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2.jpg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높이 7.54m.

 

경기도 개성 부근의 남계원터에 남아 있던 탑으로, 예전에는 이 터가 개국사(開國寺)의 옛터로 알려져 개국사탑으로 불려져 왔으나, 나중에 남계원의 터임이 밝혀져 탑의 이름도 남계원칠층석탑으로 고쳐지게 되었다. 1915년에 탑의 기단부(基壇部)를 제외한 탑신부(塔身部)만 경복궁으로 이전하였다. 이후 원 위치에 대한 조사 결과 2층으로 구성된 기단이 출토되어 추가 이전해 석탑 옆에 놓았다가 다시 복원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 세워져있다.

 

탑의 구조는 2층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을 세우고 그 정상에 상륜부(相輪部)를 형성한 것으로, 외견상 신라석탑의 전형을 지키고 있는 듯하나 세부적으로는 양식의 변화를 볼 수 있다.

 

여러 개의 석재로 구성된 기단부는 현재 몇 개가 결실되었으나, 하층기단 면석은 신라시대의 일반형 석탑보다 훨씬 높아졌고 상대적으로 상층기단은 약간 낮아진 듯하다. 상하층 갑석(甲石)은 부재(部材)가 온전하게 남아 있지 않으므로, 현재는 하층기단 면석과 상층기단 사이의 하층기단 갑석 자리에 상하층 기단 갑석을 함께 놓았는데, 상층기단 갑석은 하면에 부연(副椽 : 탑 기단의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이 정연하고 다듬은 솜씨도 세련미를 보이고 있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석을 각기 1석씩으로 조성하였으며, 각 층 옥신에는 각 면에 양쪽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가 모각되었는데, 낮게 각출하여 신라석탑의 예리하게 모각한 것과는 달리 퇴화된 일면을 보이고 있다.

 

옥개석은 각 층이 같은 수법을 보이는데, 아랫면에 3단씩의 옥개받침이 낮게 조출되고, 윗면에는 아무런 굄대도 없이 그 위층의 부재를 받고 있다. 낙수면은 평박(平薄)하나 아랫면의 받침부가 낮아서 중후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추녀가 두꺼워지고 전각부(轉角部)에 이르러서는 윗면에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면서 반전되듯이 하단부도 이에 따라 반전되어, 이른바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석탑은 신라석탑의 경쾌한 느낌과는 달리, 전각의 굴곡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경박한 느낌을 주고 있다. 상륜부는 탑신 정상에 한 개의 돌로 조성한 노반(露盤)과 복발(覆鉢)뿐이고, 그 이상의 부재는 없어졌다.

 

이 석탑은 전체적으로 보아 2층 이상의 탑신부 각 층의 감축률은 낮은 편인데, 웅건한 기풍과 정제된 결구수법을 보여서 고려시대 석탑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각 부분의 수법과 양식이 상하가 모두 일치하지 않는 점에서, 후세에 보수된 탑이 아닌가도 추측된다.

1915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할 때 탑신부에서 7축(軸)의 ≪감지은니묘법연화경 紺紙銀泥妙法蓮華經≫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고려 제25대 충렬왕 때의 사경(寫經)으로 추정되며, 1283년(충렬왕 9) 중수 때 넣은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