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72.jpg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양반 주택

 

조선 숙종 3년(1677)에 현 소유자의 9대 선조인 이간(李柬)공(호;위암, 세자 시강원자의(魏巖, 世子 侍講院資義)와 경연관, 조선후기 성리학자(經筵官, 朝鮮後期 性理學者))이 출생한 가옥으로 소유자의 증조부 이상익(李相翼)공(호;건재(建齋)1848∼1897)이 현재의 모습으로 건립하였다.

이 가옥은 이상익공이 전라도 영암군수를 지내 택호를 영암댁(靈岩宅)이라고도 한다. 사랑채에 이간(李柬)공의 교지가 보관되고 있어 입향조(入鄕祖)의 근거자료가 되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훈대부행충청도도사겸해운판관경연관증자선대부이조판서겸지의금부사성균관제주오위도총부도총관이간익문정공자 가경십육년육월십구일도문일문이정안지일정(中訓大夫行忠淸道都事兼海運判官經筵官贈 資善大夫吏曹判書兼知義禁府使成均館祭酒五衛都摠府都摠管李柬謚文正公者 嘉慶十六年六月十九日道聞日文以正眼之日正)" 가경(嘉慶) 16년은 조선 순조(純祖) 11년(1811)에 해당된다.

건물의 배치는 설화산(雪華山)을 진산(鎭山)으로 하여 산세에 따라 서북향으로 하고 설화산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명당수를 이루고 있다. 이 물을 유입하여 이준경가옥과 마을 대부분의 집에도 계류(溪流)를 조성하여 수경을 이루게 함과 동시에 화재에도 대비케 한 특성이 있다.

가옥의 구성은 문간채, 사랑채, 안채를 주축으로 하여 향우측에 나무광을, 향좌측에 곳간을, 향우측 맨 위쪽에는 가묘를 배치하였으며 사랑채 앞은 넓은 마당으로, 가묘 우측에는 후원으로, 나무광 우측에는 연못(후에 변형)으로 조성되어 있다. 가옥의 주위에는 돌담을 두루고 돌담 밖(곳간채 후측)에는 초가로 된 하인집이 있다. 문간채는 ―자형으로 솟을대문과 방으로 구성되고 양측에서 연결하여 담장을 둘렀다. 사랑채는 ┑자형으로 방과 대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로 꺾인 중앙부분에 안대문이 남향하고 있다. 안채는 ┑자형으로 방 대청 부엌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무광은 원래 초가지붕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시멘트기와지붕으로 개조되어 있다. 나무광의 후측에는 원래 별당건물이 있었으나 후대(이준경의 증조때)에 연못으로 변형된 것으로 전래됨(이준경의 증조모가 뒷뜰 별당자리에 용 꿈을 꾸고 4형제(용기, 용선, 용찬, 용근(用琦, 用善, 用讚, 用根)를 득남하여 별당을 헐고 연못을 조성하였다고 전한다.) 사랑채 앞마당에 있는 2동의 정자는 당초 초가였던 것을 기와지붕으로 개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랑채의 앞마당은 조선 후기의 절충식 정원으로 수림(소나무, 단풍나무, 은행나무, 모과나무, 감나무, 황매화, 옥잠화, 회양목 등), 계류 괴석 등으로 구성되어 전통 정원에 외래정원이 가미된 절충형식을 이루고 있다. 집안에는 대대로 물려온 유물 (도자기, 낙관, 교지, 서화, 현판, 가구, 생활용구 등) 약 300여점이 보관되어 있다. 사랑채의 부엌은 지금도 장작을 사용하여 민가의 정취를 살리고 있다. 이 밖에 건축과 조경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1993년에 공주대학교박물관에서 조사한 바 있으므로 이 보고서를 참고하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