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55.jpg 경상북도 경주시 성건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지주. 높이 3. 66m.

 

삼랑사(三郎寺)는 신라(新羅) 진평왕(眞平王) 19년(597)에 창건되었고, 신문왕(神文王)(681∼691) 때의 명승(名僧)인 경흥법사(憬興法師)가 주지로 있으면서 사찰(寺刹)이 성황하여 역대 왕(王)의 행차가 잦았던 이름 높은 사찰이다.

경내에는 신라(新羅)의 유명한 서도가(書道家)인 요극일(姚克一)이 쓴 사비(寺碑)도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알 길이 없고 이 당간지주(幢竿支柱)가 남아있을 뿐이다. 이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외면이 간결하나 세련된 수법으로 선문(線紋)을 조각한 특이한 양식이다.

현재 당간을 놓았던 기대(基臺)라든가 두 지주(支柱)의 기단석 등의 부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며, 지주 아래쪽 일부분이 노출되어 다듬지 않은 자연석면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안쪽 면에는 아무런 조각이 없으나, 바깥쪽은 가장자리를 따라 종선문(縱線文)이 양각되어 있고, 그 중앙에 세로로 아래위에 능선이 조식되었다. 꼭대기에서는 바깥쪽으로 반원형의 선이 흘러내리다가 한 단의 굴곡을 이루고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굴곡부분에서 56㎝ 정도 내려오면, 그 아래로 약 90㎝ 가량이 전체적으로 패어 있어 지주의 중앙부분이 가늘어졌다. 당간을 고정시키는 간(杆)은 지주 안쪽 면의 아래위 두 군데에 간구(杆溝)를 마련하여 장치하였는데, 윗부분에는 장방형 간구를, 아래쪽에는 작은 방형의 구멍을 파서 간을 설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지주는 통일신라시대 당간지주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면서도 지주 중간부분의 두께를 얇게 한 점 등, 장식적 의장이 엿보이는 작품으로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