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보물 제46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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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강원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517-2 |
소재지 | |
지정일 | 1968.07.05 |
수량/면적 | 1기 |
시대 | 고려시대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원주시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흥법사지(興法寺址)에 있는 고려시대의 탑비. 940년(태조 23) 건립. 귀부높이 75㎝, 이수높이 99㎝.
흥법사터에 남아 있으며,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활약한 승려인 진공대사(869∼940)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비문이 새겨진 몸돌은 깨어진 채 경복궁으로 옮겨놓아 이 곳에는 비의 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진공대사는 장순선사(長純禪師)밑에서 승려가 되었으며, 당나라에서 수도하고 공양왕 때 귀국한 후 왕의 스승이 되었다. 고려 건국 후에도 태조가 그의 설법에 감화하여 스승으로 머물기를 원하였으나, 이를 사양하고 소백산으로 들어가 수도하였다. 태조 23년에 입적하니 태조가 손수 비문을 짓고, 최광윤이 당나라 태종의 글씨를 모아 비를 세웠다.
비를 이고 있었던 돌거북은 거북이라기보다 용에 가까운 머리를 하고 있으며,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네 발로 바닥을 힘차게 딛고 있다. 목은 짧고 등껍질 무늬는 정육각형에 가까운데 그 안에는 만(卍)자 무늬와 연꽃이 새겨져 있다.
머릿돌은 앞면 중앙에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고, 그 주위에는 구름 속을 요동치는 용을 조각하였다. 용 두 마리가 서로 무섭게 노려보고 다른 두 마리는 양 귀퉁이에서 옆을 쳐다보고 있다. 뒷면에도 네 마리의 용이 사방을 주시하고 있는데, 웅장한 기운이 넘치면서도 섬세하게 조각되어 당시의 높은 예술수준이 엿보인다.
경복궁에 있는 비의 몸돌은 여러 개의 조각으로 깨져있어 부분적으로 비문을 알아보기가 힘든 상태이나, 대체로 대사의 생애와 업적 등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현재 귀부와 이수는 절터에 남아 있으며, 비신은 일찍이 도괴되어 단석(斷石) 4개가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옮겨져 있다.
비신의 중간부분이 결실되어 있다. 귀부와 이수는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데, 활달한 조각의 귀부와 깊게 새긴 이수의 운룡(雲龍)이 화려하다. 이수 앞면 가운데에는 ‘眞空大師’라는 전액(篆額)이 있다.
비문은 태조가 짓고 문신 최광윤(崔光胤)이 당나라 태종의 글씨를 집자한 것으로 유명하다. 글씨는 2∼4㎝의 행서로 신라 말엽 이미 당태종의 글씨가 전래되었다는 기록을 입증해주는 좋은 자료이다.
비의 뒷면에는 대사가 태조에게 올린 표(表)가 해서로 새겨져 있다. 거의 모든 글씨를 당태종의 글씨에서 집자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고유한 구성미는 찾아볼 수가 없으나, 집자하는 과정에서 당시 이 작업을 수행한 자의 서미적 사고(書美的思考)를 엿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흐르는 서풍은 역시 당태종이 좋아한 왕희지의 서풍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한편, 흥법사진공대사탑도 흥법사터에서 단석과 함께 경복궁에 옮겨져 있다.
귀부 및 이수
이수반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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