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94.jpg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전등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불전.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아도화상이 세웠다고 전하지만 고려 중기까지의 역사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조선 선조 38년(1605)과 광해군 6년(1614)에 큰 불이 일어나 절이 모두 타버려, 그 이듬해 다시 짓기 시작하여 광해군 13년(1621)에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석가여래삼존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은 광해군 13년(1621)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기와지붕건물. 보물 제178호. 1916년 해체수리 때 발견된 〈양간록 樑間錄〉에 의하면, 이 건물은 1605년(선조 38) 화재로 절반이 탔고, 1614년(광해군 6) 12월 다시 짓기 시작하여 1621년 윤2월 7일 서까래를 놓았다는 것으로 미루어 조선 중기의 건축물임을 알 수 있다.

막돌허튼층쌓기로 된 높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민흘림원기둥을 세웠으며, 창방(昌枋)으로 기둥 윗몸을 결구하여 그 위에 평방(平枋)을 놓았다.

특히, 귀공포에서 귀한대〔隅限大 : 귓기둥에서 도리와 45°각도로 내민 포살미〕 삼제공 위에 나무로 깎은 인물상을 조각하여 올려놓은 것은 다른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내공포는 제공 끝이 판형으로 되어 있으나, 기둥 위만은 교두형(翹頭形 : 圓弧形으로 깎아낸 모양)으로 되어 있다. 공포의 배치는 전후면의 각 주간(柱間)에는 2구(具), 양측면의 어간(御間)에는 3구, 변간(邊間)에는 2구씩 두었다.

가구(架構)는 내부에 고주(高柱)를 세우지 않고, 대들보를 앞뒤 평주(平柱) 위에 걸고 그 위에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宗樑〕를 받치게 하고, 여기에 우물천장을 가설하였으며, 천장은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다. 또, 양 측면의 어간 평방에서 보머리〔樑頭〕에 용머리를 조각한 충량(衝樑)을 걸었다.

불단 위의 닫집은 처마를 정자각(丁字閣) 모양으로 꾸미고 16개나 되는 공포를 포개서 배열하고 있으며, 그 아래에 투각(透刻)한 장식판과 부룡(浮龍 : 뜬 용)·극락조 등을 매달아놓았는데 능숙한 조각공의 솜씨가 잘 발휘된 수준급의 작품이다. 지붕 위 기왓골 끝에 백자로 만든 연봉오리 장식이 올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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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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