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 김천시 대항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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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화상이 선산 도리사(桃李寺)를 창건하고 황악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쪽에 큰 절이 설 자리’라고 하여 직지사로 불렸다는 설과, 고려 초기에 능여(能如)가 절을 중창할 때 절터를 측량하기 위해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측량하여 지었기 때문에 직지사라고 하였다는 설, 선종의 가르침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에서 유래된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창건 이후 645년(선덕여왕 14)에 자장(慈藏)이 중창하고 930년(경순왕 4)에 천묵(天默)이 중수했으며, 936년(태조 19)에 능여가 태조의 도움을 받아 크게 중창하였다. 당시의 중요건물로는 대웅대광명전(大雄大光明殿)·대비로금당(大毘盧金堂)·극락전·원통전(圓通殿)·지장시왕전(地藏十王殿)·응진전(應眞殿)·설법전(說法殿)·선등각(禪燈閣)·대장전(大藏殿) 등이 있었다. 현재 금석문으로 남아 있는 대장전비에 의하면, 이 절의 대장전에 금자사경(金字寫經) 593함(函)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1399년(정종 1)의 중건과 1488년(성종 19) 학조(學祖)의 중수가 있었으며, 1596년(선조 29) 왜병들의 방화로 43동의 건물 중 천불전(千佛殿)·천왕문(天王門)·자하문(紫霞門)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타 버렸다. 이때 법당 앞에 있던 대형의 5층목탑도 함께 소실되었다.
그 뒤 1602년부터 70여 년에 걸쳐 절을 중건하였는데, 1681년(숙종 7)에 조종저(趙宗著)가 쓴 사적기에 의하면 당시의 규모가 8전(殿)·3각(閣)·12당(堂)·3장(藏)·4문(門)에 정실(正室)만 352칸에 달했으며, 부속 암자는 26개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805년(순조 5) 이후부터 사세(寺勢)가 차츰 기울기 시작하여 퇴락을 거듭하게 되었다. 현대에 이르러 대대적인 중건에 착수하여 1966년부터 1981년 10월까지 10동의 건물을 중건하고 10동을 이건했으며, 9동을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735년(영조 11) 태감(泰鑑)이 중건한 대웅전이 보물 157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규모가 큰 천불전을 비롯하여 극락전·응진전·명부전·사명각(泗溟閣)·범종각·일주문·금강문(金剛門)·사천왕문, 그리고 300여 평이 넘는 천불선원(千佛禪院)과 요사채 등이 있다.
사명각은 임진왜란 때의 승병장 사명당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15세에 이 절로 출가하여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한 그의 뜻을 되새기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또, 범종각에는 1981년에 만든 1,600관의 범종과 법고·운판(雲板)·목어(木魚) 등이 있다.
부속 암자로는 운수암(雲水庵)과 백련암(白蓮庵)이 있다. 직지사석조나한좌상(경북유형문화재 296) 이 있다. 교통안내 - 서울→경부고속도로 추풍령 인터체인지(3시간)→국도4번(김천 방면)→지방도903번→ 직지사 현지교통 - 김천역 및 버스터미널 앞에서 직지사행 11번, 111번 시내버스 이용 현지숙박(지역번호 054) - 동원장여관 433-1220 주변관광지 입 장 료 주차시설
중요 문화재로는 금동육각사리함(국보 208)
- 부산→경부고속도로 김천인터체인지(2시간 30분)→국도4번(영동 방면)→지방도903번→직지사
(06:10-22:40,10분 간격운행,25분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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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료
청풍료앞삼층석탑
청풍료앞
청풍료앞의 전시물
청풍료앞의 전시물
청풍료앞의 전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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