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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천탑 운주사, 곳곳에 아로새긴 민중의 소망

문성식 2011. 2. 7. 02:37

 

 

 

prologue

 

지난 5월 21일, 블로그 기자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절집으로 답사를 떠났습니다. 어디를 갈지 고민하던 차에,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추노’의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는 화순 운주사를 택했습니다. ‘날씨 흐림’일 거라던 기상청의 예보가 살짝 비껴간 자리에 따사로운 봄볕이 몽실몽실 솟았고, 예보 원인인지 ‘부처님 오신 날’임에도 인파는 예년보다 몰리지 않았습니다. 시원하게 뚫린 2차선 국도를 따라 주행한 차가 사찰 입구 주차장에 ‘무료 주차’하던 순간(*번외편  참조!), 오오, 정말 ‘그분’이 오셨구나!!!하는 탄성이 절로 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즐거운 기억을 따라, 운주사 답사의 면면을 펼쳐놓겠습니다.^^

 

 

#1 조금은 엉뚱하게, ‘남들과는 다르게’ 파격적인 탑들

 

운주사 일주문을 지나면 가장 먼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우뚝우뚝 선 탑들입니다. 정형적인 양식을 갖추어 단번에 ‘어떤 시대’인지 추측할 수 있는 다른 절의 탑들과 달리, 무성의한 듯 각진 네모꼴의 돌판을 쌓아올린 듯한 아찔한 높이(10.7m)의 '구층탑’(보물 제 796호)이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기는데요. 자, 지금부터 저와 함께 운주사 내의 여러 탑들을 하나하나 살펴볼까요?

 

 운주사 일주문 ⓒ박샘별.

일주문은 보통 절에서 으레 볼 수 있는, 학교 교문처럼 버티고 서 있는 '첫 관문'입니다.

하지만 원래 운주사에는 일주문이 없었다고 하구요. 지금의 일주문은 근래에 지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1. 운주사 구층석탑 (보물 제 796호, 일명 '돛대탑')

 

운주사 구층석탑 ⓒ 박샘별

 

 

 떡살무늬가 콩콩 박힌 듯한 면석(세로방향으로 층층이 올려진 부분)과, 슥슥삭삭 빗살무늬가 우리네 기와 처마를 형상화시킨 것처럼 보이는 지붕돌, 지붕돌을 받치는 받침돌이 과감히 생략된 디자인, 게다가 세로로 길쭉하게 선이 그어져 안정감보다 비죽 솟은 불안감을 주는 1층 면석... 이미 교과서, 舊 10원짜리 동전(?!) 등을 통해 '탑 보는 눈'이 높아진 우리들로서는 '애걔~'할 수도 있는 투박한 탑 같지만, 이 탑이 운주사에서는 그나마 제일 '화려한' 탑이라고 하네요. 

탑에 새긴 문양치고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꽃문양이어서인지 해석도 분분한데요, 4개의 꽃잎이라든지 주위의 마름모꼴 테두리가 '사방팔방에 계신 부처님'을 상징하고 있을 거라는 해석이 그럴듯해 보이네요~! 전 '꽃처럼 아름다운 부처님'을 모신 탑이라는 뜻에서 꽃을 새겨넣었을 거야, 하고 추정해봤는데요. 여러분도 왜 탑 곳곳에 꽃잎을 그려놓았는지 나름대로 추측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투박하고 긴 형태를 띠는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고 해서 무려 '보물 제 796호'로 지정된 이 탑! 운주사 안에서는 '운주사 중심탑'이니 '돛대탑'이니 하는 별칭으로도 불린다고 하니 그 입지를 짐작할 수 있겠죠!

 (이따 다시 이야기드릴 테지만, 운주사는 '배(舟) 모양' 의 지형에서 유래된 이름이기도 해요. 운주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해보면, 구층탑이 큰 배의 형국에서 맨 앞에 돌출되어 우뚝 솟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네요^^) 

 

 

꽃보다 부처! 샤방하진 않지만, 정겨운 외모와 껑충한 키가 매력적인 나, 이래뵈도 '위너'라구~

 

 

 

2. 운주사 오층석탑 (일명 '거지탑')

 

 이 탑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두리번두리번, 상하좌우 '그 너머'까지 볼 수 있는 시력과 관찰력이 있는 분께만 보이는 특별한 탑이죠. 바로... 구층석탑에서 오른쪽, 즉 '가 불상군'(이따 설명에 있어요^^)이 속한 절벽바위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한 듯 서 있는 탑입니다. 일부러 삐뚤빼뚤 쌓은 건지, 무너져내린 건지 참 누덕누덕 볼품이 없죠. 층마다 바스라지고 깨져서 멀쩡한 부분도 하나도 없구요. 그래서, 별명도 참 '거지'같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문화재로 등록돼어 있지도 않죠. 그저 우리 땅 한 구석에 박혀 있어 어련히 우리나라 것이거니 하는 정도구요.

 

'가'석불군과 운주사 5층석탑(거지탑), ⓒ박샘별.

 

 

그렇지만, 역설적인 의미로 이 탑을 운주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장 높은 탑'으로 높이는 분들도 간혹 계십니다. 천불천탑의 주인공이 평범한 민초들이고, 부처님의 평등한 이상세계에서 가장 먼저 구제되어야 마땅할 존재가 바로 '낮고 비천한 자' 즉 '거지'라는 겁니다.

꿈보다 해몽일까요?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울컥, 하고 뭔가 뜨거운 감정이 느껴지기도 하는 걸 보면, 부자와 기득권만이 대접받고 추앙받는 세상에 대한 질타 같기도 합니다.

 

전 거지에요! 거지 뜻이 뭔지 다들 아시죠? 巨(거)룩하고 智(지)혜롭단 거...^-^* 우하하;;;

 

 

3. 운주사 7층석탑 시리즈!! @@

 

 운주사에는 7층으로 된 석탑이 곳곳에 있습니다. 평지에도 있고, 갈래길에도 있고, 산 중턱에도 있습니다. 고려시대 유행했던 높고 훤칠한 탑 양식을 유지하면서도, 고만고만 무난한 스타일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요? 현재 전하는 것만도 ..6개군요! 형태가 보존되어 남은 탑이 20개 남짓 되는 이 시점에서, 6개의 지분을 차지하는 7층석탑의 개수는 굉장히 많은 축에 속하는데요, 이렇게 많다 보니 형태도 가지각색, 특징도 가지각색입니다. 이에 형태나 특징을 따서 '운주사 (       ) 7층석탑'의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죠.

 

-운주사 7층석탑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276호)

 

운주사 7층석탑 ⓒ박샘별

 

 

이 분은... 운주사 7층석탑의 대표이기 때문에 별도 명칭이 없이 이름붙여진 게 아니라, 단순히 앞쪽에 있었기 때문에, 혹은 이름붙일 특징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달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운주사 탑 치고는 굉장히 깔끔하고, 비교적 신라 양식을 계승해내고 있어 '정형적'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운주사가 폐허가 되고, 주위가 논이었던 시절, 논 가운데에 있었다던 석탑은, 운주사에서 주변 논을 매입하고 잔디를 심어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되죠. 큰 특징 없이 '무난'한, '샐러리맨' 같은 느낌을 주는 탑이죠.

 

-운주사 쌍교차문 7층석탑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277호)

 앞의 운주사 7층석탑을 지나면 바로 보이는 또 하나의 7층석탑, 입니다. 아까와 구별되는 점은 'XX'모양의 가위무늬(교차문)가 탑 면마다 새겨져있다는 것! 탑에 이런 무늬를 새기는 게 흔치 않을 뿐더러, 모양도 굉장히 간결해 심플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운주사 수직문 7층석탑(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257호)

이 탑은 탑 몸체마다 세로줄무늬가 그어있는 7층 석탑으로, 평지에 늘어뜨려 있는 다른 7층석탑들과는 달리 까마득한 바위 한끝에 서서 굽어보고 있는 석탑입니다.  

 

운주사 쌍교차문 7층석탑(좌)과 운주사 수직문 7층석탑(우). ⓒ네이버 블로거 물찬돼지(hyeng19)

무늬는 다르지만 전체적인 인상이 비슷한 두 탑이죠^^

 

 

 

#2 각양각색, 익살스런 불상의 천국

 

* 일렬로 나란히! 불상군(群)

 죽 펼쳐진 오솔길을 따라 바위를 배경으로 늘어선 불상들이 좀 인상적이지요? 언뜻 버려진 듯 못난이 불상들처럼 뭉텡이 뭉텡이를 이루고 있는 불상들... 뭔가 오묘하면서도 살짝은 경외스러운(?!) 포스까지 느껴지지 않나요? 운주사 안에는 이런 불상들이 뭉텡이(무리)로 크게 6군데나 있다고 해요. 그래서 '가,나,다,라,마,바'로 일련번호를 매기고 '무리 群'을 써서 편의상 분류해 놓았습니다. 길 옆에 슬그머니, 산길 구석구석에, 있는 듯 없는 듯 떡 하니 버티고 있는 이 불상들. 낮에 보면 수줍은 듯 투박한 표정의 동네 아저씨들 같은데,,,

 밤에 보면... 무서우려나?   

 

 

* 앞으로 봐도 불상, 뒤로 봐도 불상!

대웅전으로 가는 천왕문에 이르기 전, 다소 특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는데요. 보물 제797호인 석조불감. 돌을 쌓아 만든 투박한 석실(돌방)에 돌부처 2구가 서로 등을 맞대고 있습니다. 정확히 남과 북을 바라보고 있다고 하니 그저 신비로울 따름이죠! 블로그기자가 갔을 땐, 부처님 오신 날이어서인지 정갈하면서도 풍성한 공양음식이 돌방 앞면을 가득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후덥지근한 날씨, 토실토실한 수박 한 조각만 '산 부처(기자)'에게 보시 좀 .....하며 입맛을 다시던 생각이 ㅠ

 

 

 

*헥헥대며 올라가야 하는 답사코스엔 늘 있는 그 이름 '마애불', 운주사에도 '있습니다!"

 

 

 

*운주사 불상계의 레전드급이라면 단연 이들을 꼽아야겠죠!!! 바로, 운주사 와불입니다. 와불, 누울 臥 부처 佛, 부처님이 누워계신다는 겁니다. 어딜 가든 얌전하게 아빠다리(결가부좌)를 하거나 의자에 앉아 근엄한 미소를 짓고 있는 부처님을 만나왔던 우리들에겐 '문화 충격'으로 다가오는 풍경이죠. 운주사의 대부분의 불상 시리즈가 그러하듯,  

 

 

 

#3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로 가득! ‘신비한 전설의 땅’

 

그러나 운주사는 불상, 탑 등 겉으로 보이는 ‘특이함’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운주사는 겉의 특이함 그 이상으로 특이한 내력으로 유명합니다. 석연찮은 구석과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로 가득한 '전설의 고향'인 거죠. '전설의 고향'이라고 하니 초등학교 시절 이불 뒤집어 쓰고 바들바들 떨며 보았던 '전설의 고향'의 장면장면들이 오싹하게 떠올려지기도 하는데요, 공포로 오싹할 정도는 아니니 걱정 마시고 쭉 설명을 따라 와보세요^^

 

 

-천불천탑? 소문만 무성할 뿐 : 운주사 창건설화, 그 비하인드 스토리

 

운주사에는 ‘천불천탑’이 세워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운주사의 배경이 되는 뒷산의 이름도 ‘천불산’일 것이구요. 그러나 자고로 ‘-카더라’통신은 현재에는 통하지 않을 때가 많죠. 지금 운주사에 가면, 천불천탑은 커녕 백불백탑에도 훨씬 못 미치는 20여 기의 석탑과 100여 불상(그나마 온전한 불상이 57분, 목이 떨어졌거나 등등 불완전한 불상이 43분)이 있을 뿐입니다.

다만 천불천탑이 예전에는 있었을 거란 기록들은 전해집니다.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이라는 지리지를 보면, '운주사 재천불산 사지좌우산척 석불석탑 각일천 우유석실 이석불 상배이좌(雲住寺 在天佛山 寺之左右山脊 石佛石塔 各一千 又有石室 二石佛 相背以坐)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으며 절 좌우 산에 석불 석탑이 각 일천 기 씩 있고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다'는 내용인데요, 조선 인조 10년(1632)에 발간된 ‘능주읍지’에도 비슷한 내용이 전해집니다. ‘운주사 재현남이십오리천불산좌우산협석불석탑 일천우유 석실이석불상배이좌(雲住寺 在縣南二十五里千佛山左右山峽石佛石塔 一千又有 石室二石佛相背而座)’로 ‘운주사는 현의 남쪽 이십오리에 있으며 천불산 좌우 산 협곡에 석불 석탑이 일천씩 있고 석실에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있다.’ 즉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천불천탑이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내용들이죠.

 다만 현재 그마만큼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설마 진짜로 천 개가 있었겠냐. 그냥 많다는 걸 강조하려고 그렇게 썼겠지'하고 추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많다'는 의미를 큰 숫자에 비유해서 표현하곤 했기 때문에(ex. 임금님께서 오래 살기를 바라면서 '천수(千壽)를 누리소서' 했던 것 등) 그 전통이 여기에서도 발휘되었을 거라는 이야깁니다.

 

 천불천탑, 혹은 그정도로 셀 수 없이 많은 불상과 탑의 개수를 자랑하던 운주사. 그렇다면, 분명 세워질 당시에는 굉장한 공력을 들여 큰 위세를 자랑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연, 정말로 언제 이 사찰이 생겨난 걸까요? 이역시 '언제 누가 세웠다더라'에 대한 수많은 소문만 무성합니다. 이 많던 소문은 '창건설화'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구요. 그중 유력한 설화 셋만 아주 간략하게, 소개해 보도록 하지요.

 

 

 

 

-마지막 ‘와불’이 끝끝내 세워지지 못한 까닭

 

누워 있는 것이 아니다

걷고 있는 거다 저문 하늘에

빛나는 북극성 좌표 삼아

천지간을 사분사분 밟으며 오르고 있다

등명(燈明)의 눈빛 치켜뜬 연인과

나란히 맞댄 어깻죽지가 욱신거리도록

이 세상 짊어지고

저 광활한 우주로 내딛고 있는 중이다

 

조성국 詩, 운주사 와불

 

 

 

-운주사에는 ‘은하수’와 ‘북두칠성’이 있다?

 

 

 

 

epilogue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운주사

운주사 구석구석을 돌아본 뒤, 돌아가는 길. ‘답사를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과 고된 일정을 소화해낸 후의 ‘뿌듯함’으로 채워지는 여타의 답사들과는 달리, 무언가 다 풀리지 않은 찜찜함과 아쉬움이 남는 답사였습니다. 절을 떠나는 등 뒤로,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았다’며 소매를 끄는 불상의 손길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창건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미스터리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지금 이 순간 우뚝 서 있는 운주사. 2년 전 화마도 꿋꿋이 극복하고 다시 푸른 숲길을 되찾아가는 운주사, 사람들이 외면하던 스산한 절에서 사람들이 자꾸자꾸 찾아오는 절로 변모하고 있는 운주사의 모습은 마치 비밀을 다 풀 때까지 생명을 끈질기게 지속하겠다는 오뚝이처럼 느껴집니다. 

 

 

여러분도, 이곳에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앞에 서보시지 않으시렵니까?

 

 

 

번외편!!  부처님 오신 날, 절집으로 떠나요!

-평시에는 사찰 운영을 위해 일정 정도의 관람료 및 주차료를 받지만, 부처님 오신 날 만큼은 이들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찰 관람료가 1인당 2천 원~5천 원 선, 주차료가 천원~2천 원 선이라 큰 부담은 되지 않지만, 여럿이 가는 단체관람일 때에는 푼돈이 모여 꽤 큰 액수가 되기도 하며, 특히 아직 부모님에게 경제 지원을 받는 학생일 경우 더더욱 크게 와 닿을 것입니다.[!] 관람료와 주차료를 아껴 매점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 하나씩 베어 무는 소소한 재미를 느껴보는 것, 어떠세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사찰에서는 여러 행사를 엽니다. ‘관불 행사’라 하여 부처님의 탄생을 기리며 아기부처 상에 물을 끼얹는 행사를 하기도 하고, 신자들은 색색깔의 ‘연등’을 밝히며 한 해의 소원을 빌며 아기부처의 탄생을 축원합니다. 평소라면 수도에 정진하시느라 싸락문 뒤 ‘출입 금지’영역에 계셨을 고승 분들도 오래간만에 바깥 나들이를 하십니다. 이 모두를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흔치 않습니다. 일 년에 단 한번, 부처님의 거룩함을 기리는 행사 때에만 펼쳐지는 풍경이죠.

 

-어딜 가나, ‘사람 구경’이 제일 재밌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사찰에는 전국 각지에서 찾아든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평소라면 불심이 두터운 분들만 찾는 외로운 절일지라도, 부처님 오신 날 만큼은 오랜만에 찾아든 손님들로 북적이게 마련이죠. ‘난 사람 많은 데 싫더라. 정신없고.’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막상 사찰에서 저마다 달뜬 표정을 하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을 보면 절로 숙연해지기도 하고, 마음마저 맑아지는 느낌도 들 수 있습니다! 다만, 사찰 가는 길이 2차선의 좁고 굴곡진 도로일 때가 많으니, 교통이 좀 정체되는 건 감수해야겠죠.^^

 

-금강산도 식후경!! 절집 답사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꽁밥’이죠! 불가에서는 중생을 위하여

 

 

Thanks to

 

본 기사를 쓰기까지 여러 자료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문화재청의 문화재검색 란에 각각의 유물에 대한 상세 내용이 기재되어 있지 않아, 나름대로 책과 자료를 찾아 덧붙여 보충한 끝에 지금의 기사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유적지를 테마별로 구성한 대동문화재단의 '남도 땅 발길따라 눈길따라' 책이 소제목 및 하위 아이템을 구상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면을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  덧붙여 건의해보자면, 문화재청의 상세검색 시스템이 국보 보물 뿐 아니라 지방 유형문화재들에 이르기까지 좀더 꼼꼼하게 완성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움 받은 책들

대동문화재단, 남도 땅 발길따라 눈길따라-남도 문화관광 스토리텔링, 2007

이태호 천득염 황호균 공저, 운주사(빛깔있는책들 157), 대원사, 1994

조상열 지음, 남도의 숨결 따라, 대동문화재단, 2009

 

 

 

 

 

▲ 제2기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박샘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