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5.jpg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 신천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높이 4.18m.

 

이흥사(利興寺)의 옛터에 남아있는 3층 석탑이다. 이흥사의 창건시기와 규모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인 18세기경까지 그 맥을 이어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천리의 ‘태절골’이라 불리는 마을 밭 가운데에 있는데, 이 일대에는 자기조각과 기와 조각들이 산재하여서 절터로 추정된다.

이 석탑은 신라식 일반형으로서 상·하 2층기단 위에 3층탑신을 세운 것인데, 현재는 하층기단이 파묻혀 있다. 기단부(基壇部)는 여러 개의 장대석(長臺石)으로 지대석(地臺石)을 결구하고 그 위에 하층기단 면석을 조립하였고, 각 면에는 양쪽에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가 모각(模刻)되고 탱주(撑柱)가 2주 마련되어 있다.

 

하층기단 갑석(甲石)은 2매의 판석(板石)으로 덮여 있는데 상면은 경사가 있어서 네 귀퉁이에 합각선(合閣線)이 뚜렷하며, 중앙부에는 높직한 원호(圓弧)와 약간 낮은 각형의 2단의 굄대를 이루어 상층기단을 받고 있다. 상층기단 면석은 4매의 판석으로 짜여졌는데, 각 면에는 양쪽에 우주가 모각되고 중앙에는 탱주를 1주 마련하였다.

 

1매의 큼직한 판석으로 덮은 상층기단 갑석은 하면에 부연(副椽)이 마련되고, 상면 중앙에는 하층기단 갑석 상면의 굄대와 같이 원호와 각형의 2단 굄대를 마련하여 탑신부(塔身部)를 받고 있는데, 상면의 경사는 하층기단 갑석보다 약해서 네 귀퉁이의 합각선이 하층만큼 예리하지는 못하다.

 

그러나 부연의 조출이나 탑신 굄대의 조각수법 등은 매우 정연한 편이다. 탑신부는 옥개(屋蓋)와 옥신석(屋身石)이 각 1석씩으로 조성되었고, 각 층의 옥신에는 각 면에 양쪽 우주가 정연하다. 각 층 옥개석은 다같이 하면의 옥개받침이 4단씩이며 상면에는 각형 2단의 굄을 만들어 그 위층의 옥신을 받고 있다.

 

낙수면(落水面)은 상부에서 급경사를 이루었으나 중앙부와 하단으로 내려오면서 약간 평박하여졌으며, 직선형인 추녀와 전각(轉角)의 심한 반전(反轉)으로 인한 경쾌감으로 말미암아 무거운 느낌은 면하고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1석으로 된 노반(露盤 : 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복발·앙화·상륜 등을 받치는 장식)이 있고, 그 위에 복발(覆鉢 : 탑의 노반 위에 놓은, 엎은 주발 모양의 장식)이 있으며 별개의 보주석(寶珠石)이 놓여 있는데, 이 보주는 본래의 부재가 아니고 후에 보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석탑은 기단부의 하층기단 면석의 탱주는 2주이지만 상층기단은 1주로 생략되었다. 한편 탑신부에서 볼 때 초층·2층의 옥신비례는 3.5:1(62㎝:17.5㎝)로 심한 체감을 보이고 있으며, 또 옥개석의 낙수면이 이례적으로 급경사이며 전각이 둔중하여 역시 통일신라 성대의 전형적인 양식에서는 벗어나 하대로 내려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 이 석탑 앞에는 각 부재에 약간씩의 파손이 보이는 석등 1좌와 원당형부도(圓堂形浮屠) 2기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원위치가 아니며 부근에 산재했던 것을 주민들이 옮긴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 있던 사찰에 대해서는 ≪동국여지승람≫ 등 몇 가지의 문헌에 기록이 보이며, 이들 여러 기록을 종합하여 보면 이흥사(利興寺)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