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假面) 질환’이란 병이 있는데 증상이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무증상’이거나 병의 주요 증상이 다른 질병 증상에 가려져 있는 경우 등을 일컫는다.
가면고혈압, 가면우울증, 가면저혈당 등이 대표적인데 증상을 발견하지 못하면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칠 가능성이 커 더욱 위험하다. 가면 질환은 정확한 과정에 따라 진단 받지 않았을 때, 병에 대한 인식이 나쁠때, 병에 대한 거부감이 클 때 생긴다. 대표적인 가면 질환중 "가면고혈압" 에 대해 알아본다.
평소 혈압이 정상인 사람이 의사나 간호사 앞에 가면 긴장해 혈압이 높게 나올 수 있다. 이렇게 병원에서 잴 때만 혈압이 높게 나오는 현상을 ‘백의고혈압’이라 한다. 이 경우, 의료진이 환자 혈압이 잘 조절되고 있는지 여부를 알기 어려워 과잉진료를 할 수 있지만, 치료에 심각한 지장은 주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 경우가 있다. 병원에서 잴 때는 정상 혈압으로 측정되는데, 사실은 고혈압인 경우다. 이것을 무증상 가면을 쓴 고혈압이라고 해서 ‘가면 고혈압’이라 한다.
아침고혈압 환자에 많아
가면고혈압은 최고 혈압과 최저 혈압 차이가 큰사람 중 아침 기상 시 혈압이 높은 ‘아침고혈압’ 환자에게 잘 나타난다. 하루 중 최고 혈압과 최저혈압이 최대 25.4(수축기)/10.8(이완기)㎜Hg 차이 나기도 한다. 고대구로병원 순환기내과 박창규 교수는 “아침에 최고 혈압을 기록했다가, 이미 병원에서 혈압을 잴 때는 하루 중 혈압이 가장 낮은 시점이거나 안정 상태인 경우가 많아 혈압이 정상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가면고혈압인데 혈압 관리를 제때 하지 않으면 신장, 심장, 혈관등 여러 장기에 큰 손상을 미칠 수 있다.
최근 국내 연구 결과로 원인 밝혀져
최근 고대구로병원 등 전국 9개 대학병원 연구팀이 고혈압 환자 1087명을 대상으로 병원 측정 혈압과 평소 혈압(기상 1시간 이내·수면 1시간 전 집에서 2회 연속 측정한 혈압 평균치)을 비교한결과, 평소 혈압이 병원 측정 혈압보다 높은 가면 고혈압 환자가 10%에 달했다. 특히 65세 이상이 13.4%로 평균보다 높았다. 그동안 가면고혈압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는데,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면고혈압 발병 위험은 고혈압약인 베타차단제를 복용하는 사람이 다른 약을 쓰는 사람의 4.2배, 규칙적인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운동을 하는 사람의 2.9배 높았다. 전문의들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베타차단제, 운동부족, 혈관노화 등을 가면고혈압의 원인으로 추정한다.
박창규 교수는 “노화혈관벽의 탄력성이 떨어지면서 최대 혈압과 최저 혈압의 변동 폭이 커지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당뇨병·심혈관질환·신장질환 환자나 이런 질병의 가족력이 있는 사람에게 잘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또 고혈압 가족력이 있거나 과체중, 이상지질혈증(고지혈증) 등이 있으면 가면고혈압 위험군이다.
평소 규칙적으로 혈압 체크해야
가면고혈압 위험군에 속한다면 병원에서 잰 혈압만 믿지 말고 평소 규칙적으로 혈압을 체크한다. 또 모든 고혈압 환자는 병원에서 측정한 혈압이 정상이더라도 일상생활에서 혈압이 올라가는 경우가 계속되면 의료진과 상의해 ‘24시간 활동 혈압’을 측정해 가면고혈압 여부를 확인한다. 최근에는 1기 고혈압(140/90~159/99㎜Hg) 환자는 24시간 혈압검사를 통해 정확한 혈압을 체크 하도록 한다. 한편 고혈압이 있어서 주로 오후에 진료받았다면, 진료시간을 오전으로 바꾸는 것도 정확한 혈압 측정에 도움된다. 베타차단제 복용자는 가면고혈압이 나타나면 주치의와 상의해 다른 약으로 변경할 것을 고려한다.
일러스트 조영주
도움말 박창규(고대구로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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