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향기로운 삶 .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려면 될 수 있는 한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써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큰 것과 많은 것에는 살뜰한 정이 가지 않는다.
우리가 너무 크고 많은 것을 추구하다 보니 무뎌져서
작고 적은 것에 고마워할 줄 모르게 되었다.
내가 가끔 시내에 나오면 편지가 와 있다.
편지는 받지만 답장을 자주 쓰지는 못한다.
지난 겨울 어느날 밖에는 눈이 오고
뒷골에선 노루 울음소리 들려 내 마음도 소년처럼 약간 부풀어올랐다.
그래서 묵은 편지를 뒤적이다
답장을 몇 군데 써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일어 벼루에 먹을 갈았다.
마땅한 종이가 없어 뒤적이다가
도배하고 남은 종이 사이에서 화선지 두 장을 발견했다.
그것도 전지가 아니고 쪼가리였다.
그걸 오려서 편지를 몇 통 썼는데,
종이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조심스럽게 아껴 써야 했다.
자연히 종이의 고마움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보통 때는 글씨도 크게 써서 끝내곤 했는데
그날은 아주 잔글씨로 써서 몇 군데 띄워 보냈다.
그때 적은 것이 참 살뜰하고 고맙다는 것을 느꼈다.
그 후에 무슨 일이 있어서 밖에 나갔다가
지물포에서 화선지를 스무 장 남짓 사 갖고 왔다.
그랬더니 쪼가리 두 장 가졌을 때의
오붓하고 살뜰하고 고맙던 정이 사라지고 말았다.
많은 것은 그런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하나가 필요할 때 둘을 가지려 하지 말라.
들을 갖게 되면 그 하나마저 잃게 된다.
모자랄까봐 미리 걱정하는 마음이 바로 모자람이다.
그것이 가난이고 결핍이다.
- 범정 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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