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도자기,사찰

무형 문화제 [제26 - 50 호 ]

문성식 2011. 2. 11. 11:06

제26호 : 영산줄다리기(靈山줄다리기) 69,2,11

줄다리기는 마을을 동·서로 갈라 두패로 편을 짜서 노는 편싸움으로, 동서 양편은 각각 남성과 여성으로 상징되며, 생산의 의미에서 여성을 상징하는 서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전한다. 줄다리기는 줄쌈이라고도 하며 영산지방에서는 ‘줄땡기기’ 또는 한자어로 ‘갈전(葛戰)’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산의 칡넝쿨보다 길게 줄을 만들어 당겼다는 옛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줄다리기는 주로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 벼농사를 위주로 하는 중부 이남지역에서 널리 행해지는 농경의식의 하나로 보고 있다. 현재는 3·1 문화제 행사의 하나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제27호 : 승무(僧舞)  69,7,4

승무는 흔히 중춤이라고도 하지만 불교의식에서 승려가 추는 춤을 말하는 것이 아닌 민간연향(民間宴享)에서 무원(舞員)이 흰 장삼을 입고 흰 한삼을 끼고 붉은 띠 모양의 가사를 매고 흰 고깔을 쓰고 추는 춤을 가리킨다.
재(齋)와 같은 큰 불교의식에는 승려들이 법고춤, 바라춤, 나비춤 등을 추는데 이것은 승무라고 하지 않고 작법(作法) 또는 법무(法舞)라고 부르는데, 현행 작법은 승무와 춤이 다르다.

 

제28호 : 나주의샛골나이(羅州의샛골나이)  69,7,4

나주의 샛골나이는 전남 나주 샛골의 무명짜는 직녀 또는 무명짜는 일에 대한 통칭이다. 무명의 원료인 목화는 고려말 문익점이 중국 원나라에서 들여온 것으로, 조선 초기부터 쌀과 함께 화폐구실을 할 정도로 급속히 보급되었으며, 일본으로 보내는 주요 교역품 가운데 하나였다.

제29호 : 서도소리(西道소리) 69.9.27

서도소리는 황해도와 평안도 지방, 즉 서도지역에서 불리워진 민요나 잡가 등을 말하며, 언제부터 불리워졌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서도소리는 평안도 민요와 황해도 민요, 서도잡가, 한시를 읊은 시창(詩唱)으로 나눈다.
서도소리의 가락은 흔히 수심가토리라고 하여 대개 위에서부터 질러내며, 위의 음은 흘려 내리고, 가운데 음은 심하게 떨며, 아래의 음은 곧게 뻗는 특이한 선율 진행을 보여주고 있어서 이들 소리를 느긋하게 부르면 구슬픈 느낌을 주게 된다. 서도소리 창법은 좀 특이한데 콧소리로 얇게 탈탈거리며 떠는 소리, 큰소리로 길게 쭉 뽑다가 갑자기 속소리로 콧소리를 섞어서 가만히 떠는 소리 등이 특징이다.
서도소리는 예로부터 대륙과 인접한 거친 풍토에서 북방 이민족과 함께 겨루며 굳세게 살아온 서도지방민들의 생활속에서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소리로, 노랫가락에도 그들의 생활감정이 잘 드러나 있다. 현재 서도소리에 지정되어 있는 것은 평안도 민요인 ‘수심가’, 시창인 ‘관산융마’, ‘배뱅이굿’ 등이다.

 

제30호 : 가곡(歌曲)  69.11.10

가곡은 시조시(時調詩)를 관현반주(管絃伴奏)에 얹어 오장형식(五章形式)으로 부르는 노래이다.
가곡에는 남창(男唱)과 여창(女唱)의 조(調)가 따로 있고, 우조(羽調)로 된 곡과 계면조(界面調)로 된 곡이 따로 있고, 또 음악의 형태에 따라 초삭대엽(初數大葉)이니 이삭대엽(二數大葉)이니 하여 여러 종류의 노래로 되어 있다.
가곡은 5장형식으로 되어 있다. 먼저 전주(前奏)의 구실을 하는 대여음(大餘音)이 기악합주로 나오면 초장·이장을 부르고 간주(間奏) 구실을 하는 기악합주의 중여음(中餘音)이 나온 다음 다시 사장·오장의 노래를 부르고, 후주(後奏)와 다음곡의 전주 구실을 하는 대여음을 기악으로 연주하고 다음 노래로 넘어간다.

 

제31호 : 낙죽장(烙竹匠) 69.11.29

낙죽장(烙竹匠)이란 불에 달군 인두를 대나무에 지져가면서 장식적인 그림이나 글씨를 새기는 기능 또는 그러한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낙죽이 물건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고대 중국에서부터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드문 기술이었으나, 조선 순조(재위 1800∼1834)때 박창규에 의해 일제시대까지 전승되었다.
낙죽은 온도를 맞추어 그려야 하고 인두가 식기 전에 한 무늬나 글씨를 마무리지어야 하기 때문에 작업 경험과 속력을 필요로 하는데, 주로 화살대·침통·칼자루·병풍·담뱃대·부채·대나무필통 등에 쓰인다. 낙죽은 접는 부채의 맨 처음과 마지막에 쓰이는 두꺼운 대나무(합죽선)살에 가장 많이 쓰인다. 합죽선에는 나비무늬를 많이 사용하지만 간혹 박쥐무늬도 보인다.

 

제32호 : 곡성의돌실나이(谷城의돌실나이) 70.7.22

‘돌실’은 전남 곡성군 석곡면을 가르키는 것으로, ‘나이’는 삼베를 짜는 일(길쌈) 또는 그러한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삼베는 ‘베’라고도 불리며, 한자어로는 마·마포·포 라고도 한다. 곡성의 돌실나이는 예로부터 품질이 우수하고 섬세하여 삼베의 대명사로 불리웠다.
삼베는 전기 신석기시대의 유적인 궁산조개더미에서 뼈로 만든 바늘에 실이 감겨 있는 것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기술이 발달하여 중국으로 수출하였고, 문물교환의 수단으로 모시와 함께 사용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면의 재배로 삼베의 생산이 약간 줄어들었다.
삼베의 제작과정을 보면 우선 재배를 해서 수확을 한 후, 잎을 훑은 삼단을 삼굿에 넣고 쪄서 껍질을 벗기고 햇볕에 말린다. 삼을 쪼개는 과정을 거친후, 실을 한올 한올 길게 잇는다. 그 후 베 한 필의 길이와 삼베에 따라 몇 올이 들어갈지 결정한다. 마지막으로 풀 먹이는 과정을 거친 다음 베틀을 이용해 베를 짠다.

 

제33호 : 광주칠석고싸움놀이 70.7.22

고싸움놀이는 주로 전라남도 일대(현재의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 칠석마을)에서 정월 대보름 전후에 행해지는 격렬한 남성집단놀이이다. 고싸움의 고란 옷고름, 고맺음, 고풀이 등의 예에서 보듯이 노끈의 한 가닥을 길게 늘여 둥그런 모양으로 맺은 것을 말하며, 2개의 고가 서로 맞붙어 싸움을 벌인다 해서 고싸움이라 부르는 것으로 추측된다.
고싸움은 줄다리기와 마찬가지로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의식의 한 형태이며, 놀이를 통하여 마을사람들의 협동심과 단결력을 다지는 집단놀이로서 의의를 지닌다.

 

제34호 : 강령탈춤(康翎탈춤)  70.7.22

탈춤이란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가면으로 얼굴이나 머리 전체를 가리고 다른 인물, 동물 또는 초자연적 존재(신) 등으로 분장한 후 음악에 맞추어 춤과 대사로써 연극하는 것을 말한다. 탈춤은 조선 전기까지 각 지방에서 행해지던 가면놀이이다. 17세기 중엽에 이르러 궁중의 관장하에 “산대”라 불리는 무대에서 상연되던 산대도감극(山臺都監劇)의 형태로, 인조 12년(1634)에 궁중에서 상연이 폐지되자 민중에게 유입되어 전국으로 전파되었다.
강령탈춤은 매년 단오에 행해지는데 언제 어떻게 성립되었는지 밝힐만한 자료는 없으나, 늦어도 조선 후기까지는 성립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제35호 : 조각장(彫刻匠)  70.7.22

조각장은 금속에 조각을 하는 기능이나 기능을 가진 사람으로, 조이장이라고도 한다. 금속조각은 금속제 그릇이나 물건의 표면에 무늬를 새겨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출토된 유물에 의하면 금속조각은 청동기시대에 처음 발견되었고, 삼국시대에는 여러 가지 조각기법이 사용되었으며, 고려시대에 매우 발전되었다. 그 후 조선시대에는 경공장(京工匠)의 금속공예 분야가 세분화되어 조각장이 따로 설정되어 있었다.


제38호 : 조선왕조궁중음식(朝鮮王朝宮中飮食)  1970.12.30

조선왕조 궁중음식은 고려왕조의 전통을 이어 온 조선시대 궁궐에서 차리던 음식으로 전통적인 한국음식을 대표한다.
궁중에서의 일상식은 아침과 저녁의 수라상(임금이 드시는 진지상)과 이른 아침의 초조반상(初祖飯床), 점심의 낮것상의 네 차례 식사로 나뉜다. 탕약을 드시지 않는 날에는 이른 아침(7시이전)에 죽과 마른찬을 차린 초조반상을 마련한다. 아침과 저녁의 수라상은 12가지 반찬이 올라가는 12첩 반상차림으로, 원반과 곁반, 전골상의 3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밥은 흰쌀밥과 팥밥 두가지와 육류, 채소류, 해물류의 다양한 재료로 여러 가지 조리법을 고르게 활용하여 반찬을 마련하고, 김치류와 장류 등을 차린다. 점심상이나 간단한 손님상은 국수 등의 면상으로 차린다. 왕과 왕비의 생신, 회갑, 세자책봉 등 왕족의 경사 때와 외국사신을 맞이할 때에는 연회식을 차린다.
조선왕조 궁중음식의 주식류은 수라, 죽, 응이, 면, 만두류가 있다. 반찬류에는 탕, 조치, 찜, 선, 전골, 볶음, 구이, 적, 전유화, 편육, 숙채, 생채류, 겨자채, 구절판, 전복초, 홍합초, 장라조리개, 육포, 족편, 육회, 어회, 숙회, 쌈, 어채, 김치류, 장류가 있다. 병과류에는 각색편, 각색단자, 두텁떡, 화전, 인절미, 약식, 주악, 각색정과, 다식, 과편, 약과, 강정, 숙실과(밤, 대추, 율란, 조란, 강란)이 있다. 화채류에는 청면, 화면, 오미자화채, 식혜, 수정과, 배숙, 수단이 있다.
궁중의 식생활은 『경국대전』,『조선왕조실록』, 각종 『진연의궤』,『진작의궤』,『궁중음식발기』등에 기록해 놓은 그릇, 조리기구, 상차림 구성법, 음식이름과 음식의 재료 등을 통해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제39호 : 처용무(處容舞)  71.1.8

처용무란 처용 가면을 쓰고 추는 춤을 말한다. 궁중무용 중에서 유일하게 사람 형상의 가면을 쓰고 추는 춤으로, ‘오방처용무’라고도 한다. 통일신라 헌강왕(재위 875∼886) 때 살던 처용이 아내를 범하려던 역신(疫神 : 전염병을 옮기는 신) 앞에서 자신이 지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춰서 귀신을 물리쳤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제40호 : 학연화대합설무(鶴蓮花臺合設舞)  71.1.8

학연화대합설무란 조선 전기 궁중에서 악귀를 쫓기 위해 베풀던 의식 다음에 학무·연화대무를 연달아 공연하는 종합적인 무대를 말한다.
학연화대합설무는 동물과 인간과의 교감세계를 표현한 독특한 춤으로 예술성이 높고, 내용이나 형식에 있어서 오랜 역사성과 전통성을 간직하고 있어 높은 가치가 있다.

 

제41호 : 가사(歌詞)  71.1.8

가사는 우리나라 전통 성악곡의 한 갈래로, 가사체(산문에 가까운 문체)의 긴 사설(글)을 담은 장편 가요를 일컫는다. 언제 발생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여러 가사집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조선 영조(재위 1724∼1776) 이후부터 불리기 시작했으리라 추측된다.
오늘날까지 전래되고 있는 곡은 백구사, 죽지사(건곤가), 황계사, 어부사, 춘면곡, 상사별곡, 길군악(노요곡), 권주가, 수양산가, 처사가, 양양가, 매화타령(매화가) 등 12곡이며, 이를 12가사라고 한다. 이 곡들의 작사자나 작곡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한말에 전통이 성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가사는 형식이 자유로워 감정이나 자연미를 표현하기에 좋고, 일반적인 노래라기 보다는 전문가의 노래라 할 수 있으며, 평화스러움과 향토적인 멋이 느껴지는 고유음악이다.

 

제42호 : 악기장(樂器匠)  71.2.24

악기장이란 전통음악에 쓰이는 악기를 만드는 기능 또는 그러한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고구려의 벽화 속에는 이미 관악기와 현악기, 타악기가 모두 출현하고 있어 악기를 만드는 장인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시대에는 궁중에 악기조성청이라는 독립된 기관을 설치하여 국가에서 필요한 악기를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현재 우리나라 국악기는 약 60∼70종으로 가야금과 거문고가 가장 대표적이다. 그 다음으로 아쟁·대쟁·호금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와공후·수공후·당비파·향비파·양금·금과술 등이 제작되고 있으나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제43호 : 수영야류(水營野遊) 71.2.24

야류(들놀음)는 경상남도 내륙지방에서 행해지던 오광대가 바닷길을 따라 수영·동래·부산진 등에 전래된 것으로, 야류란 이름은 넓은 들판같은 곳에서 놀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오광대가 전문연예인에 의해 행해진 도시가면극이라면 야류는 비직업적인 연희자들, 즉 마을사람들에 의해 토착화된 놀이이다.
다른 야류하고는 달리 문둥이춤이 없는 대신 사자춤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수영야류는 약 200년의 역사를 가진 탈놀음으로 제례의식적인 성격과 함께 사회성 및 예술성이 높은 귀중한 무형문화재이다.

 

제44호 : 경산자인단오제(慶山慈仁端午祭)  1971.03.16

한장군놀이는 경상북도 경산군 자인면에 단오날에 행하던 민속놀이를 말한다.
한장군놀이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어 전통있는 향토신사라는 데 의의가 있고 마을 사람들은 수호신으로 여기고 신앙하고 있어서 이 고장 사람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고 있다. 왜병을 격퇴했다는 점에서 일제하에서는 금지되었다가 해방 후에 다시 재현해서 놀이되고 있다.
한장군놀이는 화관의 높이가 3m나 되는 거대한 것이고 춤사위도 매우 독특하여 예술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리의 향토신사가 문헌에 기록된 것이 별로 없는데 반해서 한장군놀이는 군지(郡誌)와 『동국여지승람 東國輿地勝覽 』등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옛날에 있어서도 향토의 큰 행사로 거행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제45호 : 대금산조(大금散調)  1971.03.16

대금산조는 산조대금으로 연주하는 산조음악을 말하며 가야금에 풍류 가야금과 산조 가야금의 두가지가 있듯이 대금에도 정악을 연주할 수 있는 정악대금과 시나위나 남도 무악에 주로 쓰이는 산조대금의 두 가지가 있다.
산조대금은 원래 정악에 쓰이는 대금과 크기와 지법면에서 다르다. 즉, 산조대금은 다양한 가락의 운지(運指)에 편하도록 짧게 만들고 취구(吹口)가 커서 요성(搖聲)의 폭을 넓게 한다. 정악에서는 합주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음의 변화가 많지 않으나 독주를 위주로 하는 민속악의 산조나 시나위는 연주자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러나 대개 정악대금보다 단3도 정도 높은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제46호 : 피리정악및대취타(피리정악및大吹打)  1971.06.10

대취타는 호적(湖笛), 나발(喇叭), 소라(나각, 螺角), 바라징북(용고, 龍鼓)과 같이 음량이 큰 악기들로 편성되어, 왕의 거동이나 귀인의 행차 및 군대행진에서 취고수(吹鼓手)들이 연주하는 행진음악을 가리킨다.
고구려 벽화에 고취악대(鼓吹樂隊)의 행렬이 보이고 백제의 음악에 고(鼓), 각(角)과 같은 고취악기가 쓰였다는 것을 통해 취고수들의 행진음악은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취타는 행진음악으로 일명 무령지곡(武寧之曲)이라 이르며 호적(태평소, 太平簫), 나발, 소라, 바라, 북, 징으로 편성된다. 호적은 주선율을 연주하며 나발과 소라는 교대로 뚜- 하고 지속음을 길게 불며 바라, 북, 징은 리듬을 연주한다. 대취타는 매우 씩씩하고 장중한 음악이다.

 

제47호 : 궁시장(弓矢匠)  1971.09.13

궁시장이란 활과 화살을 만드는 기능과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데, 활을 만드는 사람을 궁장(弓匠), 화살을 만드는 사람을 시장(矢匠)이라 한다.
본래 우리 민족은 오래 전부터 활제작에 있어서 세계 어느 민족보다 탁월한 기교를 가졌다고 전해진다. 중국에서는 한국 민족을 활을 잘 만들고 잘 쏘는 동쪽의 민족이라는 뜻에서 ‘동이’라고 하였다. 고구려 활의 형태는 벽화속에서 볼 수 있는데 현재 사용하는 국궁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한국의 전통활은 이때부터 변함없이 이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시대에도 활쏘기를 중요시했으며, 조선 전기에는 과거시험의 무과과목에 궁술이 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부터 조총이 수입되어 활은 전쟁용 무기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많이 변화하여 현재는 국궁인 각궁(角弓)이 보편화되었다.

 

제48호 : 단청장(丹靑匠)  1972.08.01

단청은 청색·적색·황색·백색·흑색 등 다섯 가지 색을 기본으로 하여 궁궐·사찰·사원 등에 여러 가지 무늬와 그림을 그려 장엄하게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단청은 단벽(丹碧)·단록(丹綠)·진채(眞彩)·당채(唐彩)·오채(五彩)·화채(畵彩)·단칠(丹漆) 등의 다른 이름이 있고, 이에 종사하는 사람을 단청장(丹靑匠)·화사(畵師)·화원(畵員)·화공(畵工)·가칠장(假漆匠)·도채장(塗彩匠) 등으로 부른다. 승려인 경우에는 화승(畵僧), 불화에 숙달된 승려는 금어(金魚), 단순한 단청장은 어장(魚杖)이라고도 일컫는다.

 

제49호 : 송파산대놀이(松坡山臺놀이)  1973.11.11

산대놀이란 중부지방의 탈춤을 가리키는 말이다. 송파산대놀이는 서울·경기 지방에서 즐겼던 산대도감극(山臺都監劇)의 한 갈래로 춤과 무언극, 덕담과 익살이 어우러진 민중의 놀이이다. 이 놀이는 매년 정월 대보름과 단오·백중·추석에 명절놀이로 공연되었다.  송파마을은 경기일원의 상업근거지로, 약 200년전 송파장이 가장 번성하던 때에 산대놀이가 성행하여 오늘날까지 전하는 놀이형태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제50호 : 영산재(靈山齋)  1973.11.05

영산재는 불교의 영혼천도 의례 중 대표적인 재(齋)로서 일명 영산작법(靈山作法)이라고도 부른다. 49재의 한 형태로, 사람이 죽은 지 49일 만에 영혼을 천도하는 의식이다. 이 의식에는 상주권공재(常住勸供齋)각배재(各拜齋) 영산재 등이 있는데, 규모가 가장 큰 것이 영산재이다.
영산재는 석가가 영취산에서 행한 설법회상인 영산회상(靈山會相)을 오늘에 재현한다는 의미를 지닌 법회이며, 이 법회를 통해서 영혼을 천도하는 의식을 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