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49.jpg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巴川面 덕천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주택.

10채 건물이 경내에 있는데 1880년경과 1912년경에 건축된 건물들이라 한다.

영조때 만석의 재산을 가진 청송(靑松) 심씨(沈氏) 처대공(處大公)의 7세손 송소(松韶) 심호택(沈琥澤)이 호박골에 살다가 조상들의 본거지인 덕천동으로 이거(移居)하면서 짓기 시작한 집이다.

10채가 경내외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 중 측간(안채·사랑채)과 대문간채는 개화기 이후의 건물이다. 그 외의 건물에도 중수시 1912년 이래의 개화형 흔적이 보여 1880년대 건축구조가 온당하게 보존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대문간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의 기와를 이은 맞배지붕인데 대문 좌우로 행랑채가 있다. 대문간채와 이웃한 북방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마당채가 있다.

안채 앞마당에 화단이 있고 그 남쪽에 우물이 있는데 주변에 잘생긴 나무들이 섰다. 안채 남쪽 샛담 안쪽에 은행, 단풍, 옥매화, 향나무와 전나무가 있어 운치를 자아낸다. 안채는 변형의 ㅁ자형 날개집 평면이고 반듯한 안마당, 부엌쪽에 우물이 있고 옆에 화단이 조성되었다.

안채에 안방과 함께 사랑방이 공존하는 구성인데 사랑방이 앞에, 안방이 뒷편에 자리잡았고 그들은 보통 살림집에 비하여 규모가 장대해서 부잣집답다고 할 만하다. ㅁ자형 앞날개 중앙에 중문이 있고 그 우측에 작은사랑, 좌측이 큰사랑이다. 큰사랑의 사랑방은 정면 2칸, 측면 칸반인데 방 뒷편 반칸은 미닫이의 분합(分閤:창살문)을 들여 반침(큰 방 옆에 붙는 작은 방)을 만들었다.

 

사랑방에 이어 4칸의 대청이 자리하는데 방 앞 퇴칸까지 치면 상당한 넓이이다. 대청 건너에 책방이 있는데 구들과 마루로 1칸씩 구조하였고 이어 좌측날개가 안방채 쪽으로 뻗는데, 구들을 들인 책방 말고는 마루를 깐 고방(庫房:물건을 넣어두는 방)이 계속된다. 내고(內庫)인 셈이다.

이는 맞은편 우측날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중문 우측 작은사랑도 2칸의 방과 1칸의 대청 그리고 뒤에 구조된 방이 자리잡고 있다.

 

안방이 있는 본채는 날개와 일단 분리하는 특성을 보였다. 우측부터 부엌, 안방, 대청, 상방, 안사랑방 순인데 부엌이 2칸반, 안방이 4칸, 대청 2칸, 상방 2칸, 안사랑방 2칸반 규모이다. 대청을 제외한 방에는 평천장 윗부분에 다락을 설비하여 수장중간을 확보하였다.

기둥간살이는 영조척(營造尺)으로 9척이 기본이나 대청 넓이는 10척, 부엌은 12척으로 하는 변형을 보였다. 부엌 12척은 1912년 이후 개수하면서 개화기적인 척도가 이용되었던 듯하다.

 

사당채는 안채와의 사이에 담장이 있어 일작을 따로 형성한 셈이 되었다. 소슬삼문을 들어서면 사당채가 있는데 보통의 가묘(家廟) 형상이 아니고 정자의 유형인데 기거할 수 있게 구조된 방이 있고 정실(淨室)이 있는 그런 구성이다. 역시 특색을 보인다고 하겠다. 안채 뒤울에 화단이 있고 장독대가 있고 한편에 방앗간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