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61abb5162395f6c66bae59510e34e6.JPG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신복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높이 4.55m.

신복사는 통일신라 때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창건한 절로, 창건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즉 신라의 한 처녀가 우물에 비친 햇빛을 보고 그 물을 마셨는데 곧 아이를 배어 낳게 되었다. 집안 사람들이 아이를 내다버렸으나, 아이의 주위로 빛이 맴돌아 괴이하게 여겨 다시 데려와 길렀는데, 그 이름을 범(梵)이라 하였다. 범이 출가하여 승려가 된 후 고향에 돌아와 신복사와 굴산사(掘山寺)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창건 이후의 기록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화강암제의 이 석탑은 일반형 석탑과 같이 2층기단 위에 탑신을 세우고 그 위에 상륜부를 올려놓은 형식으로, 각 부의 가구수법에 있어서 특이한 점을 보이고 있다.

기단부는 지대석 위에 형성되었으며, 지대석은 1매의 판석으로 조성되었는데 상면에는 복엽(複葉)의 복판(覆瓣)이 조각된 연화대(蓮華臺)가 마련되었고, 다시 1단의 각형 굄을 만들어 기단부를 받고 있다.

이 지대석의 연화문은 1변에 6판씩 도합 24엽이 조식되었는데, 판내에 별다른 장식문양이 없으며 다만 네 귀에는 판단(瓣端)에 귀꽃문양이 조각되어 지대석을 화사하게 꾸미려는 장식적인 의장을 엿보게 하고 있다.

하층기단은 낮은 면석 각 면에 3구씩의 안상을 오목새김하고, 그 위에 1매의 판석으로 된 넓직한 갑석을 덮었는데 상면은 약간의 경사가 있으므로 네 귀에서는 자연히 합각선(合閣線)이 뚜렷해졌으며 내면에 낮은 각형과 높직한 호형(弧形), 그리고 낮은 1단의 각형 등 3단의 굄대를 마련하여 상층기단을 받고 있다.

상층기단은 면석이 그대로 하층기단 갑석 위에 놓여진 것이 아니라 하층의 굄석 위에 구성되었고 이 굄석은 하층기단 갑석과 상층기단 면석 사이에 끼워져 있다.

즉, 이 굄석은 2매의 판석으로 되었는데 하면은 밑으로 들어가면서 완만한 곡선을 이룬 듯한 부연형(副椽形)이 새겨졌고, 상면은 낮은 각형과 높직한 호형, 낮은 또 한 단의 각형 3단굄대를 마련하여 상층기단 면석을 받고 있다. 상층기단 면석은 하층기단보다 훨씬 높으며 2매석으로 구성된 면석의 각 면에는 양쪽 우주가 각출되었다.

상층기단 갑석도 2매석으로 만들었는데 하면에는 상층기단 굄석과 같이 완만한 곡선의 부연형이 새겨졌고 상면은 2단의 각형과 1단의 호형이 있는 굄대로써 탑신부를 받게 되었으나, 이 갑석과 탑신부 사이에는 한 층의 굄석이 끼워져 있어 주목된다.

이 굄석은 2매의 판석으로 되었는데 하면에는 곡선을 이룬 부연형이 새겨지고 상면에는 약간의 경사가 있어 네 귀의 합각이 뚜렷하며 중앙부에 각형 2단의 굄대를 마련하여 탑을 받고 있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석이 각기 1석씩이고 2, 3층에서는 옥개석 정상에 1매의 방형 판석을 굄돌로 놓아, 그 위에 위층의 옥신석을 받도록 되었는데 이 굄돌은 그 윗부분의 옥신석만큼 중후하여 각 층의 탑신부는 둔중함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초층 옥신은 양쪽에 우주가 있고 2, 3층도 같은 형식인데 초층에만은 한쪽 면에 장방형의 감실이 오목새김되었다. 그리고 초층옥신석의 높이는 높직하나 2층부터는 급격히 줄어서 매우 낮고 평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옥개석도 또한 평박한 편으로 3층이 모두 같은 형태인데 하면에는 3단의 각형받침이 마련되었다. 낙수면의 경사는 급한 편이 아니나 네 귀의 합각선은 예리하다. 추녀는 수평으로 전개되고 네 귀 전각의 반전도 경쾌한데, 이러한 옥개석의 형태는 곧 전형적인 신라시대 석탑의 탑신부를 연상하게 한다.

상륜부는 전 부재가 완전히 남아 있어서 3층옥개석 위에 각기 1석씩으로 조성된 노반(露盤)·복발(覆鉢)·앙화(仰花)·보륜(寶輪)·보주(寶珠) 등의 부재가 순서대로 놓였는데, 어느 부분이나 평박하며 앙화석의 앙련판 내에는 장식이 있는 연화문이 조식되었다.

이 석탑의 각 부재는 높이에 비하여 너비가 넓어서 안정된 감을 주며, 층마다 끼여 있는 별개의 굄돌로 인하여 전체의 균형은 어느 정도 잡히는 듯하다. 이와 같이 별도의 판석을 끼우는 수법은 고려시대 석탑에서 많이 볼 수 있어 이 시대 석탑의 하나의 특징이 된다.

그러나 이처럼 층마다 굄판석이 삽입된 유례는 드물어 목조건축에서 볼 수 있는 난간의 퇴화된 형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