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민속자료 제24호 영천매산고택및산수정(永川 梅山 古宅 및 山水亭)
종목 | 중요민속자료 제2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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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북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 1020 |
소재지 | 임고면 |
지정일 | 1970.12.29 |
수량/면적 | 일곽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정재영 |
관리자 | 정재영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
영천시 임고면 소재지에서 북으로 7km쯤에 위치하며 이 마을의 초입(初入)오른쪽 산기슭에 서남향으로 자리한 집이다. 마을 자체는 중첩(重疊)된 나직한 산봉(山峰)으로 둘러싸여 풍수설(風水說)로는 꽃술을 에워싼 꽃잎과 같은 형국이고 이집의 배산(背山)은 매화낙지(梅花落枝)형국이며 집 자체는 꽃술에 비유된다고 한다. 또 마을의 안산(安山)은 매화형국(梅花形局)인 마을을 향해 날아드는 나비와 같다고 한다.
이 집의 병건-완성(병建-完成)은 재영씨의 10대조인 정중기(鄭重器)(1685∼1757)와 일감(一鑑) 부자대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현재건물은 대문채와 몸채, 사랑채, 사당채 등으로 대별된다.
몸채는 완벽한 ㅁ자형이고 그 우하(右下)의 사랑방에서 이어져 나온 사랑누마루와 책방(冊房)은 사당하에 남북일자로 배치되어 있다. 루마루와 책방의 이러한 배치는 몸채의 동사(東舍)와 평행을 이루는 종배(縱配)로서 매우 독특한 것이지만 그것은 아마도 사당채의 제한적 전정(前庭)을 사랑채로 가로막지 않고 넓게 틔워 놓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이 집 전체의 담장 안에 원래 있었다가 없어진 부속건물은 대문 안 동정(東庭)의 고방·마구간채 4간·3간의 온돌과 툇마루를 두었던 아랫사랑채, 그 서원내(西垣內)의 간수불명인 고방채, 그리고 안부엌, 뒤울안의 3간 방아실채 등 4동이고 안부엌 아래 마루방에서 일자로 서출(西出)했던 고방 2간 등이다.
대문채는 3간이고 대문의 서문이 마판(馬板), 동간이 행랑방(마부방)이며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이 대문을 기점으로 해서 동서 양편으로 담장을 싸돌려 동서와 남북의 길이가 각각 400여m에 이르는 방곽(方廓)담장을 이룩하였다.
안채의 중심부에는 6간대청을 두었고 대청의 전후 각 2개의 기둥은 두리기둥을 썼으며 청의 뒷간(3간)에는 상례대로 쌍여닫이 판장문을 부설하였다. 대청의 서편에 안방과 부엌 각각 2간이 종접하였는데 안방과 부엌의 연접형식은 영남식을 보이고 있다. 안채지붕은 맞배에 홑처마이다. 부엌 아래 모서리에는 1간의 마루방이 있어 찬광으로 쓰였음을 짐작케 한다. 찬광의 오른편으로 1간의 온돌방(아랫방)과 1간의 부엌이 이어지고 중문간이 된다. 이 3간은 모두 전퇴를 두고 퇴에는 난간을 부설하여 중문 양편의 경관을 균형있게 조정하고 있다.
중문의 동편에 접해서는 2간의 사랑방이 동서일자로 이어지고 여기에도 전퇴와 난간을 두었다. 그 끝은 남북으로 두출(斗出)한 루마루 2간과 책방 1간이 一자로 이어지는 일종의 익사(翼舍)로 꾸며져서 사랑방 배열(配列)의 일반적 통례를 벗어난 색다른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 변화는 앞에 말한 바와같이 사당 신역(神域)의 확보와 관계되는 것이라고 믿어진다.
사랑온돌은 2간이며 그 아랫방 안쪽에는 골방을 두고 그 골방에는 안마당으로 드나드는 문을 두었는데 이 점도 내정(內庭)출입에 중간 골방을 경유한다는 점에서 간혹 별례가 있기는 하나 골방의 역할이 내정과의 관계에서 완충적 기능을 갖게하는 것이라 하겠다. 또 이방 앞에는 설렁줄을 매었는데 이 줄을 당기면 안채의 설렁방울이 울려서 호출신호로 쓰이던 것이다. 통상 “사랑웃방”을 이 집에서는 큰사랑방이라 부른다. 큰사랑방 옆은 익사형 루마루와 책방인데 루마루 2간은 10척(尺)간살이여서 사랑방이나 안방의 8척보다 2척을 더 크게 하였다. 루마루의 앞 1간 둘레에는 퇴마루와 난간을 두르고 있다. 이 루마루가 즉 사랑대청인 셈이나 이 집에서는 안대청과 마루방, 중대문채의 툇마루와 난간, 산수정 등 청과 난간을 다용하고 있다. 사랑채의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루마루 밑에는 동바리 기둥을 받쳤다.
안대청의 동단(東端) 머릿방(건넌방)아래에는 1간의 마루방과 고방이 이어지며 이 고방과 사랑 골방과의 사이에 생긴 좁은 간이 중문간(협문간)이 된다. 이 중문은 사랑후원이나 사당출입시에 쓰이던 문이다. 큰사랑채의 온돌과 마루는 충실히 갖추어진 셈이나 그 밖에 안채나 아래채의 온돌방은 비교적 부적한 편이어서 “작은사랑”이나 “안사랑”을 갖추지 못한 것은 다른 대가 들과는 다른 점이라 하겠다.
이 집의 대지는 비교적 경사진 산기슭이어서 중문간채와 부엌, 동쪽의 고방채, 안채가 각각 삼단고(三段高)의 지층을 이루고 있으며 따라서 지붕의 높이도 안으로부터 삼단으로 점차 낮추어지는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경사지라는 입지조건에 연유한다 하겠다.
내당(內堂)후원에는 죽림(竹林)이 들어차 있어 따로 담장을 두르지는 않았다. 내당의 머릿방 동면에는 별도로 방곽(方廓) 담장을 두른 3간×1간의 사당(祠堂)채가 있다. 이 집의 서북쪽 산곡(山谷) 암벽에는 3간 정자를 두고 이름을 산수정(山水亭)이라 하였다. 양쪽 온돌방은 전후에 툇마루를 두었고 가운데 청과 연접되어 정의 전면에서 측면을 꺾어 난간을 부설하였다.
행랑채 : 중요민속자료 제24-1호
대문(大門)채는 3간(間)이고 대문(大門)의 서간(西間)이 마판(馬板), 동간(東間)이 행랑방(馬夫房)이며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이 대문(大門)을 기점(起點)으로 해서 동서(東西) 양편으로 담장을 싸돌려 동서(東西)와 남북(南北)의 길이가 각각 400여(餘)m에 이르는 방곽(方廓)담장을 이룩하였다.
사랑채 : 중요민속자료 제24-2호
중문(中門)의 동편(東便)에 접해서는 2간(間)의 사랑방이 동서(東西) 일자(一字)로 이어지고 여기에도 전퇴(前退)와 난간을 두었다. 그 끝은 남북(南北)으로 두출(斗出)한 누(樓)마루 2간(間)과 책방(冊房) 1간(間)이 일자(一字)로 이어지는 일종(一種)의 익사(翼舍)로 꾸며져서 사랑방 배열(配列)의 일반적(一般的) 통례(通例)를 벗어난 색다른 변화(變化)를 보이고 있다.
사랑온돌(溫突)은 2간(間)이며 그 아랫방 안쪽에는 골방을 두고 그 골방에는 안마당으로 드나드는 문을 두었는데 이 점도 내정(內庭) 출입(出入)에 중간 골방을 경유한다는 점에서 간혹 별례(別例)가 있기는 하나 골방의 역할이 내정(內庭)과의 관계에서 완충적 기능을 갖게하는 것이라 하겠다. 또 이방 앞에는 설렁줄을 매었는데 이 줄을 당기면 안채의 설렁방울이 울려서 호출신호로 쓰이던 것이다. 통상(通常) “사랑웃방 ”을 이 집에서는 큰사랑방이라 부른다.
큰사랑방 옆은 익사형(翼舍形) 누(樓)마루와 책방(冊房)인데 누(樓)마루 2간(間)은 10척(尺)간살이여서 사랑방이나 안방의 8척(尺)보다 2척(尺)을 더 크게 하였다. 누(樓)마루의 전(前)1간(間) 둘레에는 퇴(退)마루와 난간(欄干)을 두르고 있다. 이 누(樓)마루가 즉 사랑대청인 셈이나 이 집에서는 안대청과, 마루방, 중대문채의 툇마루와 난간(欄干), 산수정(山水亭) 등(等) 청(廳)과 난간(欄干)을 다용(多用)하고 있다.
사랑채의 지붕은 팔작(八作)지붕이고 누(樓)마루 밑에는 동바리 기둥을 받쳤다.
안채 : 중요민속자료 제24-3호
몸채는 완벽(完壁)한 구자형(口字形)이고 그 우하(右下)의 사랑방에서 이어져 나온 사랑누마루와 책방(冊房)은 사당하(祠堂下)에 남북일자(南北一字)로 배치되어 있다. 누(樓)마루와 책방(冊房)의 이러한 배치는 몸채의 동사(東舍)와 평행(平行)을 이루는 종배(縱配)로서 매우 독특(獨特)한 형제(形制)이지만 그것은 아마도 사당(祠堂)채의 제한적(制限的) 전정(前庭)을 사랑채로 가로막지 않고 넓게 틔워 놓으려는 의도(意圖)에서 비롯된 것 같다.
안채의 중심부(中心部)에는 6간대청(間大廳)을 두었고 대청(大廳)의 전후(前後) 각(各)2개의 기둥은 두리기둥을 썼으며 청(廳)의 뒷간(間)(3간(間))에는 상례(常例)대로 쌍여닫이 판장문을 부설하였다.
사당 : 중요민속자료 제24-4호
내당(內堂)의 머릿방 동편(東便)에는 별도로 방곽(方廓)담장을 두른 3간(間)×1간(間)의 사당(祀堂)채가 있다.
산수정(山水亭) : 중요민속자료 제24-5호
이 집의 서북(西北)쪽 산곡(山谷) 암벽(岩壁)에는 3간(間) 정자(亭子)를 두고 이름을 “산수정(山水亭) “이라 하였다.
양쪽 온돌방은 전후(前後)에 툇마루를 두었고 가운데 청(廳)과 연접되어 정(亭)의 전면(前面)에서 측면(側面)으로 꺾어 난간(欄干)을 부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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