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여,가정,부부

다시 타오르는 성과 사랑.

문성식 2011. 1. 13. 21:45
사춘기 욕구보다 더 뜨거워!
스스로 젊게 평가,다시 타오르는 性과 사랑…약물,수술 치료 가장 많이 받는 나라

영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에서 젊은 여자만 밝히던 찰스(잭 니콜슨)는 결국 중년의 애인(다이앤 키튼)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올해 44세인 주부 한현희 씨는 비정기적으로 사회단체에서 청소년 상담을 한다. 한 씨는 얼마 전 한 대학 사회교육원에서 미술 강좌를 수강하면서 만난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과 와인바에서 모임을 가졌다. 한 씨는 여기서 부부와 자식으로 이루어진 ‘가정’을 꾸리고 사는 사람이 자기 혼자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7명 중 세 명은 이혼했고, 두 명은 독신이며, 한 명은 장기 별거 상태였다.

“중년 독신이 많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이혼한 사람들이 ‘돌아온 싱글’이라며 명랑하게 인사하니까, 내가 유행에 뒤떨어졌다는 기분까지 들었다. 참석자들은 ‘유부녀’인 내가 먼저 가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굴기도 했다.”

한 씨는 중년의 싱글들이 서로에게 새로운 상대를 소개해주고, 얼굴을 붉히며 데이트한 얘기를 들려줄 때는 부럽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베이비붐 세대의 중년 싱글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40~49세 남녀 중 독신은 1990년 7.9%에서 2000년에 10.3%, 2005년엔 13%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보다 앞서 베이비붐 현상을 보인 미국에서는 45~59세 성인 중 독신 비율이 1980년 18.8%, 2003년엔 28.6%였다. 중년의 미국인 3~4명 중 한 명 정도가 싱글인 셈이다.

이처럼 중년 싱글의 수가 늘고, 중년들이 스스로를 젊게 평가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중년을 맞은 베이비붐 세대의 성(性)과 사랑은 이제 사회적 화두 중 하나가 됐다.

 

이혼율과 성의식 변화, 월드컵 4강에 버금가는 충격

 

“이혼율과 성의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각종 데이터를 보면, 지난 10년간 중년의 성의식 변화는 우리나라가 축구 변방에서 하루아침에 월드컵 4강에 들어간 정도의 충격입니다. 10년 전의 중년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유교적, 도덕적 엄숙주의에 의해 금욕을 강요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성 관련 약물 처방과 수술, 치료를 가장 많이 받는 나라가 됐습니다. 아마 이렇게 성적으로 활기(?)찬 나라도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에 ‘케겔 운동’을 전파해 유명해진 성의학자 설현욱 박사의 말이다. 그는 1998년 ‘비아그라’ 류의 발기부전제가 판매되기 시작한 것을 1905년 프로이트의 성이론 발표와 60년대 피임약 시판 이후 가장 혁명적인 사건이라고 설명한다. 일반인들이 손쉽게 발기부전제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중년의 성과 사랑에 대한 인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성적 욕망이란 정말 강력합니다. 가정, 경제력, 사회적 지위 등 많은 것을 이룬 중년이 성적 욕망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45~50세의 남성과 40~45세의 여성들은 성적 욕망과 팬터지에 달뜬 10대 청소년과 비슷한 상태입니다.”

인간을 움직이는 기본 동력이 성적 에너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프로이트의 과격한 수제자이자 정신분석학자였던 빌헬름 라이히(1897~1957)는 성적 욕망을 해방시켜 계급혁명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1930년대에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결합시키려 했던 그의 이론은 양쪽에서 파문을 당하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최근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들에 의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베이비부머 중년의 가장 큰 특징은 ‘몸’에 돈과 시간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중년의 연애와 성적 욕구가 전적으로 육체적, 충동적인 데에서만 기인하진 않는다. 그것이 동물적으로도 자연스런 현상이라면 사람만이 약물이나 수술 같은 부자연스런 방법을 동원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박사는 “중년기에 이르러 상실에 대한 깨달음이 뚜렷해지면, 자기 성취 욕구에 대한 ‘성질’이 달라진다. 젊은 시절에는 남이 보기에 멋진 한 방을 날리고 싶어하지만, 중년이 되면 대중의 인정보다는 나를 아는 한 사람의 인정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고 말한다. 중년기에 이상적인 상대는 자신에게 ‘참 열심히 살았다’ ‘그 정도면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철없던 시절 연애보다 지금이 더 애틋”

 

중년의 한 싱글 여교수(50)는 “7년 전에 이혼했다. 남편에게 다른 상대가 생긴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마흔을 넘긴 내가 더 이상 여자가 아니라는 생각만은 분명히 들었다. 그때 몹시 절망했다. 몇 년 동안 아이의 대입 준비에 매달리다가 최근 나보다 다섯 살 많은 사람을 만났다. 나이도 많고, 남편에 비해 사회적 지위나 돈도 보잘것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나를 여자로 인정해준다는 점 때문에 행복하다. 그도 나도 섹스가 쉬운 나이는 아니다. 내가 발기부전제 처방을 받아와야 하지만 서로 노력하는 것이 행복하다. 철없던 시절의 연애보다 지금이 더 애틋하다”고 말한다.

설 박사는 “특히 50대를 넘은 중년의 성적 욕망은 성욕과 거의 관계가 없다. ‘외로워서’다. 약물을 사용하는 건 상대에 대한 배려다.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 중년 남자가 섹스에 집착하는 것은 외로움의 ‘액팅 아웃(표출)’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중년이 성과 연애에 적극적인 이유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도록 사회적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년의 사랑과 성에 대한 관심은 때로 부정적인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각종 대중매체가 성적 욕망과 몸에 대한 관심을 수시로 자극하지만, 지금 40대를 넘어선 중년층은 그것을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젊었을 때 사랑이란 쟁취하거나 억눌러야 하는 ‘무엇’이었다.

아트 상품을 만들어 기업 홍보용품으로 납품하는 일을 하는 한 젊은 여성 디자이너는 “사업상 중년 남성을 많이 만나는데 여성들과의 관계에 대한 욕구가 종종 성희롱으로 귀결되곤 한다. 정서적으로 서투르니까, 권력관계로 여자를 정복하려고 한다. 그래서 여성 사업가는 일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성적 욕망의 표출이 극단적으로 왜곡돼 나타나는 것이 ‘치정’이다. 서울 경찰청 과학수사계의 한 관계자는 “살인이나 살인미수 같은 강력범죄 중 애정 문제가 관련된 것으로 보이면 이를 ‘치정’이라고 한다. 강력사건의 70%가 치정으로 추정된다. 강도보다는 애인에게 살해될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특히 40대 이상 중년층의 치정 사건이 많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모르기 때문인 듯하다”고 말했다.

 

‘애인 많은 여자가 열심히 사는 여자’ 소리 나올 정도

 

치정 사건보다 더 흔한 건 ‘간통 사건’, 즉 불륜이다. ‘남편만 바라보는 여자는 한심한 여자이고 애인이 하나면 양심 있는 여자, 둘이면 세심한 여자, 그 이상이면 열심히 사는 여자’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서구에서는 혼외정사 경험률이 남자는 75%, 여자는 65%라고 보고되고 있다. 하지만 비뇨기과와 정신과 의사들은 각종 데이터로 유추해볼 때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일 것이라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이제 갓 50세를 넘어선 한 중년 여성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도, 남편도 여러 차례 불륜의 위기를 겪으며 서로 의심하고 싸우고 적당히 체념하면서 살아왔다.

다행스러운 점은 서로 이런저런 노력을 해왔다는 것이다.

얼마 전 남편이 ‘주몽’이란 드라마 보는데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늙은 남자가 드라마 보면서 눈물 흘리는 모습이 못나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때 나는 남편이 젊은 여자와의 불같은 연애가 아니라,

같은 꿈을 향해 가는 주몽과 소서노의 ‘의리의 사랑’을 그리워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것도 사랑이 아닐까?”

중년의 사랑은 흔히 ‘뒤늦게 찾아온 사랑’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중년의 사랑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낡고, 추하고,

사소한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에 도달했기 때문이라는 점이

중년에 이른 사람들의 깨달음이다.

너무 늦게 찾아온 사랑이란 없다는 것이다.

 

아랫세대가 본 중년은
“진정한 여유와 아름다움 … 특별한 매력이 있다”


“중년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안정감과 부드러움이다. 남자로서의 매력보다는 인간적인 장점과 미덕이 먼저다. 인생을 살면서 터득한 지혜와 모든 것이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확신을 갖고 판단하는 모습을 볼 때 중년 남성은 매력적이다. 인생이 불투명하다는 것을 알고 오히려 그 묘미를 누릴 줄 아는 중년, 정말 멋지지 않을까.”
윤은혜(탤런트)

“30, 40대 여성들에게는 20대 여성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열정과 치열함이 있다. 일·육아·가사 등 모든 일에 열정적이며, 이리저리 재지 않고 솔직하게 행동한다. 개그우먼 김미화 씨를 보면 원숙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며 작은 일에서도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멋지다.” 김성주(MBC 아나운서)

“중년이 매력적인 것은 자신의 주름살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젊음을 잃으면 안 된다는 강박증과 노화라는 생리적 변화 때문에 불안해할 때 안타깝다. 중년이 아름다워 보일 때는 남성성에 대해 강박하지 않으며 나이 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다. 진짜 ‘남자 어른’ 같다. 귀가 열려 있고, 갖지 못한 것을 시기하지 않으며 격려할 줄 아는 중년이 매력 있다. 아, 시원하게 웃을 수 있는 중년, 그 표정이 멋지다.” 정승혜(영화사 ‘아침’ 대표)

“전에 여배우 우피 골드버그의 인터뷰를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리포터가 ‘나이 들면서 젊고 아름다운 여배우들에게 주눅 들지 않느냐’고 묻자 그녀는 ‘아니요, 그들도 50대가 되면 나처럼 허벅지에 살이 붙고 눈가에 주름이 생길 겁니다. 지금은 내 나이에 어울리는 지혜를 갖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나이가 들수록 많은 일을 경험하게 되고, 그 경험을 통해 여성들은 성숙해지는 것 같다. 연기 선배들만 봐도 나이에 어울리는 연륜과 지혜 덕분에 20대 못지않게 반짝반짝 빛난다.” 윤상현(탤런트)

“중년 남자들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표정이 깊어지는 것이므로 매력적인 인상을 갖게 된다. 오래 살아온 만큼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데, 그런 중년의 깨달음이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 같다. 중년의 장점은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객관성과 냉정한 이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인생을 많이 아는 현자의 신념 같은 것을 볼 때 중년에게서 매력을 느낀다.” 이지현(영화배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실감한다. 황신혜, 이미연, 김희애, 심혜진 같은 연기 선배들을 보면 20대보다 더 큰 매력을 발산하며 인기를 얻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 매력적인 이유는 외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연륜이 더해져 현명하고 깊이 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이 들수록 여유로워지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모습이 아름답다.”
최필립(탤런트)

“중년은 젊은 날의 시행착오에 대해 관대해지고, 스스로를 연민할 수 있는 시기다. 한마디로 한 남자가 인생을 통틀어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이 중년 남성의 매력이다. 어떤 일에 돌파력을 갖고 몰두하고 있을 때의 옆모습, 관용을 베풀 때의 미소, 나이 어린 사람이나 사회적 약자를 대할 때의 신사다운 행동과 말투 앞에서 중년 남성의 매력을 느낀다. 아, 물론 나이 먹었다고 대접받으려고 하면 늙은 아저씨로 보인다.” 안은영(‘여자생활백서’ 저자)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도쿄타워’를 보면 30, 40세 이상 여자들과 연애하는 스무 살 청춘이 등장한다. 그는 중년 여성들에게 집착하는 이유를 그들 특유의 순수함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여유롭고 아이처럼 순수해진다는 거다. 나 역시 중년 여성들에게서 여유와 순수한 아름다움을 느끼곤 한다. 또 여자들은 중년이 되면서 옷차림, 메이크업, 헤어스타일까지 자신에게 어울리는 모습을 찾아내 더욱 매력적으로 변신한다.” 최범석(패션디자이너)

“인생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여유가 느껴질 때 중년은 매력적이다. 불안한 상황에서도 현명하게 대처할 줄 안다는 것도 중년의 미덕이 아닐까. 젊은 날 ‘볼품없던’ 남성이 문화적 수련과 교양, 매너와 여유 때문에 나이 들면서 훨씬 더 멋있어진 경우를 만나게 된다. 인간적으로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 모습만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않는가.” 한젬마(미술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