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 드니 참 좋구나 ◎
어쩌면 삶에 스며들어
어쩌면 세샹을 지배하는 시간 앞에서
맞설 수 있는 힘이 달리 없는 영혼들이
택하기 쉬운 쓸쓸한 방법으로
노년을 예찬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감히 '지금에야 이땅에 다녀가는
존재의 의미를 침착하고 즐겁게
새기는데 충실하게 되었다'고 말하겠다
죽기 살기로 달려왔다고 생각하는
삶의 여정이란 또다른 모습일수도 있다.
허약한 영혼이 질척이는
우울을 밀어내며
삶의 저점을 위태롭게 통과하고 있다
어쩌면 삶에 스며들어 보이지 않게
자라온 죽음이 나에게 너무도 무례하고
거칠게 대해서 나는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삶을 이해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무언가 새로운거,
미지의 것이 가슴속에
물밀려오는 순간들이 있다.
지금 나는 마지막까지 시를 쓰며
오래 살다간 미당이,
33세에 요절한 천재 시인 이 상보다
한수 위라는 어느 문학평론가의
의견에 102퍼센트 동조한다
기억의 거울속엔 세상의 모든 소리와
색깔은 다 어디가고 조각구름만 떠 다니는
빈 하늘처럼 늘 조용하다. 비디오
테이프처럼 되감아 보는 기억은 가위질
할 수 없는 흑백의 시간으로만 남아있다.
이 세상을 떠날때
제일로 잊지말고 골라잡고 갈 삶의 맛은
바로 죽고싶은 시간을 견대어낸 후
맞이하는 노년의 삶의 맛 아닐까?
삶을 살아낸다는건....
결국 산다는 것은 견딘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가슴에 손이간다.
= 소설가 한정희의 "삶의 맛" 중에서=