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보물 제98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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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기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764 칠장사 |
소재지 | 죽산면 칠장사 |
지정일 | 1989.04.10 |
수량/면적 | 1구 |
시대 | 고려시대 |
소유자 | 칠장사 |
관리자 | 칠장사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 칠장리 칠장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불상 높이 157㎝, 전체 높이 198㎝.
원래 이죽면 죽산리 봉업사지에 있었던 것을 죽산중학교 교정으로 옮기고, 다시 칠장사(七長寺)로 옮긴 것이다.
소발(素髮)의 머리에 높직한 육계가 솟아 있는데, 두께 있는 머리가 모자처럼 보인다. 얼굴은 둥글고 팽창감을 느끼게 한다.
작은 눈, 독특한 코, 두툼한 입술 등의 표현은 마투라(마투라 : 기원전부터 인도 미술의 중심지였으며, 2∼3세기경에는 간다라 미술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다. 불상은 소박하고 대범한 조형으로 붉은 재질을 살려서 충분한 볼륨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적인 얼굴 모습이다.
신체는 늘씬하면서 우아한 형태이며, 둥근 어깨, 가는 허리, 볼록한 배, 뚜렷한 무릎과 두 다리의 표현 등 비교적 양감 있는 세련된 모습이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은 가슴부분까지 들어 손바닥을 가슴에 붙이고(내장(內掌)) 있으며 왼손은 자연스럽게 내려 법의자락을 잡고 있다. 전체적인 신체표현에 있어서는 손이 비교적 큰 편이기는 하나 머리, 어깨넓이 등의 신체비례가 좋다.
불의도 얇은 통견의를 착용하고 있어서 인체를 사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인도 굽타 양식(Gupta 樣式 : 간다라 양식을 인도화한 불상 조각의 수법이 크게 발달)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옷주름 역시 유려한 Ω자형 주름이 양다리를 걸쳐 내렸고 가슴의 옷깃이 반전하고 있는 등 우드야나식을 나타내고 있다. 가슴은 U자형으로 트여 있어서 굽타 변형식이라 하겠다. 오른손은 가슴까지 들어올려 손바닥을 붙였고〔內掌〕, 왼손은 내려 옷자락을 잡고 있는데 이 또한 굽타식이다.
이와 같이 팽창된 얼굴, 유연하며 알맞은 양감을 나타낸 신체와 유려한 우드야나식 착의법 등은 통일신라 전성기 양식(8세기)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즉, 굴불사지의 불보살상, 특히 북면보살입상과 상당한 친연성이 있어서 단순하게 살펴보면 신라 불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얼굴의 팽창감은 신라의 세련된 탄력감이 아닌 팽만감이며, 신체 역시 우아한 양감의 신라식과는 다른 것이다. 옷주름의 유려함도 해이된 선묘여서 통일신라 전성기 양식과는 확연히 구별되고 있다.
이러한 점은 광배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주행 거신광배의 외형은 8세기의 감산사석조미륵·아미타입상과 비슷하다. 하지만 두광(頭光) 안에 구름 위의 세 화불만 단순하게 부조하였을 뿐이다. 두신광 외연을 따라 좁은 공간에 불꽃무늬를 새긴 도식적인 표현이나 너무 장대한 광배 형태 등도 감산사상 같은 신라식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석불입상은 8세기 신라 전성기의 불상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고려 양식이 물씬 풍기는 새로운 경향을 보이고 있는 고려 석불의 수작이다.
고려 조각사에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더구나 이 불상이 있었던 봉업사지는 불상대좌·탑 등이 산재되어 있고 금속 공예품들도 대량 출토된 사지이다. 당대의 명찰이었으므로 이러한 사실과 관련하여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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