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25.jpg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빙고.

 

월성 북쪽의 성둑을 잘라서 남쪽에 입구를 내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닥을 경사지게 하고 물이 밖으로 배출되도록 바닥 중앙에 배수로가 설치되었다.

 

내부는 동서로 홍예(虹霓 : 무지개 모양의 문) 5개를 틀어올리고 홍예와 홍예 사이에 장대석을 걸쳐서 천장을 삼았고, 북쪽 벽은 수직으로 쌓았다. 홍예와 홍예 사이 천장에는 세 곳에 배기공을 설치하였는데, 현재 배기공 위에 덮어놓은 석재는 근래의 수리 때 석탑의 옥개석을 사용한 것으로 원래의 것은 아니다.

 

출입구는 높이 1.78m, 너비 2.01m의 넓이로 만들고 계단을 설치하여 밑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이 빙고 옆에 있는 석비에 의하면, 1738년(영조 14) 당시 부윤이던 조명겸(趙明謙)이 목조의 빙고를 석조로 축조하였다는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고, 빙고 입구 이맛돌에는 ‘崇禎紀元後再辛酉移基改築(숭정기원후재신유이기개축)’이라 쓰여 있어 4년 뒤에 현위치로 옮겼음을 알 수 있다.

 

옮기기 전의 옛 위치는 서쪽에 남아 있다. 현재 영조 때 축조한 석빙고가 여러 곳에 남아 있으나, 그 중에서도 이 빙고가 가장 완전하다.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얼음을 저장하던 시설은 이미 신라(新羅) 지증왕(智證王) 6년(505)부터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