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98.jpg 경상북도 영천시 대전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정사.

 

조선 중기의 문신인 양계(暘溪) 정호인(鄭好仁)의 뜻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정사로, 구룡산(九龍山) 동쪽의 산자락 끝 언덕배기에 자리잡고 있다.

 

선생의 호(號)는 양계(暘溪), 관(貫)은 오천(烏川)이며, 임진왜란(壬辰倭亂)시 영천(永川) 의병장(義兵將)을 지낸 호수(湖수) 정세아(鄭世雅) 선생의 손자이다.

조선(朝鮮) 인조(仁祖) 5년(1627)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禮曹)·호조정랑(戶曹正郞) 등을 거쳐 양산(梁山)·합천군수(陜川郡守)가 되고 진주목사(晋州牧使)와 남원도호부사(南原都護府使)를 지냈다.

병자호란(丙子胡亂)때에는 영천의병장(永川義兵將)으로 상경(上京)중 남한산성(南漢山城)의 비보(悲報)를 듣고 돌아왔으며, 양산에는 선정비(善政碑)가 세워져 있다.

 

양계정사는 ㄴ자형의 정사와 일자형(一字形)의 관리사로 이루어져 있다. 정사는 원래 2칸 규모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의 일자형 건물이었으나 후대에 좌측 온돌방 뒤에 온돌방, 마루방, 중문간을 달아내어 ㄴ자형이 되었다.

3량가의 민도리집인데, 창틀 곳곳에는 가운데설주를 세웠던 홈구멍이 남아 있어 이 건물이 조선 중기에 건립된 것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