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23.jpg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조. 길이 2.73m, 너비 2.14m, 깊이 0.61m.

 

화강암을 재료로 하여 만든 이 석조는 하나의 돌로 되어 있는데, 안팎으로는 아무런 장식문양이 없어 단순하고 소박할 뿐 특이한 구조는 없다.

이러한 석조는 지금도 여러 사찰에서 급수용기로 사용되고 있음을 볼 때, 그 당시에도 급수용기로 사용되었으리라 믿어진다. 이 석조는 비교적 크고 조각수법은 단순하나 장중한 작풍이 당대의 대표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석조가 있는 일대에는 경주 동쪽의 관문에 해당되는 명활산(明活山)과 경주분지의 중심에 있는 경주낭산(慶州狼山, 사적 제163호) 사이에 보문평야가 있으며, 이 보문평야 동편으로 통일신라시대 보문사터가 전해오고 있다.

이 절터에는 부처님을 모셨던 금당터〔金堂址〕, 동서 탑지(塔址)와 석등받침돌〔石燈臺石〕·건물기둥받침돌〔柱礎石〕·당간지주(幢竿支柱, 보물 제123호) 등의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이 지역에서 ‘普門(보문)’이라 새겨진 기와편이 수습되어 보문사가 있었던 위치로 보고 있다.

보문사터에 남아 있는 대부분의 유물이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인 것으로 보아, 이 석조도 그 규모와 돌을 다듬은 솜씨가 같은 시기에 함께 만들어졌던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