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85.jpg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개단리 축서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불상 높이 108㎝, 대좌 높이 96㎝.

 

이 석불좌상은 현재 경상북도 문수산(文殊山) 정상 가까이에 자리잡은 축서사 대웅전(大雄殿) 서벽(西壁)에 봉안되어 있지만,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목조(木造)의 광배(光背)는 나중에 짜넣은 것이지만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상 ·중 ·하대의 대좌(臺座)는 완전하게 남아 있다.

영주 부석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부석사 부근의 여러 석조비로자나불상과 비슷한 유형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가는 눈, 빈약한 코, 작은 입의 표현으로 현실의 사람 모습, 그 가운데에서도 수도승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 주려는 것처럼 보인다. 즉, 불(佛)의 이상적인 모습보다도 현실적인 인간 모습을 더 선호하는 경향으로, 이른바 현실적 사실주의 양식을 표현하려 한 듯하다. 상체는 곧고 반듯하여 얼굴보다 건장하게 느껴지지만, 이 역시 양감이 절제되어 단아한 인상을 준다.

 

하체는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두 무릎이 넓게 퍼져 안정감을 준다. 하지만 무릎이 낮아 이 역시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두 손은 가슴에 모아 왼손의 집게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싼 이른바 지권인(智拳印)을 짓고 있는데 역시 작고 섬약한 편이다. 이처럼 전체적으로 단아하고 안정감이 있지만 섬약한 모습이 도피안사의 비로자나철불 모습과 비슷하다.

더욱이 전신을 덮고 있는 대의(大衣)의 평행하게 밀집한 옷자락 무늬는 865년(경문왕 5년) 작인 도피안사철불에서 가장 분명하게 표현된 옷주름 형식이어서 더 한층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옷주름은 보다 얇아졌을 뿐더러 어깨의 {{#203}}무늬, 소맷자락이나 발목 등에 날카롭게 자른 듯한 거칠거칠한 표현 등 한결 섬세해지고 보다 기하학적이 되었다.

특히, 가슴의 U자형 옷깃에는 꽃무늬까지 표현하고 있어서, 9세기 후반기의 특징적인 불상 수법을 잘 나타내고 있다. 9세기 후반기의 옷주름 특징을 보여 주는 것은 물결식 표현이다. 두 팔소매에서 흘러내린 주름이 두 무릎을 덮고 다리 사이에서 부채꼴을 형성하는데, 여기에 표현되어 있다.

 

대좌는 9세기 석불상에서 보편적으로 보이는 8각대좌인데, 상대·중대·하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대는 복련(覆蓮 : 아래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과 그 아래 8각의 각 면에 사자 1구씩이 표현되었고, 중대에는 공양상과 합장한 보살형 상, 상대는 앙련(仰蓮 : 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이 새겨진 당시의 전형적인 대좌이다.

 

광배 또한 동화사비로자나불광배 등 9세기 당시의 화려하고 섬려한 광배와 같은 것으로 생각되는데 현재 상단 일부가 탑 위에 얹혀 있다. 따라서 불상 뒷면에 안치된 목조광배는 조선시대 때 후보(後補)한 것이 분명하다.

 

어쨌든 이 석불상은 부석사를 중심으로 유행하였던 9세기 비로자나불상 계통의 하나이다. 당시의 불상 특징을 잘 보여 주는 대표작이며, 867년(경문왕 7년)에 제작된 석탑과 동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확실한 기년명 불상으로 크게 주목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