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풍경

[스크랩] 조형작품 처럼 아름다운 성곽 고창읍성1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문성식 2010. 10. 15. 11:48

 

 

  조선 단종 원년(1453년)에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성으로, 고창군 남쪽 남고북저의 장대봉(108m)에

좌청룡 우백호의 지세를 최대로 이용하여 축조한 성곽이다.

주변의 지형 지세와 멋지게 어우러진 성곽의 모습은 호남 대륙을 방어했던 전초기지라기 보다는 한폭의 그림 같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조형물 그 자체이다.

 

 축성 당시 남자와 여자들이 편을 갈라 성을 쌓는 내기를 했는데 여자들을 우습게 본 남자들이 내기에 졌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는데 아무튼 섬세한 여성의 손길로 빚어진 것처럼 다른 성곽에 비하여 아기자기함이 돋 보인다.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아귀를 잘 맞춰서 쌓은 탓에 보기에도 좋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성곽 가운데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튼튼한 성이라고 한다.

 

백제 때 고창지역은 모량부리라는 지명으로 불렸던 까닭에 모양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동측 능선에서 내려 오던 성곽이 옹성의 형태로 북문인 공북루를 에워싸고 있는 모습.

 

 

 

 

 

 

공북루(북문)에 서측으로 이어진 성곽은 완만한 오르막 경사를 이룬다.

 

 

 

답성놀이 상

 

  

여자들이 머리에 돌을 이고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리 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극락승천한다고 한다.

 그 효험이 윤삼월에 좋다는 속설 때문에 매년 답성놀이 인파가 몰리는데 특히 엿새 날에는 저승문이 열린다 하여

답성놀이가 절정을 이룬다고 한다.

 

 

 

 

공북루 옹성을 우측으로 끼고 돌면 성안으로 들어 가는 입구가 나온다.

 

 

 

공북루

 

 

 

낮은 기단위에 전면에는 자연석 주춧돌을 사용하고 배면은 화강석 돌기둥 위에 둥근기둥을 세워 만든 2층 문루이다.
고창읍성에는 정문인 공북루(북문)와 등양루(동문), 진서루(서문)등 3개소의 성문이 있는데 성문앞에는

적으로부터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옹성을 둘러쌓고 그 위에 여장(여담)을 쌓아 성안에서 밖을 살필 수 있는 현안과

총을 쏠 수 있는 총안(근총안, 원총안)을 만들어 놓았다.


공북루 전후 사적기와 상량문에는 순치 3년 (인조 24년 : 1646) 병술 12월에 공북루를 소건하고

그 후 3회에 걸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창읍성 홈페이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 되었다는 표지판.

 

 

 

고창읍성 성곽 길은 역사성이 있는 길이라 하여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었지만

역사성을 떠나 어느 모로 보아도 아름답고 꼭 걸어 볼만한 길이다.

 

 

 

 

 

 

 

 

 

 

공북루에서 본 동측 성곽(위)과 서측 성곽(아래)

 

 

 

 

 

 

 

동측 능선에서 내려다 본 공북루(북문)와 주변의 모습(위, 아래)

 

 

 

 

 

 

 

북문에서 동문으로 이어지는 성곽

 

 

 

 

 

 

 

 

 

고창읍성의 또다른 아름다움중의 하나인 소나무 숲

 

 

 

 

 

 

 

동문인 등양루와 성곽의 모습

 

 

 

 

 

 

 

등양루에서 북문 쪽으로 이어지는 성곽

 

 

 

고창읍성안내도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원년(1453)에 외침을 막기 위하여 전라도민들이 축성한 자연석 성곽이다.

 모양성이라고도 부르며 고창군 남쪽 성주봉인 장대봉(108m)에 좌청룡 우백호의 지세를 최대로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이 성곽은 모제석축이 아니라 모서리 이음의 공법으로 축조하였다. 그래서 외면만 돌을 쌓고 안쪽은 흙과 잡석으로 다져져 있다.

성의 둘레는 1,684m. 높이 4~6m 면적은 165,858㎡ (50,172평)로 동.서. 북문과 3개소의 옹성 6개소의 치성(雉城)을 비롯하여

성밖의 해자(垓字) 등 전략적 요충시설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축성 당시에는 동헌과 객사 등 22동의 관아건물이 있었으나 병화로 소진된 것을 1976년부터 성곽과 건물 14동을 복원·정비 하였다

조선시대 읍성에서 흔히 보이는, 육축에 호예문을 열고 초루를 세우는 방식과 달라, 성곽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북문은 2층처럼 생긴 다락집이고, 아래층 어간에 문짝 둔테구멍이 있다.
서문터는 1976년 발굴되어 기둥초석과 문짝 달던 위치가 확인되고, 동문터도 기둥 초석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이러한 성문 구성은 다른 유구에서 아직 조사된 바 없어 성벽과 문루화의 접합에 대하여 밝히지 못하고 있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고, 자연석은 거칠게 다듬어 썼는데, 초석 당간지주 등을 깨뜨려 쓴 것도 있다.
동쪽으로는 방잔산, 서쪽으로는 서원평 건너 서산, 남쪽으로는 봉맥을 넘어 취령상, 북쪽으로는 전면의 자연 방어물인 고창천을 건너

흥덕으로 통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그리고 노령산맥에 이르는 호남 땅의 맥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성벽에 새겨진 각자를 보면 전북, 전남, 제주의 각 고을에서 책임 구역을 정하여 합동으로 축조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주방어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엿볼 수 있다.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산9  사적 제145호

<출처 : 고창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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