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춤춰라, 주께서 오시느니라"(시편 95, 11).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우리는 다시 기쁜 성탄절을 맞이했습니다. 밤의 어둠을 헤치고 `만민의 빛'이신 주께서 오셨습니다. 이 밤에 오신 메시아는 "죽음의 가시를 쳐버리시고 믿는 이들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정의의 주, 사랑의 주, 생명의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날입니다. 참으로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춤춰라."고 환희의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이에게 축복을 빌고 싶은 밤입니다. 권력 금력의 정치 체제로 인한 부정 부패 이 밤과 이 날만은 반목과 질시, 불화와 분쟁, 전선(戰線)의 총소리마저 멎고 오직 자비와 평화가, 용서와 사랑이 우리 모두와 온 누리를 가득히 덮어 주기를 간절히 빌고 싶습니다. 성탄은 모든 인간의 소원과 갈망을 채워 주시는 구세주 오신 날입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지닌 그 영원한 동경을, 그 간절한 소망을 이룩해 주시는 메시아 오신 날입니다. 이는 생명과 구원의 날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지금 이같이 참된 기쁨을 지니고 있지 못합니다. 주위가 너무나 어둠에 덮여 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에 처해 있습니다. 태산이 나의 앞길을, 우리 모두와 나라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삶에 지쳐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모든 것에 대하여 회의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진실로 밝고 명랑한 사회가 될 수 있는지 의심합니다. 나라에서 무슨 말을 해도 교회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도 그것이 여러분에게 곧이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만큼 나라도 교회도 신임을 잃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회의와, 이 절망적 상황 때문에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기대하고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아쉬운 것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인정이 아쉽고 이해와 진실이 아쉽습니다. 나를 받아 줄 따뜻한 마음, 나를 일으켜 줄 힘찬 팔, 내 모든 상처를 어루만져 줄 부드러운 손길은 없는지, 모두가 이 같은 동경에 젖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그리움을 지닌 채, 무엇인가를 찾고 있습니다. 삶의 보람을 느끼지 못하면서도 절망 직전에 서 있으면서도, 참으로 인생의 의미는 없는지, 빛은 없는지, 계속 찾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나는 이 모든 괴로워하는 이들과, 슬퍼하는 이들과 실의에 빠져 있는 이들과, 이 성탄 밤에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고통, 여러분의 회의, 여러분의 슬픔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믿을 수 없다 해도 어두운 밤을 밝게, 외로움과 슬픔을 환희와 위로로 바꾸어 놓으신 그리스도만은 믿을 수 있고 그분만은 우리가 마지막까지 의탁할 수 있는 분임을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의 세계를 날로 더욱 심각한 불행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강대국들이 독점 지배하는 경제와 권력 정치 체제입니다. 이것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세계 속의 불의(不義), 특히 그것 때문에 시련과 타격을 받고 있는 약소국들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한 나라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의 고질적 부패와 사회 불안의 연원이 현재의 부조리한 권력과 금력의 정치 체제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진실로 과감한 혁신이 없으면 부정 부패 일소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습니다. 국민 대중과 영세민들의 생활 향상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독재냐, 폭력 혁명이냐 양자 택일 우리는 결국 인간 회복과 새 나라의 역사 창조를 단념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사실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인간과 그 양심을 믿고 살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지금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정부나 교회나 사회 지도층은 국민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양심의 외침을 질식시켜서는 안 됩니다. 만일 현재의 사회 부조리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 나라는 독재 아니면 폭력 혁명이란 양자 택일의 기막힌 운명에 직면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겨레는 그 어느 것도 원치 않습니다. 특히 공산주의자들의 그런 움직임에 대해서는 불의에 대해서와 같이 강력히 저항합니다. 왜냐하면 그 어느 것도 대단히 위험한 일일 뿐 아니라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숭고한 정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의로운 정신과 그 행동입니다. 모든 이의 마음속에서 식어 가는 애국 애족심을 다시 불태울 수 있는 참신한 정치, 인간 존엄성과 사회 정의에 입각한 시정(施政)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에 모든 이의 소망을 볼 수 있습니다. 국가 안에서는 모든 이가, 국제적으로는 모든 국가가 평등하고 서로 권익을 돌보며 일체감(一體感)을 갖는 사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의 성취를 강생하신 그리스도의 생활과 신비를 제외하고 어디서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그분이 베푸신 사랑, 그분이 지키신 정의, 그분이 요구하신 신뢰, 한마디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의요 사랑입니다. 정의와 사랑이 없는 곳에 평화와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평화가 없는 곳에 사회 안정과 질서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특히 국민이면서 동시에 크리스찬인 우리들은,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스스로가 먼저 참된 강생의 신비를 깊이 깨닫고 그의 사랑과 정의 안에 단결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탄생하신 그 그리스도의 복음(福音)에 살아야 하겠습니다. 천주님의 `말씀'이시고 `사랑'이신 성자께서 사람이 되셨음과 그의 말씀, 그의 사랑을, 그를 믿고 따르는 이들을 통하여 `현재'에 구현하고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모든 성직자와 수도자들, 그리고 지도층의 신자 여러분들이 먼저 대오 각성(大悟覺醒)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2천 년 전에 강생하신 그리스도가 불행과 절망에 빠져 있던 이들에게 실제로 구원의 기쁜 소식이 되었듯이, 교회는 오늘의 사회에 진정한 그리스도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사회와 정부를 향해서는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우리 안에 정의의 실천이 없다면 우리는 위선자가 되는 것이고 강생하신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 교회, 특히 나를 포함한 교회의 지도층, 성직자, 수도자들은 이 정신을 가졌습니까? 이 사랑을 가졌습니까?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이 역사의 심야(深夜)를 밝혀야 할 중차대한 사명을 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반성이 있고 이 반성을 토대로 교회 자체의 혁신이 있을 때, 그리고 정의와 사랑의 행동이 있을 때, 우리 교회는 참으로 한국 사회 안에 그리스도를 강생케 할 것입니다. 이 사회와 나라를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 이 사회에 이 어두운 세파를 향하여 성탄의 기쁜 소식을 외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일치시키는 성사, 즉 일치의 도구와 표지로서의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교회 헌장 1장 참조). 오늘의 우리 사회와 겨레는 그래도 교회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대는 결코 성탄의 종소리나, 아름다운 성가나, 더더구나 화려한 예식이 아닙니다. 휘황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아니라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의 마음속에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진리와 사랑의 등불이, 정의의 등불이 밝혀지기를 우리 동포들은 모두가 고대하고 있습니다. 갈망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모두 겨레와 사회 구원을 위한 봉사자들로서, 성탄의 기쁜 소식을 외쳐야 할 때이며, 성탄의 신비를 살아야 할 때입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는 그리스도의 과업을 목적으로 하는 것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우리는 참으로 우리 안에서만이 아니라 삼천리 방방곡곡에 울려 퍼지는 구세주 강생의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도시와 판자촌, 모든 공장과 농어촌, 산간 벽지의 오막살이, 그리고 먼 바다의 낙도에까지 메아리 치는 성탄가를 불러야 하겠습니다. 2천 년 전 한밤중에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었듯, 오늘의 어두운 곳, 외로운 곳에 이 소식이 전해져야 하겠습니다. 이 밤만이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끊임없이, 이제 밤은 더 깊어지지 않으리라고, 태양이신 그리스도의 강생으로 어둠이 사라졌다고 외쳐야 하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 은총을 빕니다. 이것이 바로 구세주 강생의 은총입니다. 이 성탄과 새해에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과 온 겨레와 만민에게 이 은총을 거듭 빕니다. (1971. 12. 성탄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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