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묵 | 중요민속자료 제196호 |
---|---|
소재지 | 충남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 143 |
소재지 | |
지정일 | 1984.12.24 |
수량/면적 | 일곽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윤상구외1명 |
관리자 | 윤상구외1명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주택.
평지가 너른 마을의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으며 주변에 커다란 기와집과 함께 공동의 솟을대문을 이용하는 가까운 형제들의 집이 있는 곳이다. 같이 배치되어 있는 초가(草家) 양통집들은 이 기와집에 딸린 집이었다. 이 집은 1907년 윤치소 선생이 건립했다고 전하는데 바깥 사랑채는 이 보다 휠씬 뒤인 1920년대에 지어지지 않았나 추측된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일자(日字)에 꼬리를 붙인 형상인 파자형(巴字形)으로 배치되었다. 동남향(東南向) 하는 직선축에 맞춰 뒤쪽에 ㄱ자형안채, 중간에 ㄴ자 안사랑, 바깥에 ㄴ자 행랑채를 둘러서 一자를 만들고 동쪽 모서리에 ㄴ자 바깥 사랑채를 배치했다. 행랑채는 바로 길에 면하지만 바깥사랑채는 따로 담을 돌려서 앞쪽에 조그만 대문을 별도로 설치하였다. 이 원장(垣墻)은 안채를 돌아서 서쪽에는 안사랑까지를 두르며 서쪽 들에는 3칸(間)양통초가집이 부속채로 곁달린다. 바깥사랑과 안채 사이도 원장으로 구획하고 편문(便門)을 시설해 두었다.
안채는 9칸 ㄱ자형집으로서 전형적인 중부지방의 평면구성을 보이는데 부엌이 동쪽으로 배치되는 것이 다르다. 간살이는 가로간을 전퇴, 세로간은 아랫퇴를 붙인 전후퇴집으로서 구성해서(이 점도 흔한 경우는 아니다.) 앞으로부터 부엌, 안방, 샛방, 웃방의 차례로 두고 꺾어져서 대청 2칸 건넌방, 맨 머리에 작은 부엌을 배치했는데 집 뒤의 1칸은 나중에 달아낸 것이다. 안방에서 건넌방까지의 앞퇴는 모두 우물마루가 깔리고 대청앞은 문 시설없이 개방되었으며 건넌방 및 웃방과의 샛문은 분합문으로 만들었다.
구조는 1고주5량으로서 납도리에 장혀를 받쳤다. 그러나 중도리에는 장혀를 쓰지 않았으며 종도리에는 장혀로 받치고 소로를 끼워 뜬 창방을 보내서 보강했다. 보의 단면은 모를 굴린 네모꼴이며 대공은 어깨를 접은 사다리꼴 판대공인데 높직이 마련되었다. 댓돌은 장대석 외벌대로 놓이고 네모뿔대 주초(柱礎)위에 네모기둥을 올렸다. 지붕은 합각지붕으로 세곳에 만들어지며 홑처마이다.
바깥사랑채는 거의 별당채 비슷하게 높은 누마루집으로 만들었으며 평면구성은 6칸 전퇴집인데 서북쪽으로 2칸을 내달아서 전체적으로 ㄴ자형을 이룬다.
간살이는 서쪽으로부터 누마루, 2칸 큰사랑, 2칸대청, 사랑건넌방이 배치되며 앞퇴에는 툇마루가 시설되었다. 누마루와 사랑아랫방 위의 2칸은 골방으로서 큰사랑에서 이용토록 고려되었다. 골방에서부터 대청까지의 뒤에는 쪽마루가 놓였는데 마루는 모두 장마루이며 누마루의 분합문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유리 미서기문이 시설되었다.
구조는 1고주5량인데 굴도리를 쓰고 장혀를 받쳤으며 뜬장혀를 보내서 소로로 수장하였다. 보 아래에는 초각이 된 보아지를 끼워서 밖으로는 초가지가 둘이 빠지도록 장식했으나 쇠서형상은 만들지 않았다. 기둥은 네모꼴이며 아주 높은 네모뿔대 초석(礎石)위에 올려졌고 댓돌은 얕으막한 외벌대 장대석(長臺石)으로 만들어졌다. 지붕은 합각인데 합각면을 마치 경회루(慶會樓)처럼 대단히 크게 만들었으며 합각면은 장식없이 단순히 벽돌로만 쌓았다. 처마는 겹처마로서 주택이라기 보다는 마치 대궐의 한 집 같다.
안사랑채는 안마당을 둘러싸면서 ㄴ자형으로 앉혀졌다. 맞걸이 맞배지붕집이며 세로칸 6칸반, 가로칸 6칸으로 이루어졌는데 전체는 11칸반이다. 간살이는 북쪽에서 부터 창모방, 마루, 찬간, 반칸작은부엌, 안사랑 아래 ·웃방, 꺾어지면서 2칸헛간, 2칸대문간, 2칸광으로 이루어졌다. 중문간에는 밖에만 대문시설이 되고 안마당 쪽에는 개방해 두는게 일반적이지만 여기는 안팎에 모두 대문을 시설하고 밖으로 여닫는게 특이하다.
댓돌은 자연석 허튼층쌓기인데 바깥마당쪽은 두벌대, 안마당쪽은 외벌대이다. 초석은 덤벙주초이고 네모기둥을 세웠으며 장혀없이 납도리를 올렸다. 보의 단면은 모를 굴린 네모꼴이다.
행랑채는 안사랑채에 지붕을 한단 아래로 겹치면서 잇대어 축조했다. 구조는 맞걸이 3량이고 대문은 솟을대문이며 서쪽 끝은 박공으로 마무리된다. 세로칸은 7칸이고 가로칸은 8칸으로서 총 14칸 건물이며 가로칸 중앙에 대문간이 놓였다. 나머지는 광과 창고등으로 이루어지며 세로칸 귀퉁이에는 살림간도 마련되었다.
행랑채 서쪽에 곁달린 부속채는 3칸 一자 양통집인데 면적은 6칸이다. 왼쪽에 부엌이 배치되고 나머지 2칸은 전후로 나누어서 뒤는 구들, 앞은 봉당이 된다. 지붕은 초가인 민가의 평범한 구조인데 이것은 우리나라 동부지역에만 분포하는 양통집으로서 이 마을에 이와 유사한 몇 채의 집이 있는 까닭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일자(日字)에 꼬리를 붙인 형상인 파자형(巴字形)으로 배치되었다. 동남향(東南向) 하는 직선축에 맞춰 뒤쪽에 ㄱ자형안채, 중간에 ㄴ자 안사랑, 바깥에 ㄴ자 행랑채를 둘러서 一자를 만들고 동쪽 모서리에 ㄴ자 바깥 사랑채를 배치했다. 행랑채는 바로 길에 면하지만 바깥사랑채는 따로 담을 돌려서 앞쪽에 조그만 대문을 별도로 설치하였다. 이 원장(垣墻)은 안채를 돌아서 서쪽에는 안사랑까지를 두르며 서쪽 들에는 3칸(間)양통초가집이 부속채로 곁달린다. 바깥사랑과 안채 사이도 원장으로 구획하고 편문(便門)을 시설해 두었다.
안채는 9칸 ㄱ자형집으로서 전형적인 중부지방의 평면구성을 보이는데 부엌이 동쪽으로 배치되는 것이 다르다. 간살이는 가로간을 전퇴, 세로간은 아랫퇴를 붙인 전후퇴집으로서 구성해서(이 점도 흔한 경우는 아니다.) 앞으로부터 부엌, 안방, 샛방, 웃방의 차례로 두고 꺾어져서 대청 2칸 건넌방, 맨 머리에 작은 부엌을 배치했는데 집 뒤의 1칸은 나중에 달아낸 것이다. 안방에서 건넌방까지의 앞퇴는 모두 우물마루가 깔리고 대청앞은 문 시설없이 개방되었으며 건넌방 및 웃방과의 샛문은 분합문으로 만들었다.
구조는 1고주5량으로서 납도리에 장혀를 받쳤다. 그러나 중도리에는 장혀를 쓰지 않았으며 종도리에는 장혀로 받치고 소로를 끼워 뜬 창방을 보내서 보강했다. 보의 단면은 모를 굴린 네모꼴이며 대공은 어깨를 접은 사다리꼴 판대공인데 높직이 마련되었다. 댓돌은 장대석 외벌대로 놓이고 네모뿔대 주초(柱礎)위에 네모기둥을 올렸다. 지붕은 합각지붕으로 세곳에 만들어지며 홑처마이다.
바깥사랑채는 거의 별당채 비슷하게 높은 누마루집으로 만들었으며 평면구성은 6칸 전퇴집인데 서북쪽으로 2칸을 내달아서 전체적으로 ㄴ자형을 이룬다.
간살이는 서쪽으로부터 누마루, 2칸 큰사랑, 2칸대청, 사랑건넌방이 배치되며 앞퇴에는 툇마루가 시설되었다. 누마루와 사랑아랫방 위의 2칸은 골방으로서 큰사랑에서 이용토록 고려되었다. 골방에서부터 대청까지의 뒤에는 쪽마루가 놓였는데 마루는 모두 장마루이며 누마루의 분합문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유리 미서기문이 시설되었다.
구조는 1고주5량인데 굴도리를 쓰고 장혀를 받쳤으며 뜬장혀를 보내서 소로로 수장하였다. 보 아래에는 초각이 된 보아지를 끼워서 밖으로는 초가지가 둘이 빠지도록 장식했으나 쇠서형상은 만들지 않았다. 기둥은 네모꼴이며 아주 높은 네모뿔대 초석(礎石)위에 올려졌고 댓돌은 얕으막한 외벌대 장대석(長臺石)으로 만들어졌다. 지붕은 합각인데 합각면을 마치 경회루(慶會樓)처럼 대단히 크게 만들었으며 합각면은 장식없이 단순히 벽돌로만 쌓았다. 처마는 겹처마로서 주택이라기 보다는 마치 대궐의 한 집 같다.
안사랑채는 안마당을 둘러싸면서 ㄴ자형으로 앉혀졌다. 맞걸이 맞배지붕집이며 세로칸 6칸반, 가로칸 6칸으로 이루어졌는데 전체는 11칸반이다. 간살이는 북쪽에서 부터 창모방, 마루, 찬간, 반칸작은부엌, 안사랑 아래 ·웃방, 꺾어지면서 2칸헛간, 2칸대문간, 2칸광으로 이루어졌다. 중문간에는 밖에만 대문시설이 되고 안마당 쪽에는 개방해 두는게 일반적이지만 여기는 안팎에 모두 대문을 시설하고 밖으로 여닫는게 특이하다.
댓돌은 자연석 허튼층쌓기인데 바깥마당쪽은 두벌대, 안마당쪽은 외벌대이다. 초석은 덤벙주초이고 네모기둥을 세웠으며 장혀없이 납도리를 올렸다. 보의 단면은 모를 굴린 네모꼴이다.
행랑채는 안사랑채에 지붕을 한단 아래로 겹치면서 잇대어 축조했다. 구조는 맞걸이 3량이고 대문은 솟을대문이며 서쪽 끝은 박공으로 마무리된다. 세로칸은 7칸이고 가로칸은 8칸으로서 총 14칸 건물이며 가로칸 중앙에 대문간이 놓였다. 나머지는 광과 창고등으로 이루어지며 세로칸 귀퉁이에는 살림간도 마련되었다.
행랑채 서쪽에 곁달린 부속채는 3칸 一자 양통집인데 면적은 6칸이다. 왼쪽에 부엌이 배치되고 나머지 2칸은 전후로 나누어서 뒤는 구들, 앞은 봉당이 된다. 지붕은 초가인 민가의 평범한 구조인데 이것은 우리나라 동부지역에만 분포하는 양통집으로서 이 마을에 이와 유사한 몇 채의 집이 있는 까닭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중요민속자료 196-1 |
안채 |
|
중요민속자료 196-2 |
사랑채 |
|
중요민속자료 196-3 |
행랑채 |
|
중요민속자료 196-4 |
호지집 |
|
'한국의 문화,풍물,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요민속자료 제198호 홍성조응식가옥(洪城趙應植家屋) (0) | 2015.05.29 |
---|---|
중요민속자료 제197호 서천이하복가옥(舒川李夏馥家屋) (0) | 2015.05.29 |
중요민속자료 제195호 아산외암리참판댁(牙山外岩里參判宅) (0) | 2015.05.29 |
중요민속자료 제194호 아산성준경가옥(牙山成俊慶家屋) (0) | 2015.05.29 |
중요민속자료 제193호 부여정계채가옥(扶餘鄭啓采家屋) (0) | 2015.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