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보물 제12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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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북 경주시 암곡동 산1 |
소재지 | |
지정일 | 1963.01.21 |
수량/면적 | 2개 |
시대 | 통일신라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경주시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경상북도 경주시 암곡동 무장사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탑비. 높이 1.33m.
신라 제 39대 소성왕(재위 799∼800)의 왕비인 계화부인(桂花夫人)이 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아미타불상(阿彌陀佛像)을 만들면서 그 과정을 자세히 기록한 비이다. 1915년 주변에서 발견된 세 조각의 비석 파편에 새겨진 글을 통해 ‘무장사아미타조상사적비’임이 밝혀져 이곳에 무장사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무장사는 신라 제 38대 원성왕의 부친인 효양이 그의 숙부를 추모하여 창건하였다고 한다.
비는 전체적으로 파손되어 비몸돌은 다른 곳에 보관되어 있고, 현재 절터에는 부서진 비받침과 비의 머릿돌만이 떨어진 채로 남아 있다. 비받침은 얼굴형상을 알 수 없으나 2좌로 구성된 점이 특이하다. 등 중앙에 마련된 잘려진 비좌(碑座)는 비몸을 직접 끼워두는 곳으로 사각형이며, 네 면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조각하였다. 잘려진 머릿돌에는 용이 구름속에서 앞발로 여의주를 잡고 있는 조각이 있고, 왼쪽 면에는 금석학자인 추사 김정희의 조사기가 별도로 기록되어 있다.
비신(碑身)은 현재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훼손된 채로 보관되어 있으며 절터에는 비신을 받쳤던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다. 이 비는 신라 제39대 소성왕의 비 계화부인(桂花夫人)이 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아미타불상을 조성할 때 세운 것으로, 건립연대는 801년으로 추정된다.
이수에는 ‘阿彌陀佛□□(아미타불□□)’이라는 여섯 글자를 2행으로 새겼는데, 이수 왼쪽 면에는 김정희(金正喜)의 조사기가 별도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 쌍귀부는 부러져 없어졌으며 이수의 일부분도 부러졌다. 귀부의 발은 도식화되었으며 귀갑 중앙에 장방형의 높다란 비좌를 설정하고 비좌 네면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조각하였다.
이처럼 귀부에 십이지신상을 조식한 것은 퍽 특이한 예에 속한다. 잘린 이수에는 반룡(蟠龍 : 승천하지 않은 용)이 운기문(雲氣文) 속에서 앞발로 여의주를 잡고 있어서 통일신라 초기에 조성된 신라태종무열왕릉비(新羅太宗武烈王陵碑) 이후 이수가 남아 있는 예가 없는 통일신라기 이수의 변천을 파악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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