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8.jpg 조선시대의 문신인 장말손을 그린 초상화. 축(軸). 세로 171㎝, 가로 107㎝. 비단 바탕에 채색.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북기리 장덕필(張悳必) 소장. 장말손상의 화폭은 얼굴 부위가 들어 있는 가운데 폭이 대폭(大幅)이며, 양어깨 부위에서 두 개의 소폭과 연결된 3폭으로 되어 있다.

화상은 오사모(烏紗帽)에 단령을 입고 의자에 앉은 전신상이다. 상용 형식이나 복색(服色)에 있어서는 초기 공신상의 특징을 보여 준다. 흉배 또한 중기 이후의 사라(紗羅)에 수놓은 흉배가 아니라, 명(明)나라 복식 제도를 따른 직금(織金) 흉배여서 고식(古式)을 예시한다. 하지만 도화 시기를 말하여 주는 흉배의 문양은 공작 문양으로서 문관 1품을 시사해 준다. 그러므로 장말손이 연복군(延福君)으로 봉하여진 1482년(성종 13년) 이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초상화를 그리게 된 계기가 적개공신상(敵愾功臣像) 제작에 있었던가가 의심된다. 그러나 이 장말손과 동시대인이자 역시 적개공신이었던 손소(孫昭) 및 오자치(吳自治)의 초상화가 각기 종손가에 전존되어 오고 있다. 이 3영정은 화폭·상용 형식·표현 기법에서 모두 동일하다. 이것은 결국 이 세 초상화가 같은 시기, 같은 화사에 의하여 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오사모는 초기에서 중기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형태를 보이고 있다. 왼쪽 단령이 트여 사이로 비치는 붉은 내공과 녹색 첩리(帖裡 : 철릭) 그리고 공수한 틈새로 보이는 흰 속옷 소매, 의자의 형태, 가지런히 한 방향으로 놓인 백피혜(白皮鞋), 원근법에 구애되지 않은 족좌대(足座臺) 등이 모두 조선 초기 공신도상의 특색을 보여 준다. 또한 채전이나 돗자리가 깔려 있지 않아 배경에 대한 인식은 아직 들어 있지 않다.

그러나 중기 이후의 초상화로 연결되는 하나의 특색으로서 7분면의 취세를 표현하고 있다. 화가는 이미 상(像)그리기에 가장 적합한 대상인물의 취세를 개발하였다. 이 점은 중기 이후에는 거의 획일적으로 구사되는 면이다.

필법에 있어서는, 장말손상은 안면 처리에 있어서도 초기의 초상화법을 예시하고 있다. 안색은 황색 살빛으로 시채한 뒤 갈색선으로 윤곽을 잡았는데 선염기는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입술은 살빛보다는 홍기 나는 색으로 칠하였으나 전체적으로 가라앉은 느낌을 주고 있다.

이 당시만 해도 중기 초상화에서 보이는 고심세(高深勢)의 시도는 전혀 없다. 물론 육리문에 대한 이해도 역시 표현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골격 자체에 대한 것은 충분히 인식한 듯이 인물 윤곽의 완연함과 함께 눈매의 표정이 탁월하다. 그리고 눈초리에는 이미 갈색계의 홍기가 미세하게 삽입되어 있다.

장말손영정의 회화사적 의의는 몇 안 되는 초기 공신상 중 하나라는 점 이외에도 선 위주의 표현 수단을 가지고 대상 인물의 요체를 표출하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