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62.jpg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에 있었던 고려시대의 부도. 높이 3.5m. 간송미술관 소장.
 
이 부도(浮屠)는 본래 충북(忠北) 괴산군(槐山郡) 칠성면(七星面) 외사리(外沙里) 절터 부락의 산기슭에 건립되어 있던 것인데, 일제침략기(日帝侵略期)에 일본(日本)으로 탈취해 가기 위하여 인천항(仁川港)에서 선적(船積)하기 직전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이 이를 비싼 값으로 수습하여 성북동(城北洞)의 간송미술관(澗松美術館)에 옮겨 세워 광복을 맞이하였다. 6·25사변 때 파손되어 또다시 각 부재가 흩어진 것을 1964년 2월 3일 간송(澗松)의 대기일(大忌日)을 맞는 날에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화강암재(花崗巖材)의 8각(角) 원당형(圓堂形) 부도로서 4장의 장방형 판석(板石)으로 짜여진 지대석(地臺石) 위에 놓여졌다. 구조는 하대(下臺) 위에 중·상대(中上臺)를 놓고 그 위에 탑신(塔身)·거개(居蓋)· 상륜(相輪)을 올려 놓고 있는 일반 형식이다. 하대는 상·하 2장의 돌로 8각이다. 하대 측면에는 1면 2구(區)씩의 안상(眼象)을 새기고, 그 안에 귀꽃 모양의 조식(彫飾)이 있으며, 상석에는 복련(伏蓮)을 돌리고 8각마다 귀꽃을 조각하였는데, 그 수법이 주목된다. 윗면에는 2단의 각형(角形)받침과 1단의 몰딩이 있어 굄을 삼고 그 위 높직한(높이 7㎝) 또 하나의 굄으로 한 돌로 된 8각 중대석을 받치고 있다. 중대석 하부에는 측면에 운문(雲文)을 양각한 1단(높이 13㎝)을 마련하고, 그 위 8면에는 아무 조식도 없는데, 각 면마다 위가 좁고 밑이 넓은 엔타시스를 나타냈음은 특이하다 할 것이다. 상대석은 하부에 3단의 각형 받침이 있으며 측면에는 앙련(仰蓮)을 돌렸는데, 각 면 중앙에 1판(瓣)을 조각하고 귀퉁이에는 가늘고 긴 연판(蓮瓣)을 한 쌍씩 배치하였다. 그 수법이 유려(流麗)하며, 특히 중앙판 안에는 화판장식(花瓣裝飾)이 있어 주목된다. 윗면에는 3단 굄이 있어 탑신을 받치고 있는데, 8각 탑신의 각 면은 다시 액(額)(23.5×45㎝)을 돌렸고 남·북 2면에는 문비(門扉)가 있으며 중앙에 자물쇠가 양각되어 있다.

10463.jpg 옥개석은 밑면에 3단 받침이 있으며 전각(轉角)의 반전(反轉)도 단아하여 각 귀퉁이마다 뻗쳐 올린 귀꽃의 모양과 조법은 흥법사진공대사탑(興法寺眞空大師塔)(보물(寶物) 제(第)36호(號))과 같은 양식이라 할 것이다. 낙수면에 기왓골은 없으나 8각의 합각(合角)이 뚜렷하며, 꼭대기 부분의 8면에 돌판 복련(伏蓮)도 아름답고 화려하다.

상륜(相輪)은 현재 복발(覆鉢)과 보주(寶珠) 두 돌로 되어 있는데, 복발의 상·하는 평면 원형이고 가장자리에 연판(蓮瓣)이 있으며, 중간 고부(鼓部)에는 2줄의 선을 돌리고 그 중간 4곳에 4엽화문(葉花文)을 배치하였다. 보주는 하부에 원대(圓臺)를 마련하였는데, 아래위에 연판과 중앙에 2줄의 선을 돌린 것이 복발과 흡사하다. 그 위 3면은 상단이 마손되어 조식(彫飾)을 알 수 없으나, 각 면 2판씩의 연화문을 새긴 것은 확연하다.

이상 부도의 구조와 양식 수법 등을 살펴보았는데, 이 부도의 조성 연대는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이나 안상(眼象) 및 연판 등의 수법과 각부 양식으로 보아 고려중기 이전의 우수한 작품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