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부르는 잘못된 언어 표현들 - 강선영 박사
시대마다, 지역마다, 오랜 관습에 의해 내려온 언어 표현들이 있다.
어떤 것들은 속담이 되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전혀 다른 의미로 회자되기도 한다.
그 중에 우리가 뜻을 제대로 모르고 사용하거나,
잘못된 해석을 해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인간관계에 금이 가게 하는 표현들이 많다.
그 표현들은 너무나 흔하며,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 생활 속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이런 말들이 타인을 해치는 독이 된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아무 생각 없이 함부로 말하여 상처 주는 행위를 이제는 반드시 멈추어야 한다.
그 중 몇 가지만 살펴보기로 한다.
♣ 넌 고집이 세
고집이 센 것과 소신 있는 행동은 보기에 따라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고집이 세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에도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하며
타인의 충고나 조언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신념이 강하거나 소신이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올바른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 화가 나면
"너는 정말 고집이 세구나"라고 비난하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사람마다 자신의 신념과 생각이 다르다.
자신을 따르지 않는다고 고집이 세다며 비난하는 것은 상처를 일부러 주는 행위가 된다.
그러므로 함부로 고집이 세다는 표현을 하면 안 된다.
범죄를 저지른 후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고집이 센 사람인 것이다.
나쁜 짓을 서슴치 않고도 절대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며
계속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고집이 센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고집이 세다고 말하라.
그러나 그런 범죄자가 아니라면 섣불리 고집이 세다고 빈정거리지 말아야 한다.
특히 자신의 어린 자녀에게 고집이 세다며 폄하하거나 모욕을 주면
아이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넌 너무 여려
눈물이 많고 상처를 잘 받는 사람에게 '너는 너무 여려서 큰일이야'라는 표현을 흔히 쓴다.
마음이 여려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나가겠냐는 투의 빈정거림이 담겨있다.
여리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마음이 착하다, 마음이 따뜻하다, 마음이 부드럽다, 라고 표현할 수 있다.
마음이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 눈물이 많고 상처를 더 깊게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쁜 것인가.
여리다는 말이 부정적이고 비난투의 의미가 표현되는 것은
상처를 잘 받는 그들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 나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여리다는 말의 반대는 강하다, 세다, 등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강하고 센 것 역시 나쁜 것은 아니다.
강하고 센 것이 타인에게 가해의 이미지로 다가올 때 나쁜 것이다.
여리다는 말 대신에 "너는 너무 독해. 너무 강해"라고 말하면 기분이 좋을까.
그것 역시 좋지 않을 것이다.
“여리다. 또는 강하다.” 그 두 가지의 표현 어느 것도 비난할 수 없다.
그것은 그저 각 사람의 특성일 뿐이다.
서로 취약한 부분이 있을 뿐 어떤 쪽도 나쁘기만 하거나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여리다는 말을 부디, 마음이 따뜻하고 착한 사람을 빈정거리기 위해 쓰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은 강하고 센 성격의 사람을 선호하는가?
그럴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반대 성향을 디스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또한 센 쪽이 여린 쪽을 주로 상처 주게 되는데 상처를 받는 쪽이 특별히 더 나쁜 것은 아니다.
부디 어느 쪽도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길 바란다.
♣ 난 A형이라 소심해
혈액형으로 성격을 규정하고 표현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범하는 잘못된 표현이다.
혈액형별 성격을 확고하게 믿는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상처가 되면
"O형 같은 A형"이라는 표현이 나왔을까.
단 네 가지의 혈액형으로 수많은 성격을 어떻게 가름 할 수 있겠는가.
네 가지의 혈액형 특징은 사실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섞여 있다.
혈액형이 맞는지에 대한 실험으로 이러한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상황에 따라 심리상태에 따라 소심한 A형처럼 보였다가 활발한 B형처럼 보이는 것뿐이다.
나는 누구보다 말을 잘 하고 대담한 A형 혈액형의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또한 아주 소심하고 수줍음이 많은 O형도 많이 알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있는 일반적인 특성을 한 가지만 끌어내면
혈액형별 성격 특성이 아주 비슷하게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제발 혈액형으로 성격을 가늠하지 말자.
사람의 성격과 기질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며
매우 복잡하며 장점과 단점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 사람의 뇌리에 각인되어
견고한 선입견으로 굳어져 있기 때문에 쉽게 변할 것 같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우선 혈액형을 물어보는 사람을 경계하고 무지한 태도라는 것을 알게 해주어야 한다.
♣ 넌 너무 내성적이라 큰일이야.
많은 엄마들이 조용한 성격의 자녀들에게 하는 말이다.
내성적인 성격이 뭐가 문제인가?
내성적이면 손해 본다는 잘못된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엄마들은 내성적인 자신의 아이를 성격개조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가기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해병대캠프에 보내서 더 큰 문제를 부르기도 한다.
내성적인 성격의 반대는 외향적이다.
둘 다 장점과 단점이 있다.
내성적인 것을 소심한 것과 동의어로 사용하는 것은 반드시 고쳐야할 인식이다.
내성적인 사람이 반드시 소심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외향적인 사람도 소심해진다.
내성적인 성향은 조용하고 차분하게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후에 말을 하기 때문에
말의 실수가 적고 훨씬 더 능률적으로 공부나 일을 할 수 있고 성과를 더 낼 수 있는 성향이다.
외향적인 성향은 생각을 하면서 말을 하기 때문에
내성적인 사람보다 말의 실수를 더 많이 할 수 있는 확률이 높다.
물론 생각과 행동을 동시에 하기 때문에 뭐든 빠르게 진행하며,
낯선 사람에게도 쉽게 다가가 사교적이라고 보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내성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과 친해지려면 상대를 신중하게 파악하기 위한 시간이 걸린다.
외향적인 사람에게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내성적인 사람이 느리고 굼뜨고 답답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약 7초 정도만 기다려 주면 된다.
그러면 발표도 잘 하고 논리적으로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바로 내성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내성적인 것을 자꾸만 나쁘게 비난하면
자꾸만 움츠러들고 주눅이 들어서 소심해지게 된다.
소심해지는 것은 성격과 상관이 없다.
외향적인 아이와 내성적인 아이 모두에게
매일 모욕감을 주는 말을 한다면 틀림없이 둘 다 소심해진다.
어떤 사람이든 상처를 계속 받으면 소심해진다.
소심해지는 것은 대범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잃어버리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
결코 성격이 아니다.
내성적인 것이 나쁜 것이 아님을 꼭 기억하자.
오히려 장점이 훨씬 많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최근 한 드라마의 제목이 "내성적인 보스"란다.
나는 그 제목을 "소심한 보스"라고 바로잡고 싶다.
그런 드라마를 본다면 소심하고 주눅 들어 있는 남자 주인공을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더욱 오해하게 될 것이다.
소심한 것은 마음 속 상처가 쌓여서 생긴 증상 같은 것이다.
상처를 씻고 원래의 자기 자신을 찾으면
내성적인 것이 열등한 성격이 아니며 소심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난 다혈질성격이라 욱하는 거야.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자기 합리화를 하기 위해 흔히 쓰는 언어습관이다.
"나는 욱하는 성격이지만 뒤끝은 없어"라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마구 한다.
세상에 화를 잘 내는 성격은 없다.
화를 잘 내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미성숙한 상태이기 때문에,
화를 잘 내는 못난 자기 자신을 조금이라도 합리화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다.
마음 속 밑바닥에 수많은 상처들이 모여 불안과 분노를 짚불처럼 지펴 올리는데,
이것이 툭하면 화를 내는 습관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아주 외향적이고 화통한 성격이라 하더라도 화를 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화를 내고 나면 자신은 조금 시원하겠지만,
곁에 있던 사람들은 분노의 파편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다.
자신은 시원해져서 뒤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주위사람들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피투성이가 되어 신음하며 뒤끝 작렬 상태가 된다.
차라리 그런 말로 합리화하지 말고
"난 정말 치유해야 할 상처가 많은가봐. 난 아직 화를 잘 내는 어린애 같아"라고
솔직해지는 편이 더 훌륭해 보일 것이다.
♣ 넌 왜 이렇게 예민하니
예민하다는 것이 나쁜 의미로 쓰이고 있다.
까탈스럽고 불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주로 쓰인다.
이런 잘못된 의미를 바로잡아야 한다.
예민해야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아니 예민하지 않으면 무엇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술가나 세밀한 연구직의 사람들이 주로 그럴 것이다.
그들이 예민하지 않았다면 훌륭한 예술 작품도 과학 발전도 없었을 것이다.
예민한 것이 나쁜 것이라면 무뎌져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성격이 무디다면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장점이 있지만
타인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하고 쉽게 무심해지는 단점도 크다.
자신의 심기가 불편해지면 상대를 쉽게 공격하려는 연약한 인간의 심리가,
뭐든 무의식적으로 나쁘게 해석하여 공격의 빌미로 삼게 되는 것이다.
예민한 사람들이 이 세계를 발전시켰으며 아름답게 만들었다.
예민한 사람들의 헌신으로 세상에는 아름다운 음악과 미술과 문학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예민하다는 말이 칭찬의 말로 쓰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 넌 너무 착해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착한 남자" "착한 식당" "착한 가격"등의 표현이 정착하게 되었다.
착하다는 말은 분명히 긍정적인 말이다.
여자들이 흔히 수다를 떨며 하는 말로
"뭐니 뭐니 해도 착한 남자가 최고야.
아무리 돈 많아도 성질이 더러우면 꽝이야. 착한 게 최고"라고 말한다.
카페 한 쪽에서 커피를 마시다보면 듣게 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너무 착하다는 말이
자기 주관이 없어서 남들에게 휘둘리는 유약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또한 "넌 착하니까 엄마 말 잘 들을 거지?" 라는 식으로
어린아이를 조종하기 위해 엄마가 무의식적으로 이 말을 한다.
아이도 무의식적으로
'나는 착해야 하는구나. 착하지 않으면 엄마가 나를 싫어하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억지로 자기 생각을 억누르고 착한 아이가 되려고 한다.
남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 되어 인간관계에서 늘 긴장하고 할 말도 못하게 되고
거절도 할 수 없는 유약한 사람이 된 자신을 향해 '난 너무 착해서 힘들어'라고 생각한다.
주위 사람들에게 늘 들어온 말이기 때문이다.
착하다는 말로 남을 조종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어느새 착하다는 표현은 듣기 싫은 말이 되었다.
착한 사람이라는 말은 선하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착한 것이 나쁜 의미라면 악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모두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지 않고 오히려 위로해주고 도와주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넌 왜 이렇게 감정적이야?
감정적이라는 말이 나쁜 뜻으로 오해받고 있다.
사람의 성격 척도 중 감성형과 이성형이 있다.
두 가지 모두 나쁜 것이 아니다.
장점과 보완점이 있을 뿐이다.
감정적으로 되는 것은 두 성향 모두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감정을 상하게 되면 아픈 감정이 살아나고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감정을 못 느끼는 것이 문제이지 감정을 잘 느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감정적인 사람은 아주 질이 나쁜 사람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이런 표현보다는 "너의 감정이 상했구나. 기분이 안 좋아 보여"라는 말로 고쳐야 한다.
감정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 인간적인 것이며 바람직한 것이다.
누군가 기분 나쁜 말을 했는데도 아무 감정을 못 느낀다면 그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된다.
나는 종종 너무 큰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이
마음을 마취한 것처럼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본다.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마비시켜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아무 감정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이 가장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감정을 격하게 드러내는 사람은 상처받은 사람이니
그런 사람의 아픔을 공감해주고 위로해 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누군가를 공격하여
자신이 우위를 점령하기 위해, 자신의 열등감을 잊기 위해,
자신의 못난 모습을 감추기 위해, 상대방을 조종하거나 위협하려는 무의식적 동기로
생각 없이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고 있다.
상처 주는 언어 표현을 습관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성경> 마가복음 9장 42절 말씀에 기록된 표현을 보면,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고 했다.
바닷물에 빠져 죽는 것이 낫다고 할 정도로 상처 주는 행위를 강도 높게 경계하고 있다.
함부로 말하고 잘못된 표현을 쓰는 것이 바로 소자를 실족하게 하는 행위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죄악이다.
자신도 모르게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 않도록
회개하고 돌이키고 바른 언어 표현을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치유와 따뜻한 동행 / 크리스천투데이
= 강선영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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