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8.jpg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 용화사 미륵보전(彌勒寶殿)에 7구(軀)의 석불상군이 봉안되어 있다.

법당 상량문(上樑文)에 의하면 용화사는 광무(光武)6년(1902)에 창건된 사찰로 한말 고종(高宗) 광무 5년(1901) 엄비(嚴妃)의 꿈에 청주(淸州)에서 7체석불(七體石佛)이 나타나 집을 지어달라고 간청하자, 엄비가 사람을 보내어 찾아본 바, 청주 서북쪽의 냇가에서 이들 석불을 발견하였다는 창건연유가 있다. 그리하여 용화사를 세우고 7체석불을 봉안하게 된 것으로 현재 석불들의 대(臺)는 시멘트로 후보(後補)한 것이다.

5구(軀)의 불상과 2구의 보살상으로 된 이 석불들은 모두 장육상(丈六像) 또는 그 이상의 거대한 불상이란 점에서 특히 주목되는데 그 크기는 최고 550㎝, 최저 140㎝이다.

이들 중 왼쪽(향우(向右)) 3번째의 불상(佛像)은 나발(螺髮)의 머리 위에 육계(肉계)가 유난히 크며, 좁은 이마에는 백호(白毫)가 표현되어 있다. 얼굴은 긴 편이나 원만한 상이며, 어깨까지 길게 늘어진 양귀는 목의 삼도(三道)와 더불어 위엄을 자아낸다.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를 걸친 신체는 전체적으로 양감이 있으며 가슴부위에는 만(卍)자가 양각(陽刻)되어 있다.

왼쪽 5번째의 불상은 나발(螺髮)의 머리 위에 육계(肉계)가 큼직하며 이마에는 백호(白毫)가 있다. 눈은 반개(半開)하고 있으며, 이목구비는 정제되어 있다. 가슴에는 ■형의 독특한 의문(衣紋)이 새겨져 있고 그 아래로 원호(圓弧)를 그리며 옷자락이 내려져 있다. 이 불상의 뒷면(배면(背面))에는 거대한 나한상(羅漢像)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후대(後代)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두부(頭部)와 양손을 후에 보수한 석조여래입상(석불입상(石佛立像))은 나발(螺髮)의 머리에 육계가 큼직한 것이 특징이다.

이와 같은 특징을 지닌 이들 7구(軀)의 상(像)들은 모두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를 걸친 입상(立像)과 좌상(坐像)으로 상호(相好)와 세부기법, 특히 옷주름 표현과 수인(手印) 등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석불상군(石佛像群)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