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98.jpg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아도화상이 세웠다고 전하지만 고려 중기까지의 역사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조선 선조 38년(1605)과 광해군 6년(1614)에 큰 불이 일어나 절이 모두 타버려, 그 이듬해 다시 짓기 시작하여 광해군 13년(1621)에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대웅보전 서쪽에 있는 아담한 약사전은 중생의 병을 고쳐준다는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는 법당이다.『대웅전약사전개와중수기(大雄殿藥師殿改瓦重修記)』에 조선 고종 13년(1876) 대웅보전과 함께 기와를 바꾸었다는 기록이 보일 뿐 언제 지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고 건축 수법이 대웅보전과 비슷하여 조선 중기 건물로 짐작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보물 제179호. 건물의 형태는 방형으로, 내부는 통간(通間)으로 된 작은 불전(佛殿)이다. 막돌허튼층쌓기를 한 석축 위에 장대석으로 기단을 쌓았는데, 이 기단은 전면이 모두 계단형식으로 되어 있다.

또한, 기둥과 기둥 사이에 있는 공간포(空間包)도 정면의 주간(柱間)에만 하나씩 놓여 다포식을 이루고 있을 뿐, 양 측면과 뒷면에는 공간포가 없는 주심포식을 따르고 있어 절충적인 공포양식을 보여준다.

가구(架構)는 대들보를 앞뒤 평주(平柱) 위에 걸고, 양 측면 기둥 위에서 이 대들보에 용머리로 그 끝을 장식한 충량(衝樑)이 걸려 있으며, 대들보 위의 동자기둥이 받치는 종보〔宗樑〕부터는 우물천장을 가설하여 마무리짓고 있다. 팔작기와지붕으로 처마 끝에는 막새기와를 사용하였다. 창호(窓戶)는 전면에만 두었는데 빗살창호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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