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62.jpg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굴산사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지주. 높이 5.4m.

굴산사지는 강릉시 구정면 학산2리 윗골마을의 마을회관 일대에 있는 절터이다.

굴산사는 신라 문성왕 13년(851)에 범일국사(梵日國師, 810∼889)가 창건한 사찰로, 우리나라 9산선문(九山禪門) 중의 하나인 사굴산문의 중심 사찰이었다. 굴산사는 고려시대에는 지방호족들의 지원하에 번성한 후 조선초 이후의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조선초 이후에는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굴산사지당간지주(보물 제86호), 범일국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굴산사지부도(보물 제85호), 강릉굴산사지석불좌상(강원도문화재자료 제38호) 등이 남아 있어 굴산사 당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굴산사지 일대는 현재 주변이 농경지로 변하여 사역의 정확한 범위를 알 수 없었으나, 2002년 태풍 ‘루사’로 인한 수해로 긴급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사역의 크기는 동-서 140m, 남-북 250m의 크기로 확인되었다. 또한 토층은 3개층의 문화층이 확인되었는데, 1·2문화층은 유실되었으나 3문화층은 아직 남아있는 부분이 많은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법당지·승방지·회랑지·탑지 등도 확인되었다.

강릉 굴산사지는 우리나라 9산선문의 중심사찰로서, 2002년 태풍 루사로 인한 수해로 긴급발굴조사를 통해 법당지·승방지·회랑지 등의 유구가 확인된 역사상·학술상 귀중한 유적이다.

양쪽 지주 모두 하나의 돌로 된 거대한 석재를 사용하여 조성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지주에 속한다.

현재 하부가 묻혀 있어서 당간을 세워놓았던 기대석 등의 구조를 알 수 없다. 대부분의 당간지주가 측면 등 외부 각 면에 굵은 선문(線文)이나 음각의 홈을 파서 일반형의 양식을 보이고 있는데, 이 지주만은 그렇지 않고 가공도 매우 소박하며 형식상 다소 차이가 난다.

즉, 4면은 아무런 조각이 없는 평면이며, 하부는 돌을 다룰 때 생긴 거친 자리가 남아 있다. 서로 상대되는 내면과 외측면은 수직을 이루게 하고 전후 양면은 거의 상부까지 수직의 평면을 이루었으나, 상단에 이르러는 그 정상부를 양측에서부터 차츰 둥글게 깎아 곡선을 이루고 있다.

정상은 첨형(尖形)인데 현재 남측의 지주첨단이 약간 파손되었다. 당간을 고정시키는 간(杆)은 상하 두 군데에 마련하였던 것인데, 상부에는 상단 가까이에 둥근 구멍을 파서 간을 시설하였고, 하부는 3분의 1쯤 되는 곳에 둥근 구멍을 관통시켜 간을 끼우게 하였다.

규모가 거대할 뿐 아니라 그에 맞도록 강인한 수법을 보이고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작품다운 웅대한 조형미를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