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06.jpg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높이 7.3m.

 

이 탑이 있는 자리는 오래 전부터 황복사(皇福寺) 터라는 전설이 있어, 일명 황복사지석탑으로도 불리고 있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는 유물 중에, 1937년경 낭산(狼山) 동쪽 기슭에서 수집한 명문(銘文)이 있는 와당편(瓦當片)이 있다. 이것은 당시 부산에 거주하였던 일본사람이 소장하였던 것으로, 평와편(平瓦片) 뒷면에는 ‘皇福寺(황복사)’라 음각되어 있다.

 

이 평와편은 비록 발견지점이 확실하지는 않으나 종래의 막연하였던 황복사지설(皇福寺址說)에 유력한 증거를 제공하고 있으며, 역시 낭산 동쪽 기슭에 황복사가 있었다는 전설의 근거를 제공하는 유물이라 하겠다.

 

이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우고, 상륜부는 노반(露盤)만 남아 있는 일반형 석탑이다.

 

기단부는 여덟 장의 장대석으로 구축된 지대 위에 구성되었고, 하층기단은 면석과 갑석이 각각 8매로 짜여졌는데, 각 면에는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2주의 탱주(撑柱 : 받침기둥)가 모각되었으며, 갑석 상면에는 호형(弧形)과 각형(角形)의 2단 굄이 있어, 그 위의 상층기단을 받치고 있다.

 

상층기단 중석은 8매로 조립하였는데, 각 면에 우주와 2주의 탱주가 모각되어 있다. 4매의 판석을 결구하여 덮은 상층기단 갑석은 하면에 부연(副椽 : 처마 밑에 덧얹어 건 짤막한 서까래)이 있으며, 상면에는 2단의 각형 굄대가 있어, 그 위의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석이 각기 하나의 돌로 조성되어 있는데, 각 층의 옥신에는 각 면에 우주가 있다. 각 옥개석의 받침은 5단씩이고 상면에는 2단의 각형 굄대를 마련하여 그 위층의 옥신석을 받치게 하였는데, 이러한 양식은 신라석탑의 독특한 점이라 할 수 있다.

 

낙수면이 평평하고 4면의 합각이 예리하며, 네 귀퉁이 전각의 발전도 경쾌하여 단아한 탑신부를 이루고 있다. 이 석탑은 통일신라 초기의 석탑건축 양식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점에서 주목된다. 즉, 작은 석재를 이용하여 결구하였던 초기의 석탑과는 달리 단일석으로 쌓아올렸으며, 기단부의 탱주도 3개에서 2개로 줄어들었다.

 

규모에 있어서도 감은사지삼층석탑(국보 제112호)이나 고선사지삼층석탑(국보 제38호)보다 작아졌다. 1942년 수리공사 때 장문의 명문이 조각된 금동사리함과 함께 금제 불상 2구를 비롯하여 많은 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사리함의 명문에 의하여 이 탑은 692년(효소왕 1)부터 706년(성덕왕 5) 사이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