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신문, 잡지 등에 남한강변 옛절터가 여러 번 소개된다. 여주 고달사지, 원주 흥법사지,법천사지,거돈사지,그리고 충주 청룡사지…….
옛 절터는 고승들의 발자취와 찬란했던 사찰문화가 남아있어 역사의 향기를 불러 모으고 여유를 가지고 찾을수있는곳이다.
남한강 주변에 사찰이 많은 이유는 남한강의 수운이 중요한 교통로였고, 그 교통로를 따라 왕실이나 유력 귀족들이 사찰을 건립했기 때문이다.
남한강 옛 절터 답사 길은 갈때마다 마음을 들뜨게 한다.
깊은 매력이 있고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답사길 선택은 자유이다.
여주 고달사지에서 시작해도 좋고 충주 목계나루 근처 청룡사지에서 시작해도 좋다.
양쪽 모두 교통 접근도 편리하고 지역 먹을거리도 다양하고 성분은 달라도 답사 후 피로를 말끔히 씻을 수 있는 온천도 양쪽 방향 모두 기다리고 있다.
역사의 흐름을 따라간다며 고달사지를 먼저 찾는 답사자도 있지만 단순한 고집일 뿐이다.
그리고 옛절터에서 식물도감에서 그림으로만 보았던 야생화의 아름답고 싱그러운 모습을 확인하는 것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여주 고달사지
규모와 품격이 뛰어난 고려 석조 문화재
영동고속도로 여주IC을 나와 37번 국도를 따라 여주읍으로 간 뒤 여주대교를 건너 양평이나 북내면 방향으로 길 따라가면 고달사지(사적 제382호.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에 도착한다.
혜목산 자락에 있는 고달사지는 고려 초 3대 선원으로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번창하던 사찰로 섬세한 조각미와 고려인의 호방한 기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현재 발굴작업을 끝내고 탐방로 조성도 마쳤다.
옛 절터 복원은 이렇게 하는구나! 느껴보는 장소이기도하다.
고달사지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잘생긴 석불대좌(보물 제8호),거대하고 강렬한 힘을 가진 원종대사 혜진 탑비의 귀부와 이수(보물 제6호),구름과 용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고 보존이 잘된 원종대사 부도(보물 제7호),팔각원당형으로 아름답고 균형 있는 고달사터부도(국보 제4호),조각이 섬세한 목 잘린 거북상등 규모와 품격이 뛰어난 고려시대 문화재 여러 점이 절터를 지키고 있다.
법당터 앞쪽에 있던 쌍사자석등(보물 제282호)은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관에서 만날 수 있다. 석등은 사자 두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화사석을 받치는 형태이다.
원주 흥법사지
고려 불교의 성지
여주 고달사지에서 나와 양동방향 88번 지방도를 따라 22㎞를 달리면 흥법사(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에 이른다.
앞쪽으로 섬강이 흐르고 뒤쪽으로 영봉산이 감싸고 있다.
?원주 3대 폐사지?의 하나로 흥법사는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온 진공대사(법호 충담, 869-940)가 고려 태조의 왕사로 신임을 받으며 크게 번창했던 곳으로 고려 불교의 성지이다.
흥법사지는 통일신라 말 사찰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며 왕건의 스승 진공대사를 기리는 유물인 진공대사탑비 귀부 및 이수(보물 제365호), 수수한 멋을 간직한 삼층석탑(보물 제464호)과 주변에 주춧돌 등이 남아 있다.
진공대사탑비는 고려 초기의 역동적인 조각기법을 엿볼 수 있다.
세련되고 정연한 모습보다는 볼륨감을 강하게 하여 입체감을 두드러지게 하고 귀두나 용의 역동적인 측면을 유난히 강조한 모습이다.
깨진 탑비 일부가 국립박물관에 보존되어있고 현재 재현품 건립을 추진 중이다.
고려 태조가 직접 비문을 짓고 문신 최광윤이 당태종의 글씨를 집자해 쓴 것으로 유명하다.
고려시대 문신 이제현은 왕건의 충담비문을‘말뜻이 웅장하고 고와서 마치 난봉(鸞鳳)이 일렁이듯 기운이 우주를 삼켰으니 진실로 천하의 보물이라’라고 하였다.
충담의 위대함을 이로서 미루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삼층석탑은 소박한 멋을 주며 기단 면석 안상과 꽃무늬가 새겨져 고려시대 탑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진공대사탑은 현재 원위치에서 떠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관 앞에 있다.
전체적인 조형이 부러운 곡선으로되어있고 석관과 함께 출토되어 당시 석조부도의 건립에 따른 매장풍습을 알려주고 있다.
흥법사지 마을뒤 골짜기로 들어가면 부도탑 자리가 있다.
흥법사 출토로 전하는 염거화상탑(국보 제104호)은 전형적인 승탑의 모습을 처음 선보인 중요한 탑으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본관앞에있다.
원주 법천사지
우리나라 탑비 가운데 최대 걸작이 있는곳
흥법사지에서 문막읍을 거쳐 49번 지방도를 타고 부론 쪽으로 20㎞쯤 가면 부론면 법천사(사적 제466호.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가 있다.
샘처럼 솟는 지혜의 샘과 석공의 눈부신 조각예술을 만나는 곳이다.
법천사는 봉명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봉황새가 날아오르는둣한 형상이라 봉황이 우는 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또한 법천사는 유방선,허균,이달등 훌륭한 시인의 힘을 빌려 아름다운 땅으로 탈바꿈한곳이기도하다.
현재 마을 이름중 ‘장뜰’은 절의 장독간 터를 말하고 ‘도시랑‘은 절의 손님 접대실을 지칭하는데 탑비가 있는 ’서원‘과 함께 3개 부락이 법천사 경내라고 하니 우리나라 3대 절터중 하나라는 말이 나올만하다.
법천사에는 국내 탑비 중 가장 화려하고 정교하다는 고승 지광국사 현묘탑비(국보 제59호)가 있다.
구름무늬 위에 놓인 거북의 머리는 용의 모습인데, 특이하게도 머리를 세우고 머리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수염을 조각했다.
귀부에는 국사 칭호를 받았기에 임금 왕(王) 자를 새겼다. 수학적인 계산도 정확히 하였으니 감탄 할 정도이다.
비석 양 옆면에 새겨진 쌍룡의 몸틀임을 하는 형상은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자세히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여의주 쟁탈과는 다른 모습이다
탑비 앞면 상단 30 센티미터 폭에 그려진 화려한 조각은 천상의 세계를 펼쳐 놓은 것이다.
내용을 보면 주인공인 지광국사(법호 혜린,984-1067)는 부처님에 버금가는 훌륭한 인물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조각은 걸작으로 아름다운 문화유산이다.
탑비 앞 작은 공간은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국보 제101호)이 있던 자리이다부도탑 중 최고 걸작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오사카로 빼돌렸던 것을 반환받아 지금은 경복궁 경내 은행나무 아래 서있다.
원래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야하는데 훼손으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안타까운 문화재가 되었다.
탑비 주변에는 3채의 건물터가 남아있다. 건물터 석축은 가구식으로 만들어져 볼만하다.
서건물지 위에는 석탑 일부와 광배, 배례석 등 석물들이 있고 마을 안쪽 창고 옆에는 법천사 당간지주가 서 있다.
조선왕조 초기 대석학 서거정은 법천사와 흥법사에서 글공부를 했는데 절 풍경을 이렇게 읊었다.
치악산 속의 글 읽던 시절
젊을 때 노닐던 지난날 역력히 기억나네
법천사의 뜰아래서는 탑이 시를 써놓았고
흥법사의 대 앞에는 먹으로 비를 탁본하였지
그대의 행장은 나귀 한 마리에 실을 만한 것도 못되더니
지금은 돌아가는 길을 꿈이 먼저 아는구나
원주 거돈사지
신라 말 고려 초 일탑식 가람
법천사지에서 원주시 부론면 소재지를 지나 599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자작고개를 넘어 정산리 마을에 거돈사지(사적 제168호.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가있다.
거리는 약 7㎞정도 된다. 남한강에서 가장 절터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절터 입구에 이르면 웅장한 석축과 500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
느티나무는 여러 그루의 나무가 군집으로 자라는 것을 싫어하는 성질을 가졌다고하는데 특징을 잘 지킨 고목이다.
석축 돌계단을 오르면 흙을 쌓고 그 위에 탑을 세운 특이한 삼층석탑(보물 제750호)이 있고 뒤로 광활한 절터가 펼쳐진다. 탑 뒤쪽 법당 터에 세워진 불좌대을 보니 과거 거돈사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절터 오른쪽에는 고려 광종의 총애를 받은 고승 원공국사(법호 지종,930-1018) 부도비(보물 제78호)가 있다.
귀부에는 만卍자를 연이어 새겼는데 좌우 방향이 다르게 표현하였다. 석공의 실수였을까? 아니면 어떤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탑비는 해동공자 최충이 짓고 김거웅이 썼다는 구양순체의 선명한 글씨는 아름답다. 보존이 잘되어있어 보기도 좋다.
절터 위쪽에 있던 원공국사 부도탑은 일제 강점기때 일본인에 의해 서울로 반출되었으나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관 앞에 있다.
탑이 있던 자리는 현재 모조품을 세웠다. 훌륭한 석공의 작품이고 복원까지 하였으니 볼만은하다.
절터 한쪽에는 주춧돌,맷돌 등 발굴 석물들을 모아 놓았다. 넓은 거돈사지는 양지꽃,토끼풀이 심어 놓은 듯 피어난다.
개울 건너 옛 정산분교 운동장 한쪽에는 당간지주 한 짝이 쓰러진 채 있다. 당간지주에 대한 전설 이야기는 슬픈 생각을 만들어준다.
충주 청룡사지
조선 초기 조형 예술의 표본
거돈사지을 나와 좌회전해 599번 지방도를 타고 내려가다 단강분교 지나 삼거리에서 목계 쪽으로 우회전해 남한강변길을 달리면 복탄삼거리에 이른다.
여기서 소태로로 좌회전해 4.8㎞를 가면 오량동 청룡사터(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가 나온다.
청룡사지는 행정구역상 충북 충주지만 거돈사지와 가깝다.
‘청룡사 가는길’이라는 이정표를 보고 산위로 올라가지 말고 평지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 부근에는 옛 절터 흔적이 남아있다. 산기슭으로 난 숲길로 올라가면 입구에 조선 숙종 때 불자들의 기증 내용을 기록한 위전비가있다.
여름이 되면 길에는 이끼가 파란 융단을 깐것처럼 만들어 놓는다.
조금 지나면 항아리 모양의 부도인 적운당 부도가 있다.
그 뒤편으로 조금 올라가면 여말 선초의 고승 보각국사(1320-1392) 사자석등(보물 제656호),부도인 정혜원융탑(국보 제197호),정혜원륭탑비(보물 제658호)가 모습을 드러낸다.
모두 태조 이성계의 명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조용한 산중이라 문화재 도난이나 훼손을 방지하기위해 보안장치를 설치했다. 실제 탁본을 하는 사례가 많았다.
부도는 중대석과 몸돌을 부풀려 놓아 아름다운 극치를 보여주고 지붕돌에는 봉황과 용머리가 조각된 특이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부도 비는 남한강 줄기 옛절터에서 볼 수 없는 귀접이 형식으로 비신만 있다. 권근이 비를 지었고 승려 천택이 글씨를 썼다. 석등은 한 마리의 사자가 앞을 향해 엎드려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 제2기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이은정기자(dangy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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