

6월, 헌종 승하 {1827 - }

1840

6년

9월, 김정희 제주목에 안치됨

은언군의 증손자 원범 즉위[철종]

뒷 이야기
 23대 순조(純祖)의 아들인 세명세자(世明世子:[추존 익종])의 아들로 태어난 憲宗은 세명세자가 요절(夭折)하자 조부(祖父)인 순조의 대를 이어 1834년에 조선조 24대 왕위에 올라 15년간의 재위(在位) 시절을 마치고 슬하(膝下)에 자식없이 1849년 23세의 젊은 나이로 승하(昇遐)합니다.
 헌종대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조의 내적 모순(矛盾)이 가중되고 외세(外勢)의 힘이 뻗쳐오기 시작한 때입니다. 국내의 정치 권력은 순조대부터 확고한 권력을 점유한 세도정권(勢道政權)이 점차 가속화됩니다. 헌종이 8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순조의 비인 순원왕후 김씨(純元王后金氏)가 7년간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함으로 인해 안동 김씨(安東金氏)의 세도 정치가 지속되는데, 한 때 헌종의 외척(外戚)이었던 풍양 조씨(豊陽趙氏)인 외조부 풍은부원군(豊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의 문중(門中)이 권력의 틈새로 들어와 두 문중의 권력 분립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헌종의 비(妃)로 안동 김씨 김조근(金祖根)의 딸이 책봉되면서 다시 안동 김시의 세도 권력이 독점을 하고 그들의 주도로 철종(哲宗)의 왕위 계승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권력의 정체(停滯)는 그 산물(産物)로 삼정(三政: 전부(田賦), 군정(軍政), 환곡(還穀))의 문란(紊亂)을 가속화시키고, 그로 인해 전국적인 민란(民亂)의 원인을 제공하게 됩니다. 또한 통치 체제에 위협을 느끼게 했던 천주교(天主敎)에 대한 탄압은 그 정도를 더해 '기해사옥(己亥邪獄)'과 '김대건(金大建) 신부 처형' 등으로 대처하는 등 국가의 내적 모순을 축적(蓄積)하게 된 것입니다.
 헌종대의 외세(外勢)에 접근은 조선의 문호(門戶) 개방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게 되는데, 조선의 권력층은 이에 대한 대응책을 적절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쇄국(鎖國)의 길을 걷게 되는 한계에 부딪치게 됩니다.

< 효현왕후 김씨 약사 >
 효현왕후 김씨(孝顯王后金氏)는 안동 김씨(安東金氏) 영흥부원군(永興府院君) 김조근(金祖根)의 딸로 태어나[순조 28년], 1837년[헌종 3년]에 왕비(王妃)에 책봉(冊封)되고, 1841년에 가례(嘉禮)를 올려 왕후(王后)가 되었으나 2년만에 16세의 나이로 슬하에 후사(後嗣)없이 승하합니다.[헌종 9년]

< 효정왕후 홍씨 약사 >
 
효정왕후 홍씨(孝定王后洪氏)는 본관(本貫)이 남양(南陽)인 익풍부원군(益豊府院君) 홍재룡(洪在龍)의 딸로 태어나 효현왕후(孝顯王后) 승하 후, 1844년 왕비에 책봉되었으나, 5년 뒤에 헌종이 승하하자 철종대(哲宗代)를 이어 고종대(高宗代)까지 왕대비(王大妃)로 지내면서 여생(餘生)을 보내다가 고종 41년[1904년]에 역시 슬하에 소생(所生)없이 승하합니다. 

출처 :문화 사랑 오솔길 원문보기   글쓴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