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 겨레와 우리 나라는 누구나 깊이 우려하고 있듯이 중대한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정치와 경제 질서는 와해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의 화합과 단결이 절실히 요망되는데 우리는 반대로 화합과 단결이 불가능해 보일 만큼 상호간에 불신과 대립, 미움과 단절로 치닫고 있습니다.
광주 사태 유발한 강압 통치
작년 10 26 사건 이후 우리 국민은 슬기롭게 그 충격의 여파를 이겨 냈습니다. 정부도 국민도 모두가 합심하여 질서를 유지하면서 힘에 의한 질서 대신 민심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민주 질서를 지향하는 것같이 보였습니다. 12 12 사건과 같은 새로운 충격도 민주 질서를 강력히 소망하는 민의의 힘을 꺾을 수 없다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건전한 경제 정책의 부재로 말미암아 취약점을 드러낸 우리의 경제 사정이 새로운 석유 파동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고 지금까지 억눌려 왔던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게 됨에 따라 여기서 파생된 노동 쟁의가 빈번하고 급기야는 사북 사태 같은 불상사가 야기되는 등 경제 사정은 더욱 악화되는 것같이 보였습니다. 학원의 자율화로 학생들의 학원 소요의 양상이 점진적으로 확대되어 갔고 또한 이것이 학원의 자율화만이 아니라 정치 체제의 민주화를 격렬히 요구하게 됨에 따라 우리 사회는 다시 혼돈에 빠지는 것같이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노동계는 점차 노사 분규 와중에서도 기업 자체를 망침으로써 경제 질서의 근저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점차 싹 트기 시작했고 그뿐 아니라 망해 가는 기업을 우리 근로자들의 힘으로 다시 살리자는 움직임까지 일기 시작함으로써 노동 운동이 국가가 직면한 경제 난국 타개와 건실한 경제 발전을 이룩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었습니다. 학생들 역시 한때 민주화를 부르짖는 그들 요구가 정당하다는 확신을 견지하면서도 이 요구를 성급하고 과격한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자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점차로 느끼기 시작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학원 자율화로써 신뢰를 회복해 가고 있는 교수들과 또는 문교 행정 당국과의 진지한 대화를 통해서 학생들의 요구를 차원 높게 받아들임으로써 무리 없이 또한 이상에 불타는 젊은이들에게 좌절감을 주지 않고 학생 운동 자체를 나라 전체의 공동선을 위해 참으로 건설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와 아울러 계엄하에서나마 언론이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함으로써 여론의 순화를 기대할 수 있었고, 점진적으로 우리 국민 모두는 민주 국민으로서의 긍지를 지니고 역경을 넘으면서 밝고 의로운 대한 민국을 건설해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모든 가능성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국민에 대해 힘으로 군림해 오던 정부와 오직 물리적 힘에 의한 외형적 질서 유지에만 익숙해 왔던 위정자들은 학생들이나 근로자들이 일으킨 새 질서 추구의 도전의 물결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받아들일 줄 몰랐습니다. 그들은 이 젊은이들의 학원 소요나 노동 쟁의 와중에서도 사회의 근본 질서를 지킨다는 그 애국 애족심을 읽을 줄 몰랐고 그들의 순수한 영혼이 내포하고 있는 건설적인 힘과 새 질서 창조의 가능성을 보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단지 국가 사회 질서 문란의 위험 분자들로만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대화보다는 결국 그들이 아는 길인 물리적 힘으로 누르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광주 사태와 같은 엄청난 비극을 낳게 했습니다. 정치 활동이 금지되고 학원이 폐쇄됐으며 언론이 봉쇄되었습니다. 지금 이 땅에는 많은 이가 이미 질서 문란의 죄목으로 검거되고 있고 그 밖에 많은 이들이 지명 수배 중에 있으며 특히 학생들과 젊은이들 중 상당수가 불순 분자처럼 검문 검색당하고 쫓기고 있습니다. 외형상으로는 질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힘에 의한 침묵과 죽음의 질서입니다. 이 땅에는 지금 젊은이들이 설 땅이 없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목숨 바쳐 지켜야 할 가치를 우리 기성 세대는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좌절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보호해 주지 못하고 선도해 주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들은 어디로 갈 수 있습니까? 본인은 이 젊은이들의 장래가 참으로 염려됩니다. 쫓기는 젊은이들은 과격화될 수밖에 없고 그렇지 않은 젊은이들도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계엄령은 공포 분위기 조성할 뿐
정부는 거듭 민주 발전을 이룩하겠다고 말하지만 이제 이것을 믿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또 사실상 물리적 힘으로만 유지되는 이런 침묵과 죽음의 질서를 바탕으로 민주 발전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권력자들이 지금 쓰고 있는 물리적 힘은 다른 물리적 힘과의 대결을 유발할 가능성을 증대시킬 뿐이며, 따라서 폭력의 악순환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지금 우리는 놓여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상황은 정부가 그렇게도 앞세우는 경제 발전을 위해서나 안보를 위해서나 조금도 도움이 될 수 없는 어두운 상황입니다. 이대로 가면 우리 나라는 경제적 파탄도 면할 길 없고 또 안보도 지켜질 수 없게 되어 결국은 오히려 이 땅의 공산화를 자초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같은 국가적 민족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첫째, 우리는 이 같은 진실을 진실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진실을 외면하고 이를 왜곡 또는 호도하면 그것은 그럴수록 문제의 심각성을 증대시킬 뿐입니다. 지금 우리는 분열되어 있다는 그 사실을 냉정히 인정하고 국민 대다수가 정부와 군에 대한 신뢰성을 잃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둘째, 힘의 통치가 인간 사회의 문제 해결을 위해-비록 위급한 시기에 잠정적으로는 용인된다 할지라도-결코 장기간에 걸친 통치 방법으로는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특히 위정 당국이 여기에 대하여 맹성을 해야 하며 힘의 사용을 즉각 중지해야 합니다. 공권력이란 본시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증진시키기 위해 있는 것이며 이를 탄압하고 말살시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공권력이 인권 탄압에 쓰여지면 이것은 공권력이 아니요 오히려 폭력입니다. 셋째, 계엄령을 조속한 시간 내에 해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정부는 계엄령을 해제하면 사회 안정을 기할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런 사고라면 국민이 모두 자율성을 잃고 정부의 말을 무조건 받아들일 때까지 무한정 계엄령이 실시되어야 한다는 논리밖에 안 됩니다. 이것은 모순입니다. 사회 안정은 정부가 국민의 믿음을 얻으면 얻는 그만큼 회복됩니다. 사회 불안정의 근본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주된 원인입니다. 따라서 정부가 국민의 불신을 사고 있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면 국민이 고의로 불안정을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지금 계엄령은 바로 그 자체가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증대시키는 것이요 또한 따라서 계엄령 자체가 사회 안정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 속에 공포 분위기를 만들고 국민을 불안케 함으로써 국가 사회 전체의 불안정의 요소가 되고 있음을 정부와 군은 인식해야 합니다. 넷째, 광주 사태에 대해서는 군에 의한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 진압이 도에 넘침으로써 군경을 포함하여 학생과 시민 등 많은 희생자를 내게 한 데 대해 정부는 깊이 사과하고 그 같은 엄청난 유혈 사태를 일으킨 책임자를 정부는 엄단해야 합니다. 이것을 군부는 치욕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는 유혈 사태를 빚어 내고 민족적 단합을 파괴함으로써 그 자체로써 공산화의 위험을 더 크게 만든 결과를 감안한다면 국토 방위의 신성한 사명을 첫 임무로 삼고 있는 군이 오히려 자진해서 취해야 할 조처라고 믿습니다. 군은 이렇게 잘못을 잘못으로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국민의 신뢰를 받을 것입니다. 10 26 사태 이후에도 계속 억류되어 있는 모든 양심범와 아울러 5 18 이후 수감된 모든 양심범을 석방해야 합니다. 그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민주 회복 또는 민주 헌정 확립이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죄가 됩니까? 이 땅의 민주 세력을 말살하는 것은 바로 그 자체로써 북의 공산 집단을 이롭게 하는 이적 행위입니다. 일곱째, 정부는 진실과 정의를 바탕으로 이 같은 조처를 취하면서 참으로 진지하게 국민에게 그간의 잘못에 대한 사과를 청하고 나라의 건설을 위해 호소하십시오. 국민은 반드시 이 호소를 따라서 정부에 진심으로 협조할 것입니다. 우리 나라 국민성에는 단점도 없지 않지만 순박하고 불타는 애국심을 지녔으며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모두 자기 생명을 바쳐 이 나라를 지킬 정신을 가졌습니다.
(1980.)
'김수환 추기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3장 교회는 왜 사회 참여를 하였는가? 6 (0) | 2011.06.27 |
---|---|
제3장 교회는 왜 사회 참여를 하였는가? 5 (0) | 2011.06.27 |
3장 교회는 왜 사회 참여를 하였는가? 3 (0) | 2011.06.27 |
제3장 교회는 왜 사회 참여를 하였는가? 2 (0) | 2011.06.27 |
제3장 교회는 왜 사회 참여를 하였는가? 1 (0) | 2011.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