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보물 제10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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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광주 남구 구동 16-2 |
소재지 | |
지정일 | 1963.01.21 |
수량/면적 | 1기 |
시대 | 고려시대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광주시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광주광역시 남구 구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높이 7m.
광주공원 안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탑으로 이 부근은 성거사(聖居寺)터라고 전해진다. 이 광주공원은 원래 성거산(聖居山)이라 불렀는데, 산의 모양이 거북처럼 생겼으므로 광주를 떠나지 못하도록 등위치에는 성거사를 세우고 거북의 목 부근에는 5층석탑을 세웠다고 한다.
석탑의 구성은 단층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세운 일반형 석탑이다. 지대석 위에 큼직한 이중의 받침이 있어 기단면석을 받게 되어 있다.
면석은 여러 장의 판석으로 구성하였고, 각 면석의 탱주(撑柱 : 받침기둥)는 하나씩 있다. 갑석에는 부연(副椽 : 탑기단의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이 있고, 윗면 중앙에 탑신을 받기 위하여 각형 (角形) 2단의 굄돌을 새로 만들어 끼웠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석이 각 층 1석으로 되었고, 탑신에는 층마다 우주형(隅柱形)이 모각되었다. 특히, 1층은 특이한 구조로서 전체를 상·하 2단으로 연결하되 여러 장의 석재로 결구하여 그 높이가 매우 높고, 2층 이상의 탑신도 체감률이 낮아 대체로 탑신은 모두 높은 편이다.
옥개석은 추녀가 넓은 편이고, 전각(轉角)은 상·하가 모두 반전(反轉)되었다. 아랫면의 받침은 각 층이 4단씩이며, 옥개석 정상면에는 그 위에 옥신을 받기 위한 높직한 굄이 1단씩 마련되었다. 상륜부(相輪部)는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
이 탑은 1961년 전면 해체 수리되었는데, 당시 2층 옥신 윗면에서 사리공(舍利孔 : 탑파에서 사리를 장치하기 위하여 탑재에 파 놓은 구멍)이 발견되었고, 그 안에 원래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가 남아 있었다.
사리기는 금동탑형(金銅塔形)으로 수미단형(須彌壇形)의 기단 4면에는 고식(古式)에 속하는 안상(眼象) 1좌씩이 큼직하게 투각되었고, 탑신 주위로 난간을 돌리고 난간에는 각 면에 2구씩 여의두문(如意頭紋)이 투각되었으며, 기단 네 귀퉁이에는 사천왕입상이 세워져 있다.
탑신부는 기단에서 분리되는데, 각 면에는 보살상을 조각한 동판이 붙었고, 그 안에 은제 사리호(舍利壺)를 안치하였다. 옥개 또한 분리되는데 추녀에는 돌아가면서 풍령(風鈴 : 풍경)과 심엽형 영락(心葉形瓔珞)이 달려 있고 옥상에는 보주(寶珠)가 얹혀 있다.
이밖에도 사경(寫經)·동경(銅鏡)·옥류(玉類) 들이 사리기 주위에서 발견되었다. 이와 같이 사리장치가 원형대로 발견된 것도 귀중한 자료의 하나이겠으나, 이 사리기가 보여주는 시대적인 특징은 이 석탑 자체의 건립연대 추정에 중요한 근거가 된다.
따라서, 이 사리장치와 석탑의 양식을 살펴볼 때, 이 석탑은 고려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1층 탑신받침과 3층 옥신의 일부는 보수 당시에 새로 만들어 끼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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