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정스님 어록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법정스님

문성식 2011. 2. 10. 06:54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간밤에 한줄기 소나기가 지나가더니
    풀잎마다 구슬같은 이슬이 맺혔습니다
    나뭇 가지 마다 아침 햇살을 받아 
    더욱 투명한 초록으로 빛을 발합니다
    세상이 새로 열린듯 한 이런 아침은
    일찍 깨어난 살아 있는 것들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입니다.
    나는 이 여름 앞뜰에서
    풀 뽑는 일로 무심을 익히면서
    풀향기 같은 잔잔한 기쁨을 
    누릴때가 있습니다
    해가 뜨기전 미명의 예감 속에서
    그리고 해가 기운뒤 산 그늘 아래서 
    풀을 하나 하나 뽑고 있으면 
    내 마음이 아주  한적하고 편안해 집니다
    방안에서 좌선을 하거나 
    독경하는 시간보다 훨씬 생생하고 
    그윽한 정신상태 입니다
    번뇌무진 이라더니 잡초 또한 무진입니다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이 돋아납니다
    한동안 오두막을 비워 두었다가 
    돌아오면, 앞뜰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손을 댈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채소밭에 돋아난 잡초도 매주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비워둔 빈집에 군불을 지피고 
    먼지 털고 걸레질 하고 
    이것 저것  정리정돈 하려면 
    시간과 기운이 함께 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는 요령이 생겨 일을
    한꺼번에 하지 않고
    한가지씩 차근 차근 하기로 했습니다
    마당의 풀 뽑는 것도
    그전 같으면 잡은 참에 지치도록  
    단박에 해치우고 나야
    직성이 풀리곤 했는데
    요즘 와서는 조금씩 조금씩 
    전혀 부담 되지 않을 만큼씩만  합니다
    일에 쫒기지 않고 그 일 자체를
    삶의 여백을 즐기듯 해 나갑니다
    풀을 뽑기전에
    오늘은 이만큼만 하자고 
    미리 눈대중으로 금을 그어 놓아요
    일을 하다보면
    재미가 붙어 번번히 그 경계를 넘게 마련 이지요
    장갑을 끼고 호미로 흙을 파서
    풀을 뽑아 냈는데 일을 하고 나면 마당이
    밭처럼 일구어져 개운한 맛이 없어요
    그래서 요즘에는 텁텁하고 답답한
    장갑을 끼지않고
    맨손 으로 뽑습니다
    엄지와 집게 손가락을 쓰고 
    뿌리가 뽑히지 않은 것만 
    호미 대신 대 꼬챙이를 쓰니 
    밭처럼 일구어 지지않아
    일이 적습니다
    풀을 뽑으면서 문득 일어난 생각인데
    우리가 인생을 살다가는  것도
    이런 풀뽑기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잇따라 풀이 돗아 나듯이
    우리가 해야할 일들은 끝이 없습니다
    어떤 일에 마주 쳤을때
    미리 겁부터 먹고 엄두를 못내거나
    미리 무서워 하면서, 미적 미적 미루다면
    아까운 시간만 
    허송 하면서 짐스런 삶이 되고 맙니다
    지금 마주친 이일이 현재의 나에게
    주어진 과제 라고 생각하고
    하나 하나 삶의 의미를 음미하듯
    헤쳐 나간다면
    우리의 인생에서 극복 하지 못할일은
    없을듯 싶습니다
    그리고 모든일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간밤에 내린 비로 땅이 촉촉이 젖어
    오늘 아침에는 풀이 아주 잘 뽑혔습니다
    일에 재미가 붙어 부풀듯 충만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져 풀을 뽑고 나서
    싸리비로 뜰을 말끔히 쓸었더니
    내 마음속 뜰도 
    아주 산뜻하고 말끔해 졌습니다
    그래요 .모든일은 마음에서
    시작해서 결국은 마음으로 귀착 됩니다
    한 마음이 맑고 평안하면
    그 둘레에 맑고 평안한 그늘을 드리우게
    됩니다
    이와는 달리 한 마음이 흐리거나,불안하면
    그 둘레도 
    흐리고 불안한 기운으로 감싸게 되는게
    생명의 메아리 입니다
    이와같이 신선한 아침에는
    번잡스런 일에 접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축복 받은 시간에 
    시끄러운 세상 소식에 귀 기울이거나
    신문이나 잡지 같은것에
    눈을 파는 것은 모처럼 찾아온 축복을
    밀어내는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명상 서적이나 경전의 한두 구절을
    읽고 그내용을 그날 하루치
    양식으로 삼을수 있어야 합니다
    일 마치고 눈부신 초록의 햇살 받으며
    개울가에 나가
    흐르는 물을 한 바가지 떠  마셨습니다
    순간 산천의 맑은 정기가
    내영혼과 몸에 스며 드는것 같았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손을 모으면서 두런 두런 이런 말들이
    새어 나왔습니다
    산하대지 (山河大地 )여, 
    고맙고 고맙습니다!
    이 오두막이여,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이토록 신선한 아침이여.....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나이다!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