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3장 교회는 왜 사회 참여를 하였는가? 3

문성식 2011. 6. 27. 17:13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국민 여러분!
교회는 왜 인권 확립을 말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교회의 사명이 본질적으로 인간 구원에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영육간에 구하기 위해 교회는 창립되었고 세상 속에 파견되었습니다.

극심한 인권 침해의 현실
교회의 견지에서 볼 때,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있게끔 하느님을 향해 창조되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림으로써 구원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인간은 모든 피조물 중에서 가장 존귀하며, 온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인간의 가치입니다. 인간 존엄성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때문에 교회가 인간의 기본권 확립을 위해 주장함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왜 하필이면 이 시간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속에서 교회는 인권의 확립을 외치게 되었는가에 있습니다. 비단 이 때가 인권 선언 주간이기 때문에 교회도 인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 다 아는 바입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안에는 인권의 침해가 극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의 인권 침해가 횡행되는 가장 근본적 이유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인식이 희박하고 이에 따라 인간에 대한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데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누구나 너나없이 인간은 존엄하다는 말은 잘 씁니다. 그러나 왜 인간이 존엄한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인간 존엄성의 이유는 이미 언급한 대로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고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소명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이 그 안에 심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인간은 불멸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인간은 불가침의 존엄성을 지녔고 또한 그로 인해 모든 인간은 일체의 선천적 및 사회적 차이를 초월하여 평등합니다. 하느님을 떠나서는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의 본질적 근거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 같은 근본 인식이 희박합니다. 이 근본 인식이 희박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는 인간에 대한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가치관이 바로 서 있지 않은 데서 정치, 경제, 심지어 교육에 이르기까지 인간 소외 내지 인간 부재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나라가 그 동안 경제 성장을 최우선의 과업으로 추진해 온 과정에서 인간은 경제나 이를 주도하는 정치의 도구로까지 격하되었습니다. 비근한 예입니다만 어느 시골 초등 학교 이야기인데 초등 학교 교장 선생님들 눈에는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보다 나무가 더 먼저 보인답니다. 당국으로부터 유실수 등, 나무를 심으라는 지령이 내린 이래 아이들보다 감나무, 밤나무 등, 나무가 먼저 보인다는 것이며 그런 나무 가꾸는 데 여념이 없게 됐답니다. 당국에서 학교 시찰을 오면 먼저 안내해 보여 주고 자랑하는 것이 나무랍니다. 나무 심는 것도 중요하고 치산 치수는 나라 다스리는 데 바탕이 될 만큼 중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본 교육을 책임 진 초등 학교 교장 선생님 눈에 아이들보다 나무가 먼저 보이고 더 중요해 보인다는 것은 인간보다 물질이 앞선다는 우리 사회의 인간 부재의 가치 전도의 한 단면을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 밖에 경제 성장을 목적으로 특히 영세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익마저도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옹호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각 분야에 있어서의 인권 침해가 날이 갈수록 결심해 왔던 것은 우리 모두가 몸소 체험한 바입니다. 그중에서도 낙태로 무고한 태아를 죽이는 것은 어쩌면 여러분 중 많은 이가 저와 동의하시지 않으실지 모르지만 저는 이것은 가장 큰 인권 침해라고 단정합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에 대한 가치관 정립이 되어 있지 않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 크리스찬들이 이 사회 속에서 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사명이 있다면 이는 인간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이라고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 크리스찬이 먼저 솔선 수범해서 올바른 가치관에서 자기 이웃을 볼 줄 알아야겠습니다. 우리들이 만일 이웃을 대하기를 그 안에 사시는 하느님을 대하듯, 그리스도를 대하듯 한다면 아니, 지금까지 그렇게 존경하고 사랑해 왔더라면 우리들은 오늘 이 시간에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인권 문제를 다룰 필요조차 없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국가보다 앞서는 인간 가치
이제부터라도 대오 각성해서 우리 자신부터 태아를 비롯하여 인명을 존중할 줄 알고 또한 어떠한 사회적, 종교적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의 형제로 바로 그리스도로 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들 교회는 비인간화되어 가는 국가 사회 생활의 모든 분야가 올바른 인간의 가치관으로 쇄신되고 향상될 수 있도록 적극 참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을 위해서 또한 이 세상의 인간화를 위해 강생하셨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오늘의 역사 속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사명이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복음화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 해방과 구원 그 완성을 뜻합니다. 다음으로 우리 사회에 있어서 또 하나의 인권 침해의 근본 이유는 인간에 대한 가치관의 결핍으로 말미암아 사회관, 국가관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데 있습니다. 이에 따라서 그 사회와 국가 공동체의 공권력의 개념이 재래적 관존 민비 사상의 전근대적 의식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여 관권에 의한 인권 침해를 예사롭게 생각할 만큼 상습화된 데 큰 문제점이 있습니다. 먼저 국가 사회관에 있어서 사회나 국가는 인간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있고 국가가 있습니다. 또한 국가는 인간보다 상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가치 체계에 있어서도 국가보다 앞설 뿐 아니라 인간이 국가 사회의 토대요 중심이요 목적입니다. 또한 국가는 국가의 성원인 우리 모두, 즉 국민 총체가 국가이지 정부만이 국가이고 다른 이들은 그 아래 국민으로 처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국가요 동시에 국민이라는 데는 집권자나 여타 국민이나 같습니다. 때문에 누구도 법 앞에는 평등합니다. 인간 기본권의 원천은 그 인간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이시지 결코 하느님 아닌 어떤 개인이나 집단일 수는 없습니다. 나아가 국가의 공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것이요 결코 물리적 힘에 의해 탈취하고 탈취되어도 좋은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국민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자신들의 양심에 따라, 자신들을 포함한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자신들이 선출한 집권자에게 공권력을 위임합니다. 그 때문에 공권력은 본질적으로 국민의 양심에 바탕을 둔 도덕적 힘이요 양심과 도덕의 질서에 따라 행사될 때 비로소 공권력은 국민의 신임과 아울러 참된 권위를 지닐 수 있습니다. 또한 공권력은 국가를 이루는 국민 전체의 공동선을 위해서 봉사해야 합니다. 이 공동선은 우리가 흔히 듣는 국가 이익과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국가 이익은 개체의 가치를 국가라는 전체에서 판단하며 개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때로는 억제해 가면서까지 추구되고 있는 데 반해, 공동선은 국가 공동체의 모든 성원의 보다 인간다운 생활을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르게 증진해 주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원의 기본권이 보장되고 모든 성원의 보다 공평하고 보다 인간다운 생활 향상이 이 공동선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모든 성원의 기본 인권이 바로 공권력 자체에 의하여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국가 공권력의 제일 크고 가장 중요한 사명과 의무는 국민의 기본 인권을 증진하는 데 있고 이것이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침해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데 있습니다.

일인 집중의 권력 구도 벗어나야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먼저 국가가 있고 국민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국민 각자는 국가의 종속물에 불과한 양 간주되고 있습니다. 또한 정부가 곧 국가라는 관념이 잠재적으로 지배할 뿐 아니라, 반정부 행위는 곧 반국가적 범죄로까지 취급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올바른 국가관에서 본다면 국민의 총의를 거스른 처사면 그것이 정부에 의해 행해졌을지라도 반국가 죄로 다뤄져야 마땅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지금 기대하기란 힘들다는 것이 우리의 불행한 현실입니다. 여기서 권력의 절대화가 생겨났고 국민의 기본 인권이 그 인권을 보호해야 할 공권력에 의해 오히려 더 크게 침해되는 역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인권 문제는 단순한 각 시정인의 인권 문제만이 아니고 민권 문제로까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누구나 우리 민족이 정치적, 경제적 난국에 놓여 있고 자칫 잘못하면 민족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시점에 서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난국 극복에는 모든 국민의 참된 애국심과 이를 바탕으로 한 국민의 정신적 단결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바로 이런 난국에 정부와 국민이 근본적으로 유리되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문제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정부와 국민이 유리되어 있습니까? 그것은 누구나 알다시피 그간 인권에 의한 지나친 강압 정치, 정보 정치로 말미암아 공포 분위기 속에 어떤 경우에는 용납할 수 없는 심한 인권 유린이 자행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10월 유신 체제로 정부는 민권과 정상적 민주 헌정 질서를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일방적으로 국민의 추종만을 강요해 왔고 또한 국민을 정치와 경제의 수단으로 격하시켜 왔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감소됨은 당연합니다. 자신들의 정당한 권익, 때로는 기본 인권까지도 잘 보호해 주지 않고 오히려 부당하게 억제한다면 그런 정부를 어느 국민이 신임할 수 있겠습니까? 최근에 자칫 잘못되면 이 나라를 파국으로까지 몰고 갈 수도 있었던 학원 사태 등은 국민이 지닌 정부에 대한 이 같은 불신의 표명의 단면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말씀 드릴 필요 없이 자유 대한의 힘의 원천은 국민입니다. 국민의 동의와 신뢰를 받는 나라가 있고 목숨 바쳐 지키고 사랑하는 가치와 충성된 국민이 있을 때, 우리의 힘 앞에는 누구도 대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같이 국민의 힘을 모으기 위해서는 국민이 공포나 불안감 없이 참으로 이 나라 국민으로서 안심하고 살 수 있고 자유로이 옳고 그른 것을 보고 듣고 말할 수 있으며 정정당당히 국정에 참여할 수 있게끔 풍토가 정신적으로나 제도적으로 개선되어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기 쉬운 권력과 금력 위주의 일인 집중의 획일주의적 권력 구도가 근본적으로 쇄신되어야 합니다.

평화적 정권 교체의 제도적 확립
국민은 누구나 자신의 권리, 당연한 권리가 정부로부터 존중되고 보호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때 또한 국민의 의사가 국정에 현실적으로 반영되어 감을 목격할 때 비로소 이 나라 국민으로서의 긍지를 지닐 수 있고 애국심도 자연히 함양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같은 기본 인권과 민권에 대한 국민의 근본적 요청은 제도적으로 확립되어야 합니다. 이는 다른 길이 아닙니다. 국민의 국정 참여를 제도적으로 소외시키고 있는 현재 체제를 지양하고 현재의 헌법을 개정하여 3권 분립과 평화적 정권 교체가 제도적으로 확립된 주권 재민의 올바른 민주 체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주장을 정부는 반체제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대한 민국은 분명히 민주 공화국입니다. 민주 공화국 체제가 변질된 민주 체제를 정상화시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주장하는 또 하나의 근본적 이유는 이 같은 정상적 민주 체제가 하느님이 주신 인간 본성의 내적 요청, 즉 인간 존엄성 존중과 기본 인권 및 자유 보장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우리가 당면한 남북 대결, 우리 모두가 소망하는 정치 안정 특히 당면한 국민의 정신적 단결을 기하는 데도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이 같은 민주 체제 회복의 시기입니다. 지금이 이 나라의 진로를 바로잡을 때입니다. 왜냐하면 이 시기를 놓치고 만일 현 정부가 오늘의 체제의 근본적 변혁 없이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집념에만 사로잡혀 있을 때에는, 정부와 국민의 괴리는 더욱 심화되어 조만간 국가적 파탄을 면치 못할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정부는 민의의 소재를 올바로 알고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정상적 민주 체제 재건만이 오늘날 정부가 해야 할 가장 크고 최우선적인 과업임을 현 정부는 깊이 인식해 주기 바랍니다. 또한 이 과업이 평화적으로 진행되고 성취되기 위해서는 현 체제하에서는 오직 정부만이 할 수 있습니다. 더 정확히는 대통령만이 그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현 시국이 현 정권을 위해서나 국가 전체를 위해서 불행한 파국으로 떨어지지 않는 길을 이 나라를 사랑하시고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진력하시는 대통령의 현명한 일대 영단으로 진정한 주권 재민의 민주 체제가 회복되는 것뿐임을 거듭 강조합니다. 끝으로 하느님께서 우리 겨레가 오늘의 어둠을 헤치고 보다 밝은 국가 장래를 맞이하기 위해 대통령께 하느님의 지혜와 용기를 주시도록 모든 교회가 모든 국민과 함께 끊임없이 한마음 한뜻으로 기도드려야 하겠습니다.

(1973. 12. 16. 서울 YMCA 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