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정스님 어록

맑고 향기로운 삶 ./ 법정스님

문성식 2011. 2. 10. 07:05
    
              맑고 향기로운 삶 .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려면 될 수 있는 한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써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큰 것과 많은 것에는 살뜰한 정이 가지 않는다. 
    우리가 너무 크고 많은 것을 추구하다 보니 무뎌져서 
    작고 적은 것에 고마워할 줄 모르게 되었다. 
    내가 가끔 시내에 나오면 편지가 와 있다. 
    편지는 받지만 답장을 자주 쓰지는 못한다. 
    지난 겨울 어느날 밖에는 눈이 오고 
    뒷골에선 노루 울음소리 들려 내 마음도 소년처럼 약간 부풀어올랐다. 
    그래서 묵은 편지를 뒤적이다 
    답장을 몇 군데 써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일어 벼루에 먹을 갈았다. 
    마땅한 종이가 없어 뒤적이다가 
    도배하고 남은 종이 사이에서 화선지 두 장을 발견했다. 
    그것도 전지가 아니고 쪼가리였다. 
    그걸 오려서 편지를 몇 통 썼는데, 
    종이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조심스럽게 아껴 써야 했다. 
    자연히 종이의 고마움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보통 때는 글씨도 크게 써서 끝내곤 했는데 
    그날은 아주 잔글씨로 써서 몇 군데 띄워 보냈다. 
    그때 적은 것이 참 살뜰하고 고맙다는 것을 느꼈다. 
    그 후에 무슨 일이 있어서 밖에 나갔다가 
    지물포에서 화선지를 스무 장 남짓 사 갖고 왔다. 
    그랬더니 쪼가리 두 장 가졌을 때의 
    오붓하고 살뜰하고 고맙던 정이 사라지고 말았다. 
    많은 것은 그런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하나가 필요할 때 둘을 가지려 하지 말라. 
    들을 갖게 되면 그 하나마저 잃게 된다. 
    모자랄까봐 미리 걱정하는 마음이 바로 모자람이다. 
    그것이 가난이고 결핍이다. 
          - 범정 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