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文)의 나라 조선은 조선왕조실록에 이어 또 하나의 세계적인 역사기록을 배출했습니다. 이번에 보게 될 승정원일기(이하 일기)가 그것입니다. 실록이 세계 최대의 단일왕조 역사서라면 일기는 세계 최대의 역사기록물입니다. 글자 수가 2억4천여 만 자라고 하니까 실록의 4배가 됩니다. 그래서 세계 최대의 역사서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실록처럼 활자로 찍은 것이 아니라 손으로 쓴 것입니다. 그래서 양이 많아질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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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 일기의 표지. 승정원 일기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역사기록물로 인정받고 있으며
조선왕조실록과 함께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출처: 문화재청>
동북아시아의 근세사에 대한 훌륭한 기록
일기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보기 전에 승정원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아야겠습니다. 승정원은 왕의 비서실로, 소개글을 보면 보통 ‘왕명의 출납을 담당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것은 왕과 각 부서들 사이에서 소통 역할을 했다는 뜻입니다. 각 부서에서 올라오는 서류를 정리해 왕에게 전하고 왕의 명령을 여러 부서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지요. 사극을 보면 왕이 ‘도승지는 들라’는 말을 하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는데 도승지란 오늘날로 하면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말합니다. 승정원 일기는 바로 이 비서실에서 왕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적은 기록입니다. 실록이 나라 전반에 관한 기록을 남긴 것에 비해 일기는 왕 개인에 초점을 맞추어 적은 것입니다. 왕의 동태나 기분까지도 상세하게 적었습니다. 그래서 일기의 기록을 읽고 있으면 마치 현장에 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영조가 일이 많은 것을 한탄하며 ‘이렇게 일 때문에 골치를 썩는 것은 내 팔자’라고 했던 넋두리까지 적고 있으니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겠습니다. 이런 개인적인 기록은 실록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실록과 관계해서 이런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같은 왕조의 역사 기록물이 두 개씩이나 세계유산이 될 수 있었는지 말입니다. 일기는 특히 동북아시아의 근세사에 대한 훌륭한 기록으로 인정받아 세계유산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조선 왕실을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 그리고 서양 각국들이 각축하던 모습들이 아주 잘 기록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일기는 실록처럼 전체 분량이 다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록의 경우에는 지방 사고(전주 사고)에 있던 것이 보존되어 임란 전 것도 남아 있지만 일기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일기는 경복궁 안에만 있었기 때문에 임란 때 타버리게 됩니다. 임란 후의 것도 다 보존된 것이 아니라 이괄의 난 때 다시 한 번 화재를 입어 그 이후의 것만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인조 대부터 순종대까지 288년의 기록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세계 최대역사서이니 만일 전체가 다 남아 있었다면 얼마나 거대한 역사서가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꼼꼼하고 상세한 기록으로 되살아나는 역사
일기의 기록정신 역시 대단합니다. 이에 관한 예는 매우 많기 때문에 아주 대표적인 것만 골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것처럼 조선에는 선비들이 상소문을 올려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했습니다. 실록은 이 많은 상소문을 요약해서 기록합니다. 그에 비해 일기는 전문을 전부 다시써서 보관했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압권인 것은 정조때 영남의 유생 만여 명이 올린 만인소(萬人疏)입니다. 이 상소문은 단종을 복권시키라는 내용이었는데 사안이 중대하다 보니 1만 명 이상이 참여했습니다. 이에 대해 일기는 상소문 전문을 다 적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1만여 명의 이름까지 모두 적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지금도 1만 명의 이름을 타자로 치려면 쉽지 않은 일이거늘, 붓으로 그 많은 이름을 적으려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조선의 기록정신은 이리도 대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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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2년(1622)3, 4, 5월 일기의 속지. <출처: 문화재청>
일기는 제일 먼저 날짜를 기록하고 날씨를 적습니다. 그리고 근무 상황에 대해 적는데, 이 부분도 아주 세밀하게 적습니다. 지각을 했는지 조퇴를 했는지 등등에 관해 정확하게 적어놓고 있더군요. 날씨는 더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100 여 가지의 방법으로 날씨에 대해 적습니다. 예를 들어 오전에 맑았다 저녁 때 비가 오면 조청석우(朝晴夕雨)라고 적는 것이 그것입니다. 비도 그냥 비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약 8가지로 분류해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구분이 아주 세분화되어 있어 놀랍습니다. 예를 들어 한자로 ‘보슬비’와 ‘부슬비’와 ‘가랑비’를 다 구분해 적고 있는데 이 비들을 어떻게 구분했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영조 46(1770)년부터는 강우량까지 정확하게 적게 됩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이 해에 측우기를 복원했기 때문입니다. 관계 학자들에 따르면 전근대 사회에서 한 곳에서 이렇게 날씨와 강우량을 오랫동안 적은 예는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난 300백 년간의 동북아 기상을 연구하려면 일기의 기록이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천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일기를 썼던 사람들은 밤에도 잠을 자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저녁 8시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별의 움직임을 자세하게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하늘의 움직임과 인간계의 움직임이 연결되어 있다고 믿어 특히 별을 꼼꼼하게 관찰했습니다. 예를 들어 유성이 떨어지면 어떤 방향에 어떤 크기로 떨어졌는지에 대해 아주 정확하게 적습니다. 1~2초라는 순식간에 일어나는 천문현상을 주시하고 있다가 정확하게 기록에 남기는 것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일기에는 이런 기록도 있습니다. 영조 때 큰 번개와 천둥이 친 모양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조사해보니 양주의 한 여인이 강간당한 뒤 피살되었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이것을 두고 조선의 조정은 패륜적인 사건이 생겨 하늘이 노했다고 해석했습니다. 이에 영조는 자신이 정치를 잘못했다고 생각해 수라상에 올라오는 반찬의 수를 줄이라 명합니다. 이 이야기도 일기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상세한 기록을 통해 조선조 동안 얼마나 높은 정치가 이루어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번역
그런데 실록이 모두 번역되어 있는 것에 비해 이 일기는 양이 하도 많아 번역이 많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실록은 활자로 인쇄되어 처음부터 읽기에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만, 일기는 가장 흘린 체인 초서체로 되어 있어 이것을 읽기 편한 해서체로 바꾸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2억 개가 넘는 글자를 판독해 해서체로 바꾸는 작업이 쉬울 리 없겠지요. 번역은 고종대의 것이 진작 끝났고 현재는 인조 대를 거쳐 영조 대의 것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다 번역하려면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안에는 앞으로 쓰일 수 있는 내용이 무궁무진하다고 하는데 특히 국사 연구에 지각변동이 있을 거라는 예측이 있더군요. 이렇게 중요한 우리의 고전이 번역되면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분야에서 생기게 될 터이니 여간 기대되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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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희원년(1907) 12월 일기(왼쪽)와 천계2년 3, 4, 5월 일기(오른쪽).
현재 승정원 일기 전문에 대한 번역과 디지털화 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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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최준식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하였다. 한국문화와 인간의식 발달에 관심이 많으며 대표 저서로는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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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 제공 http://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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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장처: 서울대학교규장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