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98.jpg 인조 14년(1637) 병자호란 때 척화신으로 이름난 불구당 김주(1606~1681)가 태어난 곳으로 1981년 지붕을 고칠때 숭정십칠년 병술삼월일 용문사승 운보조(崇禎十七年 丙戌三月日 龍門寺僧 雲補造)라고 새겨진 명문기와가 발견되어 이 종택은 인조 22년(1644)에 이전에 건립된 가옥으로 확인되고 있다

종택은 국사봉의 지맥이 뻗어 내린 나지막한 야산 앞에 동남향하여 자리를 잡았는데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앞으로 ㄱ자로 된 초가 문간채가 배치되어 있다.

정침은 정면 9칸 측면 8칸의 규모이며 口자형 주택이다. 평면은 중문칸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사랑채를 두고 좌측으로는 고방, 중문칸, 모방, 마루방을 연접시켰는데, 사랑채의 우측 2칸과 좌측의 모방과 마루방은 좌우로 돌출되어 양날개집의 평면을 취하고 있다.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전면칸은 모두 개방된 퇴칸으로 꾸민 후 전면에는 계자각을 둘렀으며 누하주는 휘어진 곡재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퇴칸 뒤에는 사랑방 2칸과 마루방 1칸을 연접시킨 후, 좌측방 뒤에는 책방을, 우측방 뒤에는 지피방을, 마루방 뒤에는 옥방을 각각 배치하였다.

안채는 대청 좌측칸에 온돌방을 1칸 꾸미면서 골방과 벽을 터서 안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골방 앞쪽 안방자리의 일부를 부엌으로 개조하였다. 안채의 가구는 대량위에 키 높은 동자주를 세워 종량을 받게 하였고 종량위에는 제형판대공을 세워 마룻대와 장혀를 받게 한 오량가의 구조이다. 사랑채도 오량가로 지붕틀을 구성하였으나 사랑방의 반자는 우물반자로 꾸몄다.

문간채는 양측 중문칸 사이의 전면에 ㄱ자형으로 배치하였고, 문간채 뒤쪽 공간은 행랑마당을 이루게 하였다. 평면은 정면의 대문간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마굿간, 광, 마루방을 연접시켰으며, 우측에는 문간방을 1칸 연접시킨 후 뒤에는 고방을 두어 ㄱ자형의 평면을 이루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