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인물

168-아나니아 (행 22:12-16)

문성식 2015. 6. 26. 23:31
168-아나니아 (행 22:12-16)
 
바울이 예수를 영접한 후 첫 번 친구는 아나니아입니다. 바울을 “형제”라고 부른 첫 사람도 역시 아나니아입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예수를 기적적으로 만나 영접함으로 옛 친구들을 모조리 잃어 버렸습니다. 바울은 옛 친구들에 의해서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고 새로운 친구가 하나도 없을 때 첫 친구가 아나니아입니다.
 
좀 더 자세히 아나니아가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행22:12에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그랬습니다. 성경은 아나니아를 경건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경건한 사람이란 하나님을 날마다 예배하고 죄를 멀리하고 두려워 할 줄 아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노아 같은 사람입니다. 에녹 같은 사람입니다. 다니엘 같은 사람이며, 아브라함 같은 사람입니다. 욥과 같은 사람입니다. 백부장 고넬료와 같은 사람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배반할 수 없고 죄 짓고 살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2. 칭찬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12절에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그랬습니다. 그는 하나님께만 잘 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잘했습니다. 우리들도 욕을 들으면 안 됩니다. 칭찬을 좋아해서는 안 되지만 칭찬을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칭찬 받고 사람에게도 칭송 되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칭찬을 들으려면 안 믿는 사람보다 열 배는 더 잘해야 합니다.
 
그가 기독교인으로서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것은 귀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나는 기독교는 잘 모르지만 기독교인들은 존경하고 싶다는 말을 들을 만큼 되어야 합니다. 그만큼 정직하고 모범적이고 섬기고 봉사해야 합니다.
 
3. 계시가 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행9:10-11에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하셨습니다.
 
이같이 아나니아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상세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무나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받을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종들에게 보이지 않고는 행하지 않으신다 했습니다. 정말 종의 마음을 가져야 보여주십니다. 보여주어도 기도도 안 해 주고 돕지도 않을 사람이라면 보여주시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대면해 주시는 것도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에게나 깊이 대면해 주지 않습니다. 민12:6-8에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그랬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를 보세요.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이 얼마나 상세한 보여주심입니까? 이처럼 6하 원칙에 의해서 정확히 계시 받는 것 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확실한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영성이 아나니아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교만할까봐 깊은 밤 꿈속에서 인치듯이 말씀하십니다. 인을 순식간에 치듯이 구체적이지 않게 보이신다는 말씀입니다. 감당 잘 못할 사람에게는 가르쳐 주셔도 애매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우쭐할까봐, 자랑할까봐, 교만할까봐 그러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를 위대하게 생각할까봐 계시 받은 것도 숨긴 적도 있었습니다.
 
4. 믿음의 역사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행9:12-19을 보면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했습니다.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할 때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지고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말씀과 능력이 함께 역사하는 믿음을 가진 아나니아였습니다. 말씀이 말씀에서 끝나지 않게 우리는 기도하여야 합니다.
 
5. 제자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행9:11에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일군은 많아도 헌신자는 적습니다. 신자는 많아도 제자는 적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는 제자였습니다. 보통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보통 헌신자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배우고 본받고 따르려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명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교인은 많지만 사명자는 많지 않은데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6. 사람을 기른 사람이었습니다.
 
10년을 보고는 나무를 심고, 100년을 보고는 사람을 심어야 합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을 인정하였습니다. 모두가 사울을 두려워하고 피할 때, 모두가 사울을 모를 때, 이 때 아나니아만은 사울을 인정하였습니다. 아나니아만은 사울에게 다가가서 기도하였습니다. 행22:16을 보면 사울이 직가에서 아나니아에게서 세례를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나니아는 사람을 길렀습니다. 기독교의 거목을 길러낸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기른 사람이 세계에 복음을 크게 전한다면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이 사건 이후로 아나니아 이야기는 성경에 한 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 다음부터 사울이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역사 속에 철저히 감취어 있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귀히 쓰신 겸손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7. 그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핍박시대입니다. 그러나 아나니아는 성령의 인도 따라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났고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역해야 시험이 오지 않습니다. 드러내놓고 외치는 것만이 전도가 아닙니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공산권에서도 하나님과 동역하는 사람들로 인해 교인들은 더욱 많아져 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아 지혜롭게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천박스럽게 전도해서는 안 됩니다. 길거리에서 예수 천당이라고 귀에다 소리 지른다고 전도가 아닙니다. 그 소리에 믿을 사람도 있지만 그 소리에 예수님과 담을 쌓을 사람이 더 많습니다. 차라리 따뜻한 차 한 잔씩 대접하면서 “평안하시길 빌어요.” 하면서 전도하는 편이 100배 효과적입니다. 때로는 말의 전도가 앞서야 할 필요도 있지만 보통으로는 예수 믿으라는 말없이 봉사하는 것이 백 배 효과적일 수가 있습니다. 인격이 무시된 전도여서는 안 됩니다. 내 열심만 앞서면 도리어 방해 될 수 있습니다. 기도는 많이 하되 행함은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나니아는 핍박시대의 하나님과 사역한 성공적인 전도자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나니아는 우리에게 전도의 귀한 본을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울이 아나니아를 만나 도움을 받았듯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만나 줄 수 있는 영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준비된 성도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 모두 아나니아와 같이 경건한 사람, 칭찬 듣는 사람,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사람, 믿음의 역사가 있는 사람, 제자가 된 사람, 사람을 기른 사람, 성공적인 전도자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귀히 여김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