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09.jpg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감은사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2기(基). 높이 각 13.4m.

 

감은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새 나라의 위엄을 세우고, 당시 틈만 나면 동해로 쳐들어 오던 왜구를 부처의 힘으로 막아내어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세운 절로, 동해 바닷가인 이 곳에 터를 잡았다. 문무왕은 생전에 절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즉위 이듬해인 682년에 완공하였다. 이러한 호국사상은 탑에도 이어져 장중하고 엄숙하면서도 기백이 넘치는 탑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은, 각 부분들이 하나의 통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십개에 이르는 부분석재로 조립되었다는 것이다. 탑을 세운 시기는 신문왕 2년(682)으로, 1960년 탑을 해체 수리할 때 서쪽탑 3층 몸돌에서 청동제사리(보물 제366-1호)와 청동제사각감(보물 제366-2호)이 발견되었다. 경주에 있는 3층석탑으로는 가장 거대하며, 동해를 바라보는 높은 대지에 굳건히 발을 붙이고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모습은 실로 한국석탑을 대표할 만하다.

 

동서의 쌍탑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양탑은 같은 구조와 규모로 되어 있으며 상하 2층으로 형성된 기단 위에 세워진 평면방형(平面方形)의 삼층석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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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층기단은 지대석(地臺石)과 면석(面石)이 같은 돌로 된 12장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고, 각 면에는 양쪽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가 있는 외에 탱주(撑柱)가 3주(柱)씩 있다. 갑석(甲石)도 역시 12장의 석재로 짜여져 있으며, 갑석 중앙에는 호형(弧形)과 각형(角形)의 2단굄이 있다.

 

상층기단은 면석이 12장의 석재로 조립되어 있으며, 각 면에는 양쪽 우주가 있는 외에 탱주가 3주씩 있다. 갑석 중앙에는 각형의 2단굄이 여러 개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다. 하층기단의 아래쪽 주위에는 외곽지대석이라고도 볼 수 있는 유구가 있다.

 

탑신부의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은 각 부마다 4∼8개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고, 그 내부는 적심석(積心石 : 표면석의 내부에 채워 다지는 돌)으로 메워져 있으나, 제3층 옥신만은 석재가 하나인데 이것은 규격이 작은 원인도 있겠으나 사리장치를 하기 위한 방편으로도 볼 수 있다.

 

초층 옥신은 네 모서리의 우주와 그 사이의 면석들을 따로 만들어 맞추어 세웠으며, 제2층 옥신은 각각 한쪽에 우주를 하나씩 모각한 판석 4장으로 조립되어 있고, 1장으로 조성된 제3층 옥신에는 각 면 양쪽의 우주가 정연하다.

 

옥개석은 낙수면 부분과 받침 부분을 별개의 돌로 조성하되 각각 4장으로 짜여져 있다. 받침은 각 층 5단씩이며, 낙수면 정상에는 2단의 높직한 굄이 있다.

 

상륜부는 제3층 옥개석 위에 1장으로 만들어진 노반석(露盤石)이 남아 있고, 그 이상의 부재는 없어졌다. 현재는 쇠로 된 찰주(擦柱 : 탑의 중심기둥)가 노반석을 관통하여 탑신부에 꽂혀 있을 뿐이다.

 

노반 이상에 보이는 찰주의 높이가 3.5m, 그 이하로 제3층 옥개석의 중심에 꽂힌 부분이 약 1.3m이다. 이 찰주의 중간 부분에 가공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상륜부는 모두 석재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믿어진다.

 

이 석탑은 상하기단과 탑신부의 각 면에 우주와 탱주가 모각되어 있고 낙수면이 경사를 이루고 있고 전각에서 추녀가 위로 들려지는 등 목조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수평을 이루고 있는 추녀 밑 부분과 층단을 이루고 있는 받침 등 전조탑파양식(塼造塔婆樣式)을 모방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석탑양식은 이후 우리 나라 석탑의 전형으로 정립되었다.

 

통일신라 초기의 석탑에서 주목되는 점은 각 부의 구성이 백제시대의 석탑과 같이 많은 석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은 목조건축에 있어서의 구조성(構造性)을 잃지 않고 있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면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감은사지삼층석탑이다.

동서의 두 탑 중 서탑은 1959년 12월에 해체 보수되었는데, 해체 당시 제3층 옥신의 상면 사리공(舍利孔 : 사리를 장치하기 위하여 탑재에 파 놓은 구멍)에서 사리장엄구가 창건 당시의 상태로 발견되었다.

 

사리공은 장경(長徑)을 남북에 두고 중앙보다는 좀 남쪽으로 기울어져 파여 있다. 사리공의 크기는 57×29.5㎝, 깊이 29.1㎝이며, 평평한 바닥 북단 가까이에 직경 15㎝, 깊이 9.3㎝의 원형배수 구멍이 마련되어 있다.

 

이 사리공 속에는 청동제사리기(靑銅製舍利器)를 사각의 감(龕)에 담아두었을 뿐 이밖에 아무런 장엄구도 들어 있지 않았는데, 이들 관계유물은 조성연대가 뚜렷하고 발견장소도 확실하여 보물 제366호(감은사지서삼층석탑내유물)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