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3.jpg 조선시대 만들어진 항아리로 아가리가 밖으로 살짝 말리고 어깨에서부터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서서히 좁아진 모습을 하고 있다. 크기는 높이 49.7㎝, 아가리 지름 15㎝, 밑 지름 21.2㎝로 기벽이 두껍고 묵직하다.

 

구부(口部)가 밖으로 벌어져 말리고, 어깨로부터 벌어졌다가 완만하게 곡선을 이루면서 좁아져 아래에 이른 장신(長身)의 항아리로 기벽이 두껍고 묵직하다.

문양(文樣)은 인화(印花)와 상감기법(象嵌技法)을 사용하여 구부(口部)의 내·외면(內·外面)에는 집단문양화(集團文樣化)한 국화판문(菊花瓣文)을, 그 아래의 어깨에는 좁은 당초문대(唐草文帶)를 돌렸으며 어깨와 몸체의 윗부분에는 여의두문대(如意頭文帶)를 대범하게 시문하고 그 안, 밖에 파도와 국화판문(菊花瓣文)을 꽉차게 채웠다. 몸체의 중심에는 위, 아래로 날렵한 당초문대(唐草文帶)를 두르고 그 사이에 4족(四足)의 운용문(雲龍文)을 대칭으로 활달하게 표현하였으며, 저부(底部)에는 내식(內飾)을 갖춘 연판문대(蓮瓣文帶)를 돌리고 있다.

유색(釉色)은 회청색(灰靑色)의 분청유(粉靑釉)로 전면에 시유되었으나 아랫면에는 두껍게 응어리져 있는 부분도 있다. 굽안바닥은 뚫린 형태로 굽다리에는 모래받침으로 받쳐 구운 흔적이 남아있다.

15세기(世紀) 전반(前半) 분청사기(粉靑沙器) 항아리의 전형(典型)으로 준수한 형태이면서 당당함이 있고 주문양(主文樣)인 용의 표현도 뛰어나며 하부(下部)의 연판문(蓮瓣文)은 초기 청화백자연판문(靑華白磁蓮瓣文)과도 깊은 관련을 맺고있다.

문양구성도 어깨·몸체·하부로 나누었으며 인화(印花)와 상감(象嵌)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대담하고 활달한 문양구성을 하고 있는데 이처럼 대범하고 활달하게 시문한 장신(長身)의 항아리로는 조선초기의 대표적(代表的)인 작품(作品)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