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제3장 교회는 왜 사회 참여를 하였는가? 2

문성식 2011. 6. 27. 17:10

 

본인은 7 4 남북 공동 성명과 8 3 긴급 재정(財政) 명령 등으로 소연(騷然)한 현 시국에 즈음하여, 국가가 비상한 처지에 놓여 있을수록 정부는 그 진상과 진의를 솔직하게 국민에게 알려서 국민의 이해와 협력을 구해야 되고 국민은 정부를 편달 격려하여 국론 통일과 국민 총화를 이룩함으로써 이 난국을 타개해야 될 것임을 확신하면서, 광복 27주년을 기하여 한국 천주교회를 대표하여 국민의 각오와 시국에 대처할 태세 정비를 촉구하는 뜻에서 다음과 같이 소신을 밝히는 바이다.

금권 만능, 부정 부패 혁파해야
1. 우리는 7 4 공동 성명이 영구히 전쟁 수단을 포기하고 대화로써 조국의 통일을 달성하는 디딤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남북의 정치가들이 이 약속을 성실히 지키기를 간곡히 부탁하고 이것을 평화 위장의 전쟁 준비의 수단이나 권력 정치의 기만 전술로 이용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민족과 더불어 엄숙히 경고한다. 또한 우리는 동서 해빙과 평화의 명분 아래 우리의 국가 이익을 열강의 정치적 거래와 경제적 지배의 희생물로 제공할 수 없음을 강조하면서 민족적 각성과 단결을 통하여 자주(自主)와 자조(自助)와 자립(自立)의 태세를 갖출 것을 다짐한다. 남북 대화의 성격은 이해와 설득을 통한 사랑의 구원이 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유물론적 사회에 정신과 사랑의 가치를 알리고, 권력 위주의 사회에 인간 회복의 휴머니즘을 일깨우고, 통제 사회에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깨우쳐 주는 마음의 교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끈질긴 인내와 동포애로써 북한 동포들에게 근원적으로 봉쇄된 자유와 민주에의 갈망을 심어 주고 그들의 인간적 고통을 덜어 주는 데 최선을 다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2. `대화 없는 대결'에서 `대화 있는 대결'을 모색할지라도, 유물론적 공산 세계와 대결하는 힘은 또 하나의 유물론이 아니다. 자본주의적 물질 만능 풍조와 황금 숭배의 물신적 사조를 극복하지 아니하면, 유물론자들과의 이념 대결에서 승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결국은 다 같이 물질의 노예로 타락하고 인간 상실의 비극적인 사회를 이루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대결의 마당에서 국민이 믿고 희망을 걸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는 편이 궁극적으로 승리할진대, 모든 국민이 `내 나라 의식'을 가지고 공속감(共屬感)으로 다져진 민족적 일체감을 확립할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해야 될 것이며, 여기에는 우리 사회에서 금권 만능의 부조리를 몰아내고 일체의 부정 부패를 시정하는 국가 혁신부터 선행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최근에 실시된 8 3 긴급 재정 명령으로 야기된 현실 앞에서 정부의 보호와 특혜에도 불구하고 국가 경제를 이 지경에까지 몰아붙인 책임 있는 기업인들에게 국민의 이름으로 엄중히 문책함과 동시에 경제 제일주의를 표방한 정부가 국가를 파산 지경에 이르도록 무책임하게 영도해 온 데 대하여 피를 바쳐 나라를 지키고 땀을 바쳐 봉사해 온 모든 애국 시민의 이름으로 엄중히 항의하고 맹성을 촉구한다. 이미 사태가 불가피한 정도라면 이 나라의 모든 지도자들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서민들의 고통을 덜어 주고 그들의 생활을 보장해 주기를 강력히 요청한다.
3. 앞으로의 남북 대결은 폭력이나 정치 조작이 아니고 인간관의 확립과 민주 역량의 배양으로 판가름 날 것이다. 공산 사회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이고 획일적인 사상과 제도이기에 일견 강한 것같이 보이지만 그것은 도리어 그들의 결정적 약점이다. 인간을 정치나 경제의 도구로 삼는 인간관은 자유인의 신념이 될 수 없고 신념 없는 인간들을 토대로 한 사회는 참으로 강력하고 행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민주 사회의 힘은 자유 시민의 단합된 의지의 총화이다. 국민의 동의와 신뢰를 받는 정부가 있고 헌신적으로 국가를 사랑하고 지키는 충성된 백성이 있을 때 그 국가는 막강하다. 국민이 개인으로나 단체로서 국가 생활과 국가 통치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끔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신교(信敎)의 자유를 보장하고 공명한 선거와 균등한 기회와 안정된 환경을 확보하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만이 남북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는 담보임을 우리는 굳게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야를 막론하고 이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진정한 민주주의의 소생을 위하여 금권의 난무를 방지하고 국민의 상호 신뢰와 단합을 저해하는 정보 정치를 지양하고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흔드는 비상 조치를 난발하는 권력의 폭주를 엄계(嚴戒)하고 소수의 극한 대립과 다수의 횡포로 일관하는 정치 풍토를 근본적으로 쇄신하기를 읍소하는 바이다.

(1972. 8.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