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50.jpg 조선 후기의 백자병. 높이 42.3㎝, 입지름 4.1㎝, 밑지름 13.3㎝. 간송미술관 소장.

 

하나의 작품에 진사(辰砂)·철사(鐵砂)·청화(靑華)를 함께 곁들여서 장식한 한국 도자기는 이것 외에는 거의 예가 없다.

온화한 백자 바탕에 투명한 유약을 약간 두껍게 씌워서 전신에 온건한 유열(釉裂)이 있으며, 색감도 부드럽게 조화되어 있다. 이러한 종류의 조선시대 병 가운데에서는 최고의 작품이며, 간명소직(簡明素直)하게 끊어낸 병 입의 마무리와 가늘고 긴 병 목의 비례도 보기 좋다.

 

유존되어 오는 조선시대 백자들을 통하여 보면 대체로 단순한 형태와 문양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의장면(意匠面)에서 다채로운 색채의 사용을 절제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양인각(陽印刻)으로 시문된 문양 위에 청화·철사·진사를 함께 곁들여 장식한 예는 조선도자에서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주목되고 있다.

형태는 가늘고 긴 목이 점차 넓어져서 어깨로 이어지며 몸체는 풍만하게 부풀었고 약간 낮은 굽을 형성하였다. 굽은 선을 그은 듯이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으며, 구연은 그대로 끊어내어 날카로운 맛이 있다.

18세기 전반경의 백자병은 대체로 구연의 끝이 약간 밖으로 벌어지거나 구연의 끝을 밖으로 말아 둥글게 마무리한 형태의 것이 많은 데 비하여 이 병과 같은 구연부의 형태는 드물게 보이는 것이다.

 

병의 앞뒤 양면에는 국화와 난초가 회화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벌과 나비들의 노니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무늬는 돋을무늬로 양인각한 뒤 난초는 청화, 국화는 진사, 국화 줄기와 잎은 철사, 벌과 나비는 철사 또는 진사로 채색하였으며 발색은 양호하다.

투명한 백자유가 약간 두껍게 입혀졌는데 유의 발색은 부드러우며 전면에 걸쳐 세밀한 그물모양의 빙렬이 나타나 있다. 굽 밑에도 유약을 입히고 굽다리에 내화토(耐火土)가 약간 묻어 있다.

 

이 병은 같은 종류의 조선백자 중에서는 큰 편에 속하며, 온전하게 보존된 전세품으로서 개성지방에서 온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유태의 질, 형태의 적정한 비례감, 세련된 문양표현 등으로 미루어 보아 18세기 전반경 경기도 광주 관요(官窯)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