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궁궐,왕릉 이야기

왕릉이야기. 제8대 예종-창릉, 공릉

문성식 2010. 8. 26. 21:05

 

  제8대 예종(睿宗)과 계비(繼妃) 안순왕후(安順王后) - 창릉(昌陵)

 

 

창릉 - 예종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 산30 <서오릉(西五陵) 소재>
사 적 : 제 197 호

昌陵의 특징
 : 일반인에게 비공개 능인 창릉(昌陵)은 단명 임금 예종(이황(李晄) : 1450-1469, 재위 14개월)과 계비(繼妃)인 안순왕후 한씨(安順王后 韓氏 :? -1498)의 능으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식을 취하고 석물(石物)의 배치는 {국조오례의(國祖五禮儀)}의 전통적인 예를 따르고 있습니다.

창릉 - 계비 안순왕후

睿宗代의 사료(史料)

연도

재위

사  료(史料)

 

연도

재위

사  료(史料)

1469

1년 

1월, 한명회 영의정으로 함

1469

1년

11월,예종 승하{1450- }

9월, 경국대전(經國大典) 4전 완성

정희대비 명으로 자산군{성종} 즉위

뒷 이야기
: 세조의 차남으로 태어난 예종은 세조가 즉위하자 해양대군(海陽大君)에 책봉되었다가, 세자였던 형 의경세자(懿敬世子 : 덕종(德宗))가 요절[세조 3년, 1457년]하자 세자로 책봉되어 1468년 세조 승하 하루 전에 선위(禪位)받아 왕위에 올랐으나, 역시 1469년 11월 20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안순왕후 한씨는 청주부원군(淸州府院君) 한백륜(韓伯倫)의 딸로 태어났는데, 예종이 세자 시절 한명회의 딸{장순왕후}이 세자빈에 책봉되었다가 다음해 요절하자 세조 8년[1462년]에 두 번째 세자빈으로 간택되었고, 왕비에 오릅니다. 예종 승하 후 성종 2년에 인혜대비(仁惠大妃)로 봉해지고 연산군 3년(1497년)에 다시 명의대비(明懿大妃)에 봉해집니다. 슬하에 제안대군(齊安大君)과 현숙공주(顯肅公主)를 두었고 연산군 4년(1498년)에 승하했습니다. 
 

 

 

  睿宗의 비(妃) 장순왕후(章順王后) - 공릉(恭陵)

 

 

공릉 - 예종비 장순왕후 

소재지 : 경기도 파주시 조리면 봉일천리 산15 <공순영릉(恭順永陵) 소재>
사 적 : 제 205 호

恭陵의 특징
 : 예종(睿宗)의 비(妃) 장순왕후 한씨(章順王后 韓氏 : 1445-1461)의 공릉(恭陵)은 세자빈(世子嬪) 때 승하했기 때문에 세자빈묘로 조성되어 봉분(封墳)의 난간석(欄干石)과 병풍석(屛風石), 무인석(武人石) 등이 생략되어 간략하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후에 성종(成宗) 1년(1470년)에 공릉(恭陵)으로 명명되고 장순왕후로 추존되었습니다.
 주변에 장순왕후와 자매간인 성종(成宗)의 비(妃) 공혜왕후(恭惠王后)의
순릉(順陵)과 영조(英祖)의 장자(長子) 효장세자(孝章世子 : 추존-진종(眞宗))와 비(妃) 효순왕후(孝純王后)의 영릉(永陵)이 있어 공순영릉(恭順永陵)으로도 불립니다.

장순왕후 약사(略史)
 : 압구정(狎鷗亭)으로 유명한 청주한씨(淸州韓氏)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한명회(韓明澮)의 장녀로 태어난 예종의 비 장순왕후 한씨(章順王后 韓氏)는 세조를 도와 권력을 쥐었던 아버지에 의해 세자빈으로 책봉(세조 6년, 1460년)되었으나 다음해에 인성대군(仁城大君)을 낳고 산후병으로 17살의 어린나이에 승하해 장순(章順)의 시호(諡號)를 받았습니다. 특히 동생 공혜왕후(恭惠王后 : 성종의 비(妃)) 역시 19살의 나이에 승하해 비운(非運)의 자매가 되었습니다.

출처 :문화 사랑 오솔길 원문보기   글쓴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