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2.jpg 경주 손씨 큰 종가로 이 마을에서 시조가 된 양민공 손소(1433∼1484)가 조선 성종 15년(1484)에 지은 집이다.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의 골안 깊숙이 비교적 높은 서면(西面)기슭에 서남향으로 앉힌 집이다. 비탈진 언덕에 잡석난적(雜石亂積)으로 석축을 하고 담장을 쌓았으며 곧 一자형 대문채를 앉히고 그 안에 ㅁ자형 몸채를 세웠다.

몸채의 뒤편은 비탈진 후원(後園)이고 단을 지어 장독대를 두고 유실수(有實樹)를 배식하였다. 한편 몸채의 남동(南棟)인 사랑채의 남쪽에도 넓은 사랑 후원을 두었으며 그 남변(南邊)에는 수백년 묵은 향나무가 있다. 이 사랑 후원 상방 (上方)으로는 석단 및 내후원과 구분되는 일곽의 담장을 쌓고 사당과 신문(神門)을 세웠다. 담장과 대문채, 대문채와 몸채의 상호 간격이 극히 좁아진 것은 집터의 전후거리가 짧은 탓이 아닌가 짐작되며 사당을 드높은 자리에 앉히고 그 전방을 틔워야 하는 요건과 사랑마당의 필요성 등이 그쪽 공간을 확대 확보하게 된 요인이었다고 생각된다.

행랑채 대문채는 몸채의 축단 아래에 낮추어 지었으며 8간이다. 남단 1간이 광이고 제 2간이 대문이다. 대문옆으로는 1간의 마루방, 2간의 온돌방, 3간의 광이 연이어져 있다. 이 대문채도 행랑채의 구실을 하지만 과거에는 외거하인(外居下人)들의 가람집이 산하에도 있었다고 한다.

몸채는 정면 5간, 측면 6간의 ㅁ자형 평면인데 아래채의 중심간이 안대문이고 안대문의 왼쪽은 2간 마루고방이며 오른쪽은 큰사랑방과 사랑대청이다. 사랑과 마루는 높은 석단위에 있고 마루 둘레에는 아자난간(亞字欄干)을 돌려 뜰아래에서 보면 루마루같이 보인다. 대청의 면에 큰사랑방과 작은사랑의 문호는 정자(井字)살 방형(方形)불발기창을 꾸민 사분합(四分閤)들문이다. 대개 사랑방은 연이은 2간통(間通)에 장지문을 들이는 2간방이거나 큰사랑방의 대청 건너편에 작은 사랑방을 두는 것이 상례일것인데 여기서는 작은 사랑을 모서리로 물려 방과 방이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도록 배치하였다. 사랑대청 아래에는 마당에서 오르는 섬돌과 넓은 석단(石壇)이 마련되어 사랑채 있어 사랑을 출입하는 사람은 석단과 대청을 통해서만 사랑방에 이를 수 있게 되어 있다. 사랑대청이 루마루처럼 높아서 후원을 내려다보는 경개(景槪)는 이 집의 독특한 가경(佳景)이라 하겠으나 조령(祖靈)을 봉안(奉安)한 사당이 역시 항상 상방 (上方)에 있어 신경(愼敬)해야하는 몸가짐도 유자(儒者)로서 외면하지 못하는 하나의 제약성이었다고 생각된다.

안채는 대청이 6간, 안방이 3간, 부엌이 2간이며 2간의 건넌방및 그 밑에 작은방과 1간의 마루방이 있어 사랑채의 작은 사랑과 접하게 된다. 안방 천정은 다락으로 꾸미고 대청으로 광창(光窓)을 내고 있다. 건넌방 앞 안대청끝에서 사랑채의 작은사랑방에 이르는 3간에는 一자로 쪽마루를 부설하여 큰 사랑 - 대청 - 작은사랑 - 마루방 - 안대청 - 안방에 이르는 일종의 마루통로가 이루어져 있는 점도 역시 특색이라 할 것이다. 대청은 6간이나 되는 큰 마루이나 전후평주(前後平柱)에 보를 건 삼량(三樑)구조이며 전열주 (前列柱) 4개는 두리기둥을 썼다. 대개의 경우는 대청의 중간기둥에만 두리기둥을 쓰는것이 통례이다. 안방과 부엌과의 인접관계는 상하관계인 중부식이며 3간(좁은 3간)의 큰방이다. 부엌은 2간안채 이며 그 하단에는 쪽마루 (역시 찬마루·상보는 마루)를 설치하여 다음간인 찬마루(아래채의 끝간)와 그 기능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지게 하였다. 안방과 부엌사이에는 대소 2개의 문이 달려 있다. 안채에서 또 색다른 점은 안방과 건넌방의 후우주(後隅柱)와 측면제2주(側面第 2柱)에 각각 원주를 사용한 점이다. 대청후면의 3간 여닫이판문 문틀의 중심에는 설주를 세워서 두짝의 판문이 따로 닫히게 되어 있다. 두 판문이 맞여며지는 일반적 방식과 다른 점이다. 처마는 모두 홑처마이며 안채의 지붕은 팔작, 사랑채는 맞배지붕이다.

이 집의 창건주는 손동만씨의 19대조인 양민공 손소(襄敏公 孫昭)(1433∼1484)이며 그의 외손이며 동국십팔현(東國十八賢)으로 문묘에 배향된 회재 이언적 (晦齋 李彦迪)이 이 집에서 탄생하였다고 한다.
 
 
 
 

 

사당 
 

중요민속자료 23-1

행랑채

손동만 씨 가옥의 행랑채는 앞면 8칸·옆면 1칸 크기로 대문을 포함하고 있다. 대문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광 1칸이 있다. 대문 왼쪽으로는 마루방 1칸·온돌방 2칸·광 3칸이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다

중요민속자료 23-2

사랑채

손동만 씨 가옥의 사랑채(서백당)는 ㄱ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으며 높은 단 위에 방과 마루를 두었다.

사랑 대청을 사이에 두고 큰사랑방과 작은사랑방이 자리잡고 있다. 원래 사랑방은 연이은 2칸 방 사이에 문을 두고 방을 나누거나 큰사랑 대청 건너편에 작은사랑방을 두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집은 작은사랑방을 모서리에 배치하여 방과 방이 정면으로 마주보지 않도록 꾸몄다.

둘레로 난간을 둘렀으며 대청에서 내려다보는 후원의 경치가 운치있다

중요민속자료 23-3

안채

안채는 6칸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안방 3칸·부엌 3칸을 두고, 오른쪽에 건넌방과 작은방·마루방을 두었다.

마루방은 사랑채의 작은 사랑방과 붙어 있으며, 대청 끝에서 작은 사랑방까지 툇마루를 두어 일종의 마루통로로 쓴 것이 특징이다. 안방 천장은 다락으로 꾸몄고 대청 쪽으로 작은 창을 달았다. 또한 일부 둥근 기둥을 사용한 점이 눈길을 끈다

중요민속자료 23-4

시딩

사당은 사대부가를 비롯한 일반 민가에서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집으로 가묘(家廟)라고도 하며, 왕실에서는 종묘(宗廟)라 한다. 이 사당은 사랑채 뒤쪽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