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풍경

[스크랩] 한국의 세익스피어, 현대 판소리의 명인 신재효 고택

문성식 2010. 10. 15. 11:45

 

 

 

오위장(五衛將)을 지낸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1812∼1884)는 순조(純祖)12년에 태어났다.

뛰어난 자질로 명인(名人)의 경지에 이르렀고 국내에 명성을 떨쳤던 그는 오위장을 지낸 뒤에 향리에 돌아와

마흔네살부터는 제각각 부르고 있는 판소리를 정리하고 후계자를 양성하는데 몰두하였다.

춘향가, 박타령, 토끼타령, 가루지기타령, 적벽가와 심청가의 여섯마당을 오늘날 부르는 바와 같이 정리하여 완성시켰다.

근대 음악, 판소리의 어버이라고 할 수 있는 그분이 고종(高宗)21년까지 살던 집이 이 집이라고 전해온다.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453 소재 중요민속자료 제39호

<출처 : 문화재청>

 

 

 

 

신재효 고택은 고창읍성 성 밖 공북루 앞에 있다. 자그마한 초가의 조촐한 집인데 그의 후손들은 이 집에서 떠나갔다.

까닭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민속자료로 지정되기 전까지는 고창경찰서 관사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초가 한동만이 남아 있으며, 관사로 이용하기 편리하도록 개수되고 첨삭(添削)되어 있었던 것을

 판소리의 고향이랄 수 있는 명인의 고택이 이래서야 되겠느냐는 여론에서 국가가 관리를 넘겨받아

 문화재로 지정하고 이를 보수 ·정비하였다.

 

 

 

 

 남아있는 현존 건물은 원래 사랑채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 이외에 안채와 부속건물들이 있었다고 고로(古老)들은 회상어린 증언을 하고 있지만 발굴등을 통하여

탐색되지 않는 한 어떤 위치에 얼마만한 규모의 집이 있었는지는 당장 알아내기 어렵다.

현존하는 사랑채는 중수시에 개조, 첨삭되었던 부분을 바로하여서 이제는 상당히 옛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앞면 6칸·옆면 2칸 규모에 '一'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으며 지붕은 초가지붕이다.

구성은 앞에서 볼 때 왼쪽부터 부엌 1칸, 방 2칸, 대청 1칸, 2칸을 합하여 통 1칸으로 만든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엌을 뺀 나머지 앞면 5칸은 반칸 툇마루를 두었다.


 

 

 

 부엌과 방 사이에 쌍여닫이 출입문을 만든 점과 대청 양쪽 방으로 연결하는 문을 달지 않은 점이 특이한 구조.

현대 판소리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명인(名人) 신재효의 옛 집으로서 가치있는 자료가 되고 있다.

 

 

 

 

 

 

 

 

 

 

 

 

 

메꾸어 졌던 연못을 복원하였으나 아직 담수가 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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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청솔객이 걷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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