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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도시속의 과거 공간 -인천도호부청사와 인천향교

문성식 2011. 2. 7. 02:34

 

 

현재 거주하고 있는 인천에는 과연 어떤 인천문화유적지가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많은 자료를 찾던 중, 위치 적으로 인천시민들의 발길이 많이 모이는 곳에 입지해 있는 문화유적지를 찾을 수 있었다.

인천의 지붕이라 일컬어지며 문학 산성이 있는 문학산 근처에 위치한 ‘인천도호부청사 와 인천향교’였다.

이 둘은 인천 철 ‘문학경기장’역에서도 쉽게 찾아 갈 수 있는 곳이었는데 거의 3년 정도를 인천에 거주하면서도, 이곳을 수없이 지나치면서도 “왜 가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밤샘작업을 앞둔 오후 만사를 제쳐두고 카메라와 함께 기숙사를 나왔다.

 

인천향교는 인천시내에 남아있는 향교 중 하나이다. 인천시내에는 현재 두 곳의 향교가 남아있는데 하나는 ‘경인교대’역에서 찾아갈 수 있는 “부평향교”이고 하나는 내가 찾아간 “인천향교”이다. 향교는 국가에서 지방에 세운 교육기관이다. 인재 양성과 풍속 교화라는 기능을 수행하였고 지금으로 보자면 학교의 기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향교는 고려 인종 20년부터 각 지방에 나타나게 되었다. 서원과 비교하였을 때 서원은 개인이 설립한 사설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천향교를 찾아가면서 ‘인천도호부 청사’를 또한 알게 되었는데, 도호부청사는 지금의 시청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이곳은 원래 15~16동의 건물로 구성되었다고 전하지만 현재는 객사의 일부와 19세기 초 건물인 동헌, 훨씬 후대에 세워진 창고만이 남아 있다.

 

ⓒ문화재청 , 장새롬이 ▲인천도호부청사 정문 앞

 

 어딘가 골목으로 들어가야 될거야, 아마~? ! 라는 예상과는 전혀다르게

도로옆에 인도를 두고 바로 위치해 있는 인천도호부청사와 향교를 찾을 수 있었다.

인도를 사이에 두고, 담벼락을 사이에두고 현재와 과거는 한 공간에서 함께 하고 있었다.

서울의 경복궁, 창덕궁, 등등 워낙 유명한 명소들이지만 그곳을 다닐 때마다 옛 정취에 기분은 과거를 향해

날아가는 타임머신을 탄듯한 느낌을 주었었다.  나는 이러한 현대적 경계를 좋아한다.

그래서 학기중에도 기분이 좋지 않거나 어디론가 나들이를 가고싶을 때 한시간이상을 전철에서 꾸벅꾸벅하며

시청역을 찾아가야 그러한 기분을 만끽해야했던 시간들이 무력해진듯,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은 밤샘작업을 앞두고, 잠도 미루고 뛰어나온 나에게 엔돌핀을 선사한 행복한 발걸음이 되었다. 

 

ⓒ문화재청 , 장새롬이 ▲문앞을 지키고 있는 수문장들

  

이곳의 관람시간은 하절기일 경우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동절기 일때는

오전 10시부터 오후6시 까지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일로 정해져 있다.

내가 찾아간 이날 오후는, 우리나라의 월드컵경기가 시작되기 몇시간 전 이었기 때문에 방문객들은

많이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는 더 고요하면서 옛 정취를 홀로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도호부는 조선시대 행정기관의 하나로 상급기관인 목(牧)과 하급기관인 군(郡) · 현(縣) 사이에서 행정을 담당했던 관청이다.조선시대에는 전국을 8도(道)로 나누고 도(道)아래 대도호부, 목, 도호부, 군, 현을 두고 지방행정업무를 관장하였다.인천에 도호부가 설치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초기 학자이자 명신(名臣)인 강희맹(姜希孟)이 쓴 "인천부호승호기(仁川府陞號記)"에 1424년 이미 객사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어 최소한 그 이전에 도호부가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천도호부에는 당초 왕권의 상징인 객사(客舍)를 비롯하여 부사의 집무처인 동헌(東軒), 내동헌(內東軒) 등 15~16동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전하는 현재는 문학초등학교 교정에 객사와 동헌 일부만 보존되어 있다. 이 곳에 복원한 건물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花島鎭圖>를 근거로 객사, 동헌, 공수 등 7동의 건물을 복원하였다.

 

도호부사는 도호부의 모든 행정을 통괄하는 자로서 그 주된 임무는 수령칠사(守令七事)라 하여

1,농사와 누에치는 일을 잘 돌볼 것

2,인구를 늘릴것

3,교육을 진흥시킬 것

4,군대에 관한 사무를 바르게 할 것

5,부역등을 균등히 할 것

 6,민사의 소송을 바르게 할 것

 7,간교하고 교활함이 없도록 할것 등 지방수령의 공통임무에 속해 있으며 지방관의 치적은 관찰사를 통해 매년 임금에게 보고되었다. 또한 유사시에는 군대를 지휘하여 전투에 임하는 등 군사지휘권도 장악하고 있었다.

ⓒ문화재청 , 블로그 기자단 장새롬이  ▲인천 도호부 청사

ⓒ문화재청 , 블로그 기자단 장새롬이  ▲인천 도호부 청사 아문(衙門)

  

아문은 관아의 정문으로 2층으로된 누대(樓臺)에 팔작지붕의 형대를 취하고 있다.

이 문은 세칸으로 나누어져 있어 '외삼문'이라 하는데, 가운데 문은 주로 수령만이 출입하고 좌우문은

일반인이 이용하였다. 이문에 이르면 수령 이하 모든 사람이 말에서 내려 걸어서 출입하는 것이 통례였고, 자우에 건장한 문지기들이 지키고 있어 함부로 드나드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문화재청 , 블로그 기자단 장새롬이  ▲인천 도호부 청사 '동헌'

  

아문을 지나고 중문을 지나 나오면 '동헌'에 이를 수 있다. 동헌은 부사(府使)의 집무실로서 객사(客舍)의 동쪽에 있다고하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건물의 격식은 객사보다 한 단계 떨어지긴 하나 그 지역 최고 실력자의 지위에 합당하게끔 위엄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있었다.

중앙은 마루로 된 대청으로 지방의 일반행정업무와 재판이 여기서 행해졌고 좌우의 온돌방은 사무공간이나 옹접공간이었다고 한다.

 

ⓒ문화재청 , 블로그 기자단 장새롬이  ▲ '동헌' 앞의 '충의비(忠義碑)

  

이 비(碑)는 조선왕조개국 (1392)년부터 한일합방 (1910)년까지 인천도호부지사를 지낸 355인의 성명을 새긴 것으로 이는 '조선왕조실록'과 1899년에 발간된 '인천부읍지'등을 바탕으로 작성하였다.

유교 정치이념에서 충(忠)과 의(義)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으로 신하는 임금에게 충성을, 임금은 신하와의 바른도리인 의를 실천함으로써 이를 통해서 '민본정치'(民本政治)를 구현하려 하였다. 

인천이 도호부로 승격될 당시에(1460년) 인천도호부의 관할범위는 부내면(府內面)을 비롯한 10개였고 또 현재 인천광역시 관할범위 역시 10개군, 구로 되어있어서 이를 상징화하기 위해 이 비(碑)를 10면으로 입체화하였다.  

 

 

ⓒ문화재청 , 블로그 기자단 장새롬이  ▲인천 도호부 청사 '동헌'에서 집무보는 부사(府使)

  

ⓒ문화재청 , 블로그 기자단 장새롬이  ▲인천 도호부 청사 '객사'

 

동헌 옆에 위치한 객사이다. 객사는 임금의 위패(位牌)를 모시고 있는 건물이다.

수령의 집무실인 동헌보다도 격이 높았고 그런만큼 관아 시설중에 규모가 제일 크고 화려하고 특히 전망이 가장좋은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객사는 신성한 건물로서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서 설계가 되었는데, 가운데 채가 좌우 채보다 한 단 높은 솟을대문 형식의 지붕이다.

 

ⓒ문화재청 , 블로그 기자단 장새롬이  ▲망궐의식을 행하던 모습

 

외직(外職)에 근무하는 관원이 궁궐에 나아가 임금을 직접뵙지 못할 때 멀리서 궁궐을 향해 행하는 의식이다.

객사는 지방관이 임금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는 곳이기 때문에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전청(殿廳)의 전패(殿牌)와 궐패(闕牌)를 향하여 절을 올리는 삭망례를 거행하였다. 또 임금이나 왕비의 탄신일을 비롯하여 정월초하루,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등의 명절에도 객사 앞뜰에서 대궐을 향해 절을 올리는 의식을 행하였다.

 

ⓒ문화재청 , 블로그 기자단 장새롬이  ▲인천 도호부 청사 '객사(客舍)'에서 내려다본 전경

 

올라와서 뒤를 돌아서는 순간, 내가 가장좋아하는 전경이 펼쳐졌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

한눈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왼쪽으로는 인천의 모든 스포츠관람이 이루어지는, (특히 야구, 축구 등)

인천에서의 월드컵 응원이 가장 열띠게 펼쳐지고 있는 문학경기장이 보인다.

 

ⓒ문화재청 , 블로그 기자단 장새롬이  ▲ '객사(客舍)'아래

 

'객사(客舍)'아래에서는 다양한 전통문화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문화재청 , 블로그 기자단 장새롬이  ▲ 인천향교

 

인천향교 (仁川鄕校)는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11호로 등록이 되어있다. 인천향교가 언제 건립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최항(1409~1474)의 중수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세조(世組)이전에 설치된 것으로 추측이 된다. 주요 건물로는 공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대성전을 비롯해서 우리 나라와 중국 성현의 위패를 모십 동-서무, 교육생들의 강당인 명륜당, 유생들의 처소인 동-서재 등이 있다. 건축양식은 팔작지붕인 명륜당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은 모두 맞배지붕의 형식을 취하고있다.

 

ⓒ문화재청 , 블로그 기자단 장새롬이  ▲ 인천향교로 들어가는 입구

 

ⓒ문화재청 , 블로그 기자단 장새롬이  ▲ 인천향교내부의 모습 중앙 윗편 대성전

 

ⓒ문화재청 , 블로그 기자단 장새롬이  ▲ 인천향교내부에서 바라본 전경

 

ⓒ문화재청 , 블로그 기자단 장새롬이  ▲ 인천도호부청사 정문

 

이렇게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문을 바라보니, 수문장(실제 사람이 아니라 마네킹)들이 지키는 문앞으로는 차들이 쌩쌩 다니고 있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깊었다.

도심속에서 잠시나마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 이렇게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 매우 좋았다.

특히 이곳은 인천터미널가까이에 있는데, 이 주변은 인천의 새로운 중심지이다. 각종 대형마트, 공기업, 유명상가,백화점들이 밀집한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특히 향교나 도호부청사의 객사(客舍)에 올라가 해가 지는 모습을 고즈넉하게 바라보거나 잠시라도 앉아서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전경을 바라보는 것은 일상의 찌든 때를 벗겨주는 넉넉한 휴식이 되었다.

 

 

 

 

▲ 제2기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장새롬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