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노화, 즉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반기고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노화”라는 단어에는 좋은 방향으로 성숙하는 것이 아닌 기능이 퇴행되는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거울을 보며 주름살이 늘어가고 피부가 조금씩 늘어지는 것을 신경 쓰지만 정작 혈관이 노화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잘 인지하지 못하여 혈관 노화가 병적으로 진행되고 심각한 합병증을 만들기 전에는 알지 못한다.
고혈압은 혈관이 노화되는데 주된 원인이 되기도 하며, 또한 혈관이 노화되어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고혈압은 동맥 혈류의 압력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상태인데, 혈관이 나이 들면서 일 년에 3천만번 이상 반복되는 강한 압력의 파동은 결과적으로 혈관벽을 경직시키고 혈류의 속도를 빠르게 변화시킨다. 쉽게 이해하려면, 파도가 강풍을 만나 높고 빠르게 바위에 부딪히고 세게 되돌아오는 것과 비슷하다. 이에 따라 결과적으로 세게 되돌아오는 파형을 맡는 심장은 점차 기능을 잃게 될 수 있다.
즉, 고혈압 환자에서 혈관 노화가 심하게 동반될수록 고혈압의 중요한 표적장기 손상인 좌심실비대와 이완기능 및 수축기능 장애가 더 잘 나타나며 결과적으로 조금만 움직이면 숨이 차는 심부전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혈관이 어느 정도 노화되었는지 알 수는 없을까?
혈관은 피가 흐르는 길이기 때문에 전체 혈관을 피부 들여다보듯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여러 가지 진단방법의 발달로 전반적인 혈관의 구조 또는 기능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대표적으로 쉽게 자신의 혈관 나이를 가늠할 수 있는 방법으로 대동맥의 경직도를 평가하는 맥파혈류속도라는 방법이 있으며 동맥이 딱딱해질수록 파형이 빨라지는 원리를 이용하여 혈관 노화를 측정하는 간단한 방법이다.
건강검진을 시행하였을 때 동맥이 딱딱하다는 결과를 받아보았다면 아마도 이 검사방법에서 같은 나이의 사람들 평균보다 맥파혈류속도가 빠르게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혈관 노화가 진행되면 혈관의 벽이 두꺼워지고 여기에 기름때가 끼거나 딱딱한 칼슘이 침착하게 되는데 이를 직접 경동맥 초음파를 이용하여 관찰할 수도 있다.
목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경동맥은 비교적 다른 동맥에 비해 표면에 있고 혈관이 작지 않아서 초음파로 관찰이 쉽다. 경동맥의 혈관벽 두께가 두껍고 플라크(plaque)가 있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향후 심근경색증이나 뇌졸중의 발생률이 높음이 잘 알려져 있다.
즉, 경동맥은 전체 혈관의 변화를 보여주는 창문이자 대변인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최근 컴퓨터 단층촬영이 발전하여 관상동맥석회화지수라는 것도 혈관노화의 지표이자 심혈관 질환의 위험도 평가에 이용되고 있다. 혈관이 노화될수록 심장을 먹여 살리는 관상동맥에 흰색으로 밝게 보이는 석회화(칼슘)가 관찰된다.
그러면, 혈관이 노화되는 것을 방지할 수는 없을까?
요즘은 노화방지요법이 대세이고 건강한 삶을 평생 원한다면 고혈압 환자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혈압 조절이다.
혹시 의사로부터 혈압약 복용을 권유받았음에도 혈압약을 복용하고 있지 않다면 어쩌면 점점 혈관이 노화되는 것을 방치하고 있는지 모른다. 몇 가지 심혈관질환의 위험도를 평가하는 방법을 통해 혈관 노화를 평가하여 치료를 고려해 보는 것이 좋겠다.
또한 혈관기능 보존에 도움이 되는 유산소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고, 혈관노화의 지름길이 되는 흡연과 짜게 먹는 습관을 버려야겠다. 고혈압 환자도 혈압과 생활습관이 잘 조절된다면 혈관이 젊고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기고자 : 세브란스병원 정남식 원장
[저자 소개]
정남식 원장은 현재 세브란스병원 병원장과 심장내과 교수직을 맡고 있다.
국민고혈압사업단 전(前)부단장으로 활동하면서 대국민 고혈압 예방 캠페인 활동에 앞장서 왔다.
[사업단 소개]
국민고혈압사업단(www.hypertension.or.kr)은 고혈압 조기발견과 국민 계몽을 위해 2001년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기관이다.
설립 이래 자기혈압알기 운동, 소금 섭취감량 운동 등 고혈압의 예방과 치료를 위한 다양한 홍보 및 관리 사업을 펼쳐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